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nket-tradebox
최근 딸아이가 기발하고 귀여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 제목은 "Trinket tradebox"
trinket이란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면 '하찮은 장신구 따위'라고 나온다. 직설적인 의미 해석에 실소가 나오지만 맞는 말이다. 집 안에 굴러다니는 작은 장난감들, 예쁘지만 쓸모없는 작은 수첩, 펜, 관광지에서 산 예쁜 장식품, 유행 지난 포켓몬카드, 오너먼트 등등 우리가 흔히 일컫는 '예쁜 쓰레기'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나는 아이에게 trinket을 설명해 줄 때 하찮지만 예쁜 아이템이라 얘기해 주었다.
trinket= 하찮템, 예쁜 쓰레기
이런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교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않는 하찮템을 쓰레기통 먹이로 주지 말고, 혹시 누군가는 또 애정을 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익명의 이웃과 교환을 하는 것이다.
규칙은 아래와 같다.
1. 우리 집에서 굴러다니는 trinket(하찮템)을 잘 모아서 교환박스에 예쁘게 진열한다.
2. trinket tradebox(하찮템 교환박스)를 집 앞마당, 이웃들이 산책하며 지나가는 길목에 설치한다.
3. 음식이나 썩는 것, 햇빛에 녹는 것, 화장품, 고장 난 것, 보석이나 시계 같은 고가의 제품은 trinket이 될 수 없다.
4. 반드시 교환을 해야 한다. 하나를 집어가면, 자기 것 하나를 놓고 가야 한다.
5. 이름을 남기고, 오늘치의 행복을 충전한다.
6. 이런 식으로 교환이 계속되면, trinket tradebox는 익명의 이웃들에 의해 매일 업데이트된다.
이 규칙 덕분에 trinket tradebox는 조금씩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일주일간은 정말 신났다. 산책하던 이웃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웃으며 들여다보고, “It’s fun!”이라며 아이를 칭찬해 주었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 자기 장난감을 하나 내려놓고 가기도 했고, 아직 글씨가 서툰 아이들이 방명록에 꾹꾹 이름을 남기는 모습은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작은 행복 충전소가 잘 운영되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박스 안에 있던 대부분의 물건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심지어 방명록수첩까지도... 우리 아이들은 분노하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하지 말까 하며 포기하는 마음도 잠깐 생각했다가, 집에서 안 쓰는 카메라를 cctv처럼 보이게 설치해서 경각심을 주자는 의견도 나왔다가, 결국은 “훔치지 말아 주세요”라는 문구를 붙이는 선에서 정리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우린 정말 깜짝 놀랄만한 일을 겪었다. 딸아이 방에서는 trinket trade를 하는 사람들이 블라인드 사이로 보이는데 한 노부부가 trinket tradebox앞에 커다란 종이백을 놓아두고 갔다는 것이다. 뛰어나가서 이야기해 보니, 위로의 작은 선물이라며 두고 갔다는 거다.
종이백 안의 물건들은 작은 액자프레임, 예쁜 수첩, 노트, 캐릭터볼펜, 파티용 안경, 인형키링 등등 trinket으로 훌륭한 것들이 가득 있었다. 제일 인상 깊었던 건, 그들이 남긴 편지.
"누군가 너의 것을 훔쳐갔다는 문구를 보고 마음이 쓰여서 이걸 두고 간다. 도움이 될 만큼 충분할지 모르겠구나. 누군가는 이걸 즐길 만큼 행복의 여유가 없나 봐. 부디 다른 사람이 너의 행복을 훔치지 않길."
우리 아이들은 이걸 보고, 와!!! 하고 탄성을 내며 감동했다. 특히 개인적으로 난, 누군가는 이 행복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다고 표현한 그분들의 말에 깊이 감동했다. 그 마음을 알고 이해해 주는 사람만이 그런 표현을 쓸 수 있기에 '선한 행동과 말'이 무엇인지 환기가 되는 편지였다.
아이들도 이 사건과 편지를 계기로 생각이 전환되었다.
“맞아. 대부분의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한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의심하면, 그건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 아니야.”
아이들은 붙여두었던 날카로운 경고문을 거둬들이고, 규칙을 조금 더 명확하고 따뜻하게 다시 써 붙였다.
고백컨대, 이 기발한 이 아이디어는 우리 딸 아이 스마트폰의 AI추천알고리즘으로 시작되었다. 평소에 작고 예쁜 것들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고 그리고 사는 곳이 미국으로 바뀌면서 아이에게 맞춤형으로 이런 프로젝트가 소개된 것이다. World Wide Sidewalk Joy라는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것으로, 미국의 한 사진작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이웃과 따뜻한 연결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고안했다고 한다. 생각보다 빠르게 전 세계로 퍼지고 있었고, 우리가 사는 텍사스에는 아직 몇 개 되지 않아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참여하려면 1년 동안 책임감 있게 운영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간단한 소개글을 제출해야 하고, 승인되면 구글맵에 등록되어 누구나 찾아와 교환할 수 있게 된다. 딸아이는 이 프로젝트를 발견하자마자 “우리 동네도 해야 해!”라며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지원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승인 메일을 받던 날, 방 안에서 폴짝폴짝 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도 trinket trade box는 계속 운영 중이다. 매일 바뀌는 물건들, 점점 채워지는 방명록.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작은 기쁨을 발견한다. 당혹스러움과 분노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 깊은 인류애를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매일 박스를 돌보며 책임감도 배워가고 있다. 별것 아니었던 작은 물건들이 이제는 의미와 감정을 담은 특별한 것들로 바뀌었다. 이건 분명,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