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학교생활 스며들기

'적응'에서 '성장'으로

by 미루나무

미국에 온 지도 어느덧 4개월 차. 아이들도 몇 개월 동안 친구들을 사귀며 점차 미국 학교에 스며들고 있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한국인이 많지 않아, 초기에 친구들과 교류하는 데 소통의 어려움이 있겠구나 각오하고 있었다. 수업을 이해하기 힘들 거라는 점도 당연히 예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에 걸렸던 건,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혹시 인종차별을 겪지는 않을지, 친구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런 엄마의 우려를 보란 듯이 씻어주는 일들이 있었다.


에피소드 하나 - Bullying에 관하여


예전에 한국인 아이가 미국에서 겪은 이야기를 유튜브로 본 적이 있다. 대부분 도시락을 싸 오는 미국 학교에서, 그 아이는 멸치볶음을 가져갔다. 그런데 한 친구가 “한국인은 벌레도 먹냐”며 얼굴을 찌푸리고 구토하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그때 그 아이는 “Yeah, it’s yummy.” 하며 일부러 맛있다는 표정을 지은 뒤, “Don’t be so rude.”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장면이 꽤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이 최근 아들에게도 있었다. 인종이 다양한 만큼, 또래라 해도 체격 차이는 꽤 크다. 원래도 왜소한 편인 아들은 미국에서는 더 어려 보일 수밖에 없다. 점심시간에 놀이터에서 놀던 중, 한 덩치 큰 아이가 다가와 “너 너무 작다. 유치원 가야 하는 거 아니냐”며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아들은 그 친구가 평소에도 거친 말을 하는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처음엔 무시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다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Yes, I’m small, but strong.”

그 말을 듣자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아들 곁으로 모였고,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And we are three. We are strong. Don’t be so rude.”


아들은 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단단한 지지로 마치 영웅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부당한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는 말을, 아이가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으로 아들은 학교에서 ‘Growth Mindset(성장 마음가짐)’ 상을 받았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반에서 한 명만 받는 상이 었다. 시상식에서 교장선생님은 “새로운 것에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를 가진 학생”에게 주는 상이라고 설명했다. 낯선 환경 속에서 부딪히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 준 선생님의 시선이 참 고마웠고, 아이에게도 자존감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KakaoTalk_20260414_073947775_03 (1).jpg Growth Mindset 상이름이 너무나 멋지다

에피소드 둘 - 생일파티

어느 날 딸아이가 Bella라는 친구에게 생일파티 초대장을 받았다며 꼭 가고 싶다고 했다. 한국이었다면 같은 아파트 단지 안이니 혼자 다녀오라고 했겠지만, 여기는 미국이다. 생일파티 장소는 집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30분이나 가야 하는 롤러스케이트장이었다. 아이 혼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가족 단위로 움직이게 되었다. 평소에도 운전은 하지만 대부분 집 근처 10~20분 거리였기에, 시속 70마일로 달리는 고속도로 초행길은 솔직히 조금 긴장됐다. 그래도 엄마로서의 작은 챌린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KakaoTalk_20260414_113727016.jpg 파티 초대장

롤러스케이트장에 도착하니, 생일파티 호스트가 미리 테이블을 예약해 두고 초대 명단을 리셉션에 넘겨놓은 상태였다. 우리는 이름을 확인하고 체크인을 한 뒤, 딸을 초대석으로 보냈다. 나와 아들은 옆 테이블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시간을 보내면서, 슬쩍슬쩍 딸아이를 지켜봤다. 그 장면이 꼭 미국 하이틴 드라마 같았다. 생일인 친구가 아이들 사이에서 서로를 소개해주고, 처음 만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선물을 여는 순간이었다. 하나씩 포장을 풀며 어떤 선물인지 말하고, 기뻐하는 표정으로 친구를 꼭 안아주는 모습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KakaoTalk_20260414_073936335_06.jpg
KakaoTalk_20260414_114118223.jpg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딸

딸아이는 그 사이에서 아직은 조금 어색해 보였지만, 친구가 기뻐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툴더라도 빠지지 않고 계속 대화에 참여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3시간 동안 친구들과 손잡고 스케이트를 타고, 게임을 하고, 함께 어울리는 동안 아이는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용감하고, 기특하게 느껴졌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처음엔 버텨내는 시간일 거라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아이들은 이미 ‘적응’을 넘어 ‘성장’하고 있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고, 친구를 만들고, 관계를 쌓아가는 이 시간을 아이들은 분명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적응은 결국 아이가 해내는 일이 아니라, 아이를 믿는 엄마가 함께 배워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 속에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아이들을 힘껏 응원해본다.

목요일 연재
이전 08화하찮템으로 시작된,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