경기도민의 이동 시간
어디서 그런 글을 본 적 있다. 경기도 토박이들은 인생 몇 분의 몇을 지하철에서 보낸다고. 생각해보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어딘가를 갈 때 기본 한 시간은 타는 것 같으니, 거주지 외 지역으로 출퇴근이라도 하는 경우엔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나 역시 일산에서 서울로 하루 왕복 두 시간씩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니 말이다.
그런데 나에겐 이런 게 불편함의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그래서 더 용감하게 경기도로 나올 생각을 했던 거겠지). 지방에서는 시외로 나가려면 그 정도 시간은 기본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보다 더 걸릴 때도 숱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집에서 나와 근처 터미널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학교 근처 터미널에 내려 학교까지 걸어가는데 대략 한 시간 십 분 정도가 걸렸다. 지금 내 출퇴근 편도 시간과 비슷하다. 대학교는 셔틀버스를 타면 35-40분, 또 시외버스를 타자면, 이번엔 시내버스 환승까지 해야 해서 대략 한 시간 이십 분에서 삼십 분 사이쯤 걸렸다.
이런 시간들은 시외버스 시간표를 휴대전화 앨범에 신줏단지 모시듯 들고 다녀야 최단시간으로 계산해 이동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시외버스 시간표를 모르면 운이 나쁜 날에는 이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심한 경우에는 3-40분까지도 차이가 난다).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표를 끊고 버스 시간을 확인해보니, 차는 방금 떠났고 다음 차가 출발하기까지 35분 정도 남았다고 생각해보라. 그날 기분에 따라서 허탈함에 이어 어처구니가 없기까지 한다.
게다가 시내버스 배차 시간은 또 어떤가.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지방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사람 피 말리게 하는 그 극악의 배차시간을. 나는 그걸 수도권에서 생활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생활하던 전주는 시내버스 배차 간격이 기본적으로 16분 정도였다. 10분 만에 올 때도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어쨌든 내 기억에는 확실하게 남아 있는 건 15-16분 정도이다. 기본이 이렇다는 것이다. 배차 간격이 30분인 버스도 있고, 한 시간인 버스도, 하루에 서너 대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도 있다. 본가가 있는 김제는 이보다 더 심하다.
인구가 수도권만큼 많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고, 그 지역 사람들은 이에 적응하며 살아서 전혀 불편함이 없지만, 수도권에서 출퇴근 시간에는 2분마다, 평시간대에도 짧으면 5분 길어야 10분에 한 대씩 오는 지하철을 경험한 후에는 그게 그렇게 답답해 미치겠는 거다. 이를 경험하고 나서는 본가에 내려가면 직접 차를 운전해서 다니지 절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래서 경기에서 서울로, 경기에서 또 다른 경기로 이동하는 일은 나에겐 아주 보통의 일이다. 적어도 시간적으로는 말이다. 또 좋은 게, 다른 호선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3호선에서는 지하철 디제이를 만날 수 있다. 가끔 안내방송 외에 승객들의 메마른 감성을 톡- 하고 건드는 편안한 멘트를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거 들은 날은 하루가 가볍고 힘이 넘친다(자세한 내용은 피드의 '우연의 황홀함이 있는 오늘을 살고 있나요?'에서 만나보시길' https://brunch.co.kr/@rkdcksgnl/16). 오늘은 그 황홀한 우연을 마주할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된다. 내가 일산을, 그리고 3호선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기도는 생각보다 낭만이 있는 곳이다.
이러한 경기도의 낭만은 그곳에 거주하는 모두에게 다가간다. 우리는 그저 오늘 지나간 게 낭만이었는지 알아보고 만끽할 수만 있으면 된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경기도민만이 알고 있는 산뜻하고 기분 좋은 낭만을 누리면 된다. 그것이 이곳에서 대중교통에 몸을 올리고 치열하게 달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의 행복이 아닐까. 고로 내 낭만은 이곳에 있다. 나에겐 지극히 평범했던 것들이 여기서는 낭만이 되어주니 아주 좋은 곳에 터를 잡았지 싶다.
(아 물론 저 반대편 서울 강동 쪽이나 저 밑에 관악구나 금천구, 부천 같은 곳에서 약속이 잡히려는 낌새가 느껴지면 멈칫하긴 한다. 언제나 낭만은 잠시간일 뿐 우리는 지속되는 현실에서 살아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