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 미시룩이라는 단어가 있다. 동탄과 같은 신도시의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주로 보이는 스타일인데, 멋진 몸매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정 세대나 집단이 공통되게 입는 스타일은 꼭 웃음거리가 되는 듯하다. 가장 단정하면서도 미니멀한 모나미룩부터, 젊고 트렌디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요즘의 40대를 향한 영포티룩까지. 그런 사람들에게 웃음을 보내는 그들 또한 무채색을 좋아하고, 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들과 너무 닮아 보이지도 않는, 그들에게 최적화된 옷을 입기 위해 무던히 애쓸 것이다.
비웃지는 않지만, 나 또한 남들 입에 오르내려지는 옷에는 손을 잘 뻗지 않는다. 더욱이, 평가에 쉬운 한국에서 몸매가 드러나도록 딱 붙는 옷을 입는 건, 드러낼 몸매가 없는 나에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반항인지, 도전인지, 그도 아니면 내 어딘가의 갈망 때문인지 나는 헝가리에서 입어보고 싶었던 옷을 입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 즐겼다. 한국의 옷 가게에선 장난 삼아 내 몸에 대어 보이며 웃기려는 옷을, 헝가리에선 진지하게 민에게 보여주며 살지 말지 고민했다. 때문에 같이 간 민은 적잖이 당황했을 텐데도 나에게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에만 기준을 맞추어 고민해 주었다.
헝가리에 살기 전엔 자라나 h&m을 잘 가지 않아서 몰랐지만, 어느 SPA 브랜드에 가도 있는 골지의 슬립핏 원피스는 내 눈길을 끌었다. 아, 이거 한국에서는 절대 못 입는 옷인데. 이거 입으면 밥도 제대로 못 먹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M과 L 사이즈를 각각 들고 탈의실로 향해보는 나다. 민에게 미시룩을 설명하며 한국에서 절대 입지 못할 거란 변명들을 가져다 붙이며 계산대로 가져갔다. 입으면 어딘가 모르게 태도가 요염해졌다. 파티가 있을 때마다 입고 간 드레시한 원피스. 친구들과 신나게 머리를 흔들며 춤을 추면, 드라마에 나오는 일탈하는 여주인공이 클럽에 가 정신없이 흔드는 장면이 겹쳐진다.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면 묘하게 부끄러워지지만, 입은 날 대체로 자신감이 상승했다.
올여름에는 유난히 길고 더웠던 탓인지 유행을 선도하는 지드래곤에게 양산을 써달라는 글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남성도 양산을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엄마 옆에서 말고는 양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을 찾기 드물기 때문이었다. 좋은 아이템이 인기를 끌면 지하철만 타도 그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솔직히 한국에 살면서 그렇게 사는 것은 익숙하다. 오히려 편할 때가 많다. 유행 버스에 탑승하여 편하게 고를 수 있으니. 비단 한국만의 얘기는 아니지만, 내가 본 한국은 그렇다는 말이다. 단적인 예로, 유행을 넘어섰지만, 겨울이 오면 모두가 김밥처럼 롱패딩을 감싸고 거리를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달라져보고자 결의를 다지며, 혹한기 생존템인 롱패딩을 과감히 포기한 민과 나였다.
개인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라 말하고 내가) 패션의 대중화에 빠른 이유는, 하루를 살아가기엔 신경 쓸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어쩐지 예쁜 옷을 개시한 날. 내 모습이 어색하다. 치마가 조금 짧나? 색이 너무 튀나? 오히려 살쪄보이나? 여러 가지 생각으로 걸어 다니다 보이는 모든 거울 앞에서 걸음을 늦춘다. 머리를 땋은 날에는 자꾸만 창에 비친 내 모습에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풀어버리고 만다. 그러다 친구들에게 '이상하지?' 하며 한 번이라도 보여주고 원상 복구하자고 한 날, 친구에게서 "예쁜데?"란 말이 들려오면 자신감을 얻는다.
수업 중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머리를 양갈래로 나누어 반 묶음을 한 걸 보았다. 양 끝으로 방울이 달려 휘휘 감아 묶는 끈을 사용했는데, 언제였던가 유치원 때 엄마 앞에 앉아 눈이 째질 만큼 끌어올려진 머리를 방울끈으로 묶어주던 게 떠올랐다. 참 귀엽고, 당당하게 느껴졌다. 다음에 조그만 고무줄로 열심히 묶고선 강의실에 들어섰는데, 많은 칭찬을 받았다. 물론 스몰톡의 한 부분에서 내 변화를 알아챈 덕분이겠지만, 난 순수하게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칭찬의 영향은 대단했다. 고무줄로 내 머리카락을 마음껏 가지고 놀았으니.
나는 살아가며 싫어하는 것만 피하면 뭐든 상관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뚜렷하게 무언가가 끌린 적도 좋아진 적도 드물었다. 이런 면도 저런 면도 있는 게 사람일 텐데, 왜 혈액형이나 MBTI 등으로 성격을 가르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지 이해가 힘들었다. 그렇게 좋은 게 좋은 거라, 살았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도 뚜렷한 성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성격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평소와 다르게 굴어보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평소 생각만 했던 것들을 부다페스트에서 많이 실천했다. 평소에 하지 않는 옷, 신발, 머리스타일, 화장법. 어떤 것은 기분이 좋아졌고, 어떤 것은 부끄러웠다. 그 모든 게 나를 찾는 과정이었다. 옷이 나를 말해주고 얼굴이 나를 말해준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변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 한 번 한국에 대해 불평하자면, 한국인들은 칭찬이 너무 박하다. 부다페스트에서 받은 칭찬들이 나의 청소년기 이래로 받은 칭찬들보다 많을 것이다. 칭찬은 나를 춤추게 하고, 나를 다정하게 만든다. 비꼬아 듣지도 않을 것이고, 의심하지도 않을 테니 부디 나에게 작은 칭찬을 건네주면 좋겠다. 어쨌든 이렇게 칭찬이 희귀한 곳에서 '변화'는 기분 좋은 피드백을 받기 힘들다.
그래서 말인데, 일단은 내가 먼저 칭찬을 시작해 보자는 결론을 내려보았다.
너 오늘 입은 니트 너무 예쁘다! 너랑 잘 어울리는데?
고마워~ 오늘 추워서 입은 건데ㅎㅎ 너도 오늘 귀걸이 못 보던 건데? 너무 예쁘다!
이렇게 칭찬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칭찬이 칭찬을 낳는 그날까지. 이 글을 보는 우리 모두 다정에 힘써보길 바라본다. 마지막 여행지였던 스페인에서 산 옷이 삭기 전에 한국에서 (!) 개시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쳐본다. 모두 따라 해보자. 예뻐, 멋져, 잘 어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