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혼자 주절주절!@#$?
주절주절!@#$%?
적당한 깊이. 적당한 무게 정도의 말은 들어보거나, 가끔 쓰기도 합니다. 그럼 ‘적당히’란 말속에는 깊이 혹은 무게가 있을까?
"적당히 바람이 분다."
그니까 바람이 부는데 그다지 춥지도 않고 미세먼지 따위에 목이나 눈이 따끔거리지 않은 정도로 부는,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잎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살랑거리다 잠시 멈추는, 다시 살랑살랑 나뭇잎을 흔들며, 내 걸음보다 약 두 보폭 정도 빨라서 스윽 지나쳐가는 정도의 풍량~
이 정도면 ‘적당하다’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적당’이란 말은 ‘대충’이나, ‘그냥’, ‘아무거나’처럼 귀찮지만, 결코 취향은 포기할 수 없는 단호! 그러므로 모든 겁나 귀찮은 것들을 대변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식사 약속을 하고 메뉴를 정할 때, ‘뭐 먹지?’ 고민하는 순간, 누군가 먼저 그냥 대충 아무거나 먹자고 하고, 누군가는 “적당히 때우자! 외치며 “피자 어때?” 메뉴를 한 가지 정도 제시하는 저 리더십! 어느 순간 '적당'이란 말의 울림을 존경하게 되었으며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부사의 영역을 벗어나, 내 일상에서는 모든 품사를 아우르는 마술 같은 언어가 되었습니다. 적당이란 말에 취해 있다 보니, 관계와 기준 또한 주사를 부리 듯 진상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타인의 영역에 함부로 침범하고, 그것이 으레 별것 아닌 일처럼 치부해 버리는, 꼰대도 아닌 개꼰대 말입니다. 어쩌다가 자신을 객관화하다 보니, 이제는 모든 게 조심스럽습니다.
오랜만에 F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바쁜 와중이지만 우리가 지난 일 년 동안 지방신문사에 기고해 온 영화 비평문에 관한 용건으로 말문을 열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습니다. 단지, 오랜만에 밖에서~ 집밥 말고 밖에서, 밥이나 한 끼 하자는 것입니다. 일정 확인하고 연락 달라는 문자에 전화를 걸어온 건 F입니다.
서로 시간을 만들어 맞춰보자고 옥신각신. 화요일 어때? 그럼 목요일 괜찮아? F가 연락해온 그날 바로 꼭 집어 약속 날을 정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매우 진취적이고 긍정적이었다. 곧바로 스케줄 몇개만 정리하면 금방 시간을 맞출 기미가 보였다.
그 후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바쁘게 지내던 일상을 다시 평범하고 아무 약속도 출근도 그 어떤 일도 없이 붕 뜬 시간을 맞을 수 있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이 여백 같은 시간은 소중했습니다.
다음 주 아무 때나 정해서 연락 달란 F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내 집 근처 단골 펍으로 날짜와 시간을 정해 그에게 문자를 남겨 두었습니다. F는 ‘ㅇㅇ’이라고 짧은 답을 보내왔다. 평소에 그를 생각하면 매우 무성의한 답이었으나, 그러거니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약속 날, 약속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가,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나는 짜증을 내며 F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몸이 몹시 아팠고, 어제 응급실 다녀오느라 정신없어 연락을 못 했다”는 그의 자초지종 앞에 짜증은 구태의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짜증을 숨기고 몸조리 ‘잘해.’라고 말을 남기며, 씁쓸함을 혀끝에 돌리며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몸 좀 괜찮아지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는 한 달이 넘어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때쯤 되니, 영화비평의 기고에 관한 압박이 닥치기 시작했습니다. (따로 마감이 있는 거 아니지만) F는 바쁘게 지내는 것 같았습니다. 기자라는 게 매번 취재에 쫓기고, 마감에 쫓기는 일이라 보니, 사소한(?) 일 같은 건 미뤄지는 건 다반사였습니다.
여백 같은 ‘’적당히”의 의미가 F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내 이런 투덜이 배가 부르고, 부럽고, 사치스러울 뿐 아니라, 가소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 시국 무너져내리는 일자리나, 경제활동의 피해투성인 현실 속에서 무언가 안정된 일이 있고 바쁘다는 것은. “적당한” 위안될 수 있을까? 오히려 조금은 부럽기도 한 감정이 꿈틀!
나는 ‘적당이’란 말을 찾는습니다. 정확한 말을 찾자면 ‘적당한 타이밍’이 가장 어울릴 것같습니다. 그래 나는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F와의 적당한 관계가 무엇이고, 나를 안정시켜줄 적당한 무언가 무엇인지, 무릎 탁 치며 ‘옭거니,’ 할 수 있는 그런 적당한 타이밍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