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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준호 Jul 17. 2021

푸르게, 푸르게. 지옥 같은 과거, 현재, 미래일지라도

천선란, "천 개의 파랑"

말 그대로. 천 개의 파랑.

인간은 새하얀 눈처럼 철없고 순수하게 태어난다.
그렇게 태어나서, 지옥같이 끔찍한 세상을 마주한다.
본인 편의대로 동물들을 사로잡고 이용하며 때론 죽이는,
식물들을 사로잡고 이용하며 때때로 죽이는.
자신과 똑같지만 서로가 역겹기도 눈물 날 정도로
고맙기도 한, 그런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런 세상에서 살면서 속세라는 붉은 먼지가 붙게 되고
어두워지면서, 무감각해지면서 이 세상에 적응한다.
 콜리는 그렇게 태어나선 안 됐지만, 실수로 인해 인간처럼 무궁무진한 순수를 가지고 시각센서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마주한 지옥 같은 세상. 콜리는 그게 지옥 인지도 모를 테지만 이미 그 세상에 들어와 버렸다.


인간의 산물이기에 덧없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페이지의 마지막을 넘기면서 푸른 따스함이 가슴속을 단단히 채워 벅찬 흥분이 가득했지만, 종국에 남았던 것은 반성과 후회였다. 나 역시도 언젠가, 동물을 하찮게 여겼고 식물을 쓸데없는 필요에 의해 학살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었던 대물림된 인간이기에 반성과 후회가 남았다. 다시 기적을 울리고 싶었다. 되돌아가 인물들을 생각해보며




달릴 수밖에 없는 세상이기도 한 이곳에서, 달리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었던 투데이. 오늘만의 길고 긴 레이스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살아가야 했다.

검은 갈기를 눈부신 파노라마처럼 흩날리며, 콜리에게 행복하다고, 살아있다고 외치는. 한 마리의 짐승이자 뛸 수밖에 없는 생명이며 천 개의 불행 속에서 단 하나의 행복만을 생각하는 불쌍한 생물. 투데이.


끝까지 투데이를 생각했던 것은 콜리였고, 그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이상한 인간들이었다. 민주를 시작으로, 연재와 은혜, 보경과 지수, 복희, 서진.


 각자의 스토리를 촘촘하게 직조하면서 인타라망의 연처럼, 그 직조된 덩어리들을 아름다운 조화로 완성시켰다. 멀고 먼 삶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노스탤지어부터, 들끓는 청춘의 이상 신비함까지 갖췄다. 앞선 것에 비해서는 아쉬웠던, 알게 모르게 사회에 스며들었던 과학기술의 면모까지 담아낸 점이 가슴을 울리는 것에 한 몫했다고 본다.

두 번의 낙마. 철저하게 프로그래밍되어야 하는 기계에게 벌어진 인간 같은 상황. 본인을 위해서가 아닌, 오롯하게 투데이를 위해서였던.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처연한 행동이었다. 다리뿐만 아니라 온 몸이 부서진 두 번째 낙마는, 밤에 수놓았던 별들과 낮을 가득 채웠던 쨍한 푸른빛의 파랑들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인간들은 콜리처럼 수없이 낙마했고, 콜리와는 다르게 인간인지라 그 넘어진 땅을 짚고 일어선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기에, 벌어진 간극이 있었고, 멈춰진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정말 인간이기에 다시 간극을 좁힐 수 있었고 시간을 흐르게 만들 수 있었다. 그 간극 속의 계곡이, 멈춰진 시간 속의 나이테가 어찌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작가의 물감 번지듯 마음을 울린 필력이 수려하다.

인간이라서 가능한 기적들, 기계라서 가능한 기적.
상처 받았던 순간들은 상처가 있던 눈물겨운 인간들의 사랑과 정으로 인해 치유된다. 3%의 절망은 300%의 무게에 깨부숴지며 300%의 사랑과 정으로 1초, 2초, 흐르게 됐고, 1초처럼 느껴진 생존의 48시간은 당돌하지만 뛰어난 연대에 여름철 장마처럼 촉촉이 젖어 억센 푸른빛의 생명을 세워냈다.

경마장의 기회만을 노리는 인간들이 있는가 하면
보경처럼, 은혜처럼, 복희처럼, 연재처럼
경마장의 푸른 하늘만을 바라보는 인간들도 있다.
한 자 한 자, 영겁의 고민처럼 적혔을 소설이 비단 3시간의 짧은 회고처럼 들려온 것은, 후자의 인간처럼 살아가라는 메시지와 같다. 매력적이고, 아름다웠으며 나도 모르는 눈물이 흐른, 그런 소설이었다.

푸르게, 푸르게. 지옥 같은 현재, 과거, 미래일지라도.
지옥 같은 현재, 과거, 미래일지라도 푸르게 푸르게.


천 개의 파랑처럼 푸르게, 살자.
천 개의 부품으로 흩어진 콜리와
하나 된 뜨거운 심장으로 태양과 마주한 콜리의 꿈처럼
푸르게 살아야겠다.




짧지만 긴, 고백처럼 적었던 생각들을 기록한 채

모든 이가 "천 개의 파랑" 속 푸른빛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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