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선배!
지난 봄, 자랑삼아 얘기했던 6개월 과정의 글쓰기 반이 막바지입니다.
이제 바람끝도 제법 선들해져 어깨에 파고들고 그 기운만큼 청량해진 나를 발견합니다.
처음 글감을 받아들고서 양 갈래의 감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기억. 내 인생 전반부에 무게 추를 두고 다분히 가라앉은 나를 마주 대하느라 힘이 들었던 나는, 젊은 작가의 한 마디에 발상의 전환이 왔습니다.
‘남편의 얘기할 때 밝고 기분이 좋아져요.’
다시 생각해 봅니다. 내가 힘이 들 때 내 곁의 사람들도 그랬을 거라는 것. 내가 힘든 만큼 나로 인해 그들은 조금 더 살만했을 거라는 것. 그만큼 난 장하디 장한 시간을 살아냈다는 것.
계절이 세 번 가는 동안, 난 이 글을 쓰면서 밤에는 직설적으로 토해내고 아침에 다시 접는 과정을 계속합니다. 나와 연관된 모든 대상에게 누구 할 것 없이 편지를 쓰고 지웁니다. 한 번도 한 적 없는 나를 내보이며 때로는 원망으로, 때로는 공치사로, 때로는 화해로 밤마다 계속합니다. 상황극의 한 토막을 원했던 나는 서서히 나를 찾아갑니다. 그들은 모두 내게 ‘수고 했다’며 등을 토닥입니다. 많은 일이 있었고 더 할 나위 없이 좋았고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지금을 응원합니다.
그래요. 누구보다 잘살아 낸 내가 있습니다. 나를 1순위로 두는 남편과 제 몫을 다 해내는 아이들과 언제라도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나눌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채 이제는 오롯이 내 시간을 영위하는 내가 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자랑스레 간직하면서…
얼마 전, 전통주 반 선생님의 연구소인 발효 작은 도서관에서 직접 빚은 송순 과하주를 갖고 성묘 다녀왔습니다. 울대리 엄마 아빠 산소와 월야 시부모님 산소에 그리고 학산면의 할머니 친정 선산까지.
‘내가 그분들의 자랑스러운 자손이구나.’ 마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를 아는 모든 이가 나로 인해 지그시 미소 짓게 되길…
이 글을 마치며
몇 년이 지난 후, 나 자신이 지나온 세월에 대한 생각이 바뀔 것이므로 보충하는 형식으로 고쳐 써 볼 기회가 오기를 희망합니다.
이 작업을 도와 책을 만들어주신 분들께, 몇 분이 되실지 모르지만 이글을 읽어주실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2024. 십일월의 어느날에. 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