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혼자 주절주절!@#$%? Part_2
!@#$%? Part_2
외로움이 극에 달합니다.
그건 반드시 코로나19 탓은 아닙니다.
어쩌면, 경각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례가 될 수 있지만, 그렁그렁 맺힌 나의 외로움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 지극히 사적인 사유일 뿐입니다. 왠지 코로가 19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파괴될 수 있는 얄팍한 관계였다는, 뒤늦은 깨달음에 마음에 금이 쩍쩍 갈라지고 있습니다.
시간이란 게 흐르다 보면 관계란 것이 결속과 단절을 반복하게 되지만, 결국에 끊기는 것이 당위라면 당위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그 시일을 늦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나! 적어도 나는 그리 여기는 중입니다.
나름대로 관계를 지속하려 애쓴, 혹시 깨어질까 애지중지하던, 친하다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겨우 다섯 손가락 남짓한 수의 멸종위기의 관계. 각자 삶이 너무 치열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식하면서도 오랫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간간이 연락만 주고받던……. 너희의 치열한 삶을 응원하고 위로하던 지난 시간을 뒤로하고 그저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제안하던 날이 벌써 1년이 되어갑니다. 늘 항상 다음을 기약하는 말만 되풀이하고 단 한 번도 먼저 다음을 제안하거나 꺼내지 않는 친구들에게서 섭섭함이 서글프게 밀려듭니다.
말이 좋아 다음이지, 서너 번을 반복하다가 다음이란 것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면, 미필적 고의가 몹시 짙은 손절의 의사 표현이 아닌가! 스스로 합리적 의심이라 단정하며, 나는 내가 무엇을 잘 못하고, 어떤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닌지, 수십 번 되돌아봐도 당최 떠올릴 수는 없었습니다. 만나야 그딴 에피소드라도 생기는 게 아닌가…….
혹시 나는 불편을 초래하는 어떤 능력을 나도 모르게 발휘하는 버릇이 있는 게 아닐까? 아무리 혼자 궁리해도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건 내가 완성형에 가까운 인격체란 의미는 더더욱 아닙니다. 단지 듣는 사람이고, 시시콜콜한 물음이나 던지는 존재일 뿐입니다. 밥은 먹었냐? 아픈데는없냐? 일은 어떠냐? 많이 바쁘냐 등등 그런 ‘시시콜콜’이 어쩌면 의미나 의지조차 없는 그저 그런 존재로 치부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너희의 거절은 너무나 정당하고 합리적이다 못해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을 만큼 견고했습니다. 특히 가족과 모임, 건강과 관련한 진료 따위의 이유 앞에 내 바람은 너무나 졸렬해집니다. (얼굴이나 보게 차나 한잔 하자, 저녁이나 같이 먹자!) 그래 놓고……. 너희 SNS에는 다른 친구와 다녀온 동네 카페! 분위기 좋은 어느 Bar! 에서 찍은 사진이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이건 명백하게 미필적 고의에 대한 확인 사살! 달리 설명할 수 없는, 명백한 단절의 의지가 아닌가!! ㅜㅜ
나 따위야 뭐, 영혼의 단짝. 소울메이트, 절친, 따위가 아니니까. 더 자주 보고 더 친한 사람이야 얼마든지 있겠지, 이해해 봐도, 무수한 거절 뒤에 “다음에 열락 줄게!” 해놓고, “그래 시간 될 때 연락 해” 나의 애절한 부탁이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응답 없는 건 아무래도 역시 “나를 존나 싫어함”이 분명합니다. 너희는 너희의 그런 태도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겠지, 그리 생각하니, 한없이 찌질해지는 건 모두 나의 몫입니다.
찌질의 이유를 가끔은 찾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스스로 찌질하다고 여기는 것과 마주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이유 따위가 어떻든 서글퍼지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가끔은 나 아닌 다른 무언가의 탓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잘못 없다. 이건 다 너희들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마저 끝없이 외로워지는 길이라고 해도 한 번은 남 탓을 하고 싶으며, 빼도 박도 못할 팩트였으면 합니다. 이마저 애걸복걸 구걸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야속하지만 야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겠습니다.
개 찌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