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두려움, 걱정의 끝에서 퇴사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몇 개월 쉰다고 해서 인생 끝나는 거 아니잖아~충분히 쉬다가 다시 일하고 싶을 때 일하는 건 어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결정했으면 좋겠어~"
막상 퇴사라는 결정을 하려니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막연한 불안감도 한몫했고, 남편을 향한 미안함도 있었다. 더군다나 숨만 쉬어도 매달 지출되는 고정비가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4~5개월을 '배터리 절약 모드'로 최소한의 에너지와 감정만 소비하며 시간을 흘러 보냈다.
회사에 전문 코칭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타 부서 상사가 계셨다. 먼저 요청드리지도 않았는데, 감사하게도 그분께서 코칭을 받아보지 않겠냐 제안해 주셨다. '일의 의미'에 대한 코칭을 5회 받았고, 5주의 시간 동안 일의 의미를 찾고자 내 나름대로의 치열한 내적 성찰과 고뇌를 이어갔다.
결과는? 이렇다 할 의미를 찾지 못했고, 오히려 마음이 더 번잡스러워졌다.
돌이켜보면 난 '월급쟁이' 신분으로 살면서부터 일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답을 찾으려 애를 썼던 것 같다. 찾고 또 찾았지만, 찾지 못했고 "그냥 돈이나 착실히 모으자, 돈이 나를 지켜줄 거야, 지금 내 상황이 그런 뜬 구름 잡는 이상을 좇을 입장이 돼?"라고 철저한 합리화를 했다. 나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척'하며 월급노예의 기계적 삶을 충실히 살아냈다.
그 무렵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우연한 기회에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퇴사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면 좋겠어요'의 주제로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은 뜻밖의 전개로 원가족, 가정환경, 어린 시절의 내용으로 흘러갔고, 내가 원래 생각했던 흐름은 아니었지만 이 또한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해 상담사 선생님의 리드에 따랐다.
나는 내 속내를 거의 말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하지 않으며 살았다. 내 얼굴에 침 뱉는 행동이라 생각했고, 보이지 않게 잘 덮어둔 상처나 아픔을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아니 말할 수 없는 상처를 하나씩은 끌어안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비밀보장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 상담이 끝이 나면 다시는 보지 않아도 될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나는 깊은 속내를 풀어내기 시작했고, 말하는 순간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가 치유의 손길로 쓰다듬어주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고단한 시간들을 그래도 잘 버텨온 것 같아요."라는 공감의 말은 나로 하여금 희미한 '용기'의 길로 이끌어 주었다.
지나온 시절들을 회상하고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 그때의 감정을 느껴보는 시간들을 통해 지금의 강박과 불안, 걱정 등의 근본적 원인을 탐색할 수 있었다. 내가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단순히 경제적 불안 때문만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확한 해결책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상담을 통해 나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용기가 생겼다.
따스한 어느 봄날에 결국 퇴사를 했고,
나는 그렇게 '백수'의 신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