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능력인가?

늘 혼자 주절주절!@#$%?

by 지음 허투루
주절주절!@#$%?


공감 능력? 공감은 과연 능력인가?


사전적 의미로 공감共感은 : 명사다.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과연 사전적 의미로 공감이란 말을 얼마나 사용하며 활용하고 행사하는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도 며칠이 흘렀습니다. 주기적으로, 때를 놓치지 않고, 글을 올리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기를 놓치기도 했고, 마땅히 해야 했던 퇴고를 느슨하고 헐겁게 시늉만 하던 날도 있었습니다. 한 번도 퍼 나른 흔적이 없는 글을 보고 안도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공감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내 글이 과연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감을 살만한 일인가! 무려 열이 넘는 “lIke it”, 독자들의 선택을 보면서……. 한 번은 공감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떤 공감을 위해 글을 쓰지 않습니다. 철저히 이질적이고 낯설고 때론 허무맹랑 속에 편집증처럼 물고 늘어지는 하나의 드립을 성공시키기 위해 언어를 씁니다. 농담 섞인 말이 아닌, 농담 자체에 아주 사소한 현실을 소금 간처럼 찌그리는 정도의 허영과 냉소! 뭐 그런……. 글(?)이 내가 지향하는 글입니다. 물론 그마저 잘 쓴다고 자신 있게 피력하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그냥,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다.’라고 혹시 모를 의의나 논란 따위에 약을 치는 쫄보의 '글쓰기'입니다. 어떤 기대를 향해 다가가는 글쓰기가 아니란 점에서 스스로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치열하게 논거를 찾는 행위나, 치밀한 설계를 통한 내러티브로 찌질의 이유를 설득하고자 하는 건 아니니까. “찌질해도 이유정돈 있다”는 건 순전히 마주하기 싫어 내 안에 꾹꾹 눌러 묻었던 열등감을 개미 똥구멍만큼만 끄집어내어 쓰는 글입니다. 공감 따위를 내세우며, 읽는 이로 하여금 가독성에 장애물을 설치할 마음이 전혀 없음을 알리는 바입니다.

공감은 두 가지 측면의 몰입으로 발현된다.


첫 번째가 경험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일이나 감정을 겪은 사람에게 친밀함을 느끼고, 심리적 거리를 좁혀 좀 더 밀접한 무언가를 찾게 하는 힘이 경험입니다. 그건 반가움에 기인합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통해 내 존재가 어디 저세상의 멀고 소외된 존재가 아니란 안정을 보장합니다. 이 안정은 주류의, 메인의, 보편의 특징을 형성해 누구에게나 열린, 존중, 포용의 가치를 발생시킵니다. 누구나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보장된 방어기제 같은 것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어떤 경험이 나또한 겪어본 경험이라면 자연스럽게 몰입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몰입은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님)


하지만 몰입은 너무 급격히 소비된 감각이라서, 지금은 무디고 흐려져 있습니다. 지금의 내가 그렇습니다. 요즘 시대의 사회 이슈라던가, 개인이 지니고 있는 성향과 그 성향이 타인 간에 끼치는 영향 따위 무감각하고,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무슨 염세주의자가 되어버리고선 농의 가치를 잃고 진지충이 되어버린 것 같은…….



몇 달 전, B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습니다. B는 그저 지인일 뿐입니다. 우리는. <강철비2>란 영화를 보면서 정우성이야 그렇다 치고, 북쪽 수령님이 너무 미화된 게 아니냔 헛소리로 시작하여, 영화에 대한 토론을 달달한 흑당라떼를 마시며 나누었습니다. 주위에선 <강철비 2> 현실을 풍자적으로 반영해 잘 버무린 웃픈 S.F 전투 액션 영화란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S.F란 단순히 잠수함 액션을 놓고 말한 것뿐이라고요.

어쨌든, 우린 북쪽 수령의 외모에 대한 공감이 너무나 잘 기획한 것이 아니냐는 헛소리를 여러 번 지껄였던 기억 있습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대통령 박통, 대통령 경호실장, 그리고 암살의 김규평(김재규)의 싱크로율 따위로 역사적 사실과 지식적 경험을 통해 기가 막힌 현실성을 공감의 영역으로 포커스를 맞췄다면, <강철비 2>에선 희화와 풍자를 통해 현실성을 도드라지게 띄우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킬 미끼를 던진 것이 아닌가 침을 튀어가며 드립을 주고받았습니다.

역사적 사건과 사회 이슈, 간접적 경험과 직접 경험을 통해 영화를 경험적 공감으로 이끌었습니다. 경험적 공감은 가끔 영화의 플롯 스토리 내러티브 따위와는 독립적인 면이 있습니다.


경험에 의한 공감은 어디까지나 “공감을 하고 싶어서” "공감을 해야지~." 마음먹는다고 생기는 건 아닙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흘러들어온 공감이란 것입니다. 그게 첫 번째, “경험이나 체험에 비롯한 공감이라 생각한합니다. 타인의 경험과 자기 경험을 오버랩시키면서 발생하는 무수한 감정들이야말로 경험에 의한 공감이 지니는 무서움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깊은 결속력이 생기니까. 웬만해선 끊을 수 없는 결속입니다.

선명하고 뚜렷하고 명확한 이 감각은 어떤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을까? 나의 글쓰기 영역이 독자의 경험에 비출 수 있을까? 그것이 첫 번째 고민입니다. 글을 좀 짧고 일상적인 언어를 골라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공감에 이르지 못하는 첫 번째 병폐지만, 이상하게 심각하게 생각되지 않아 아무 말이나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 말이 공감이 될 수 있을까? 그건 두 번째 공감의 요인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두 번째 공감은 다음 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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