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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아 Nov 18. 2024

두 해가 덤으로 주어지다.

두 해가 덤으로 주어지다.


“몇 개월인가요?”

놀이터나 엘리베이터에서 어린아이를 만나면 꼭 묻는다.


나이의 의미는 지대하다. 어릴 적 엄마에겐 더욱 그렇다. 태어난 월수를 세며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해서 늦되지는 않나 노심초사이며 돌이 되면 넘어야 하는 몇 가지 관문이 있다. 말을 해야 하고, 걸어야 하고, 치아는 몇 개쯤은 돋아줘야 하고, 거꾸로나마 동화책을 펼쳐야 한다. 이때 조금이라도 늦으면 병원행이다.

우리처럼 언니, 오빠, 형, 누나로 구분하고 존댓말과 반말이 엄격하며 비슷한 레벨 안에서는 서로가 나이를 먼저 따지는, 한국은 서열 매기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나라인 듯하다.


이제는 ‘위아래 열 살은 같이 가자’가 되었지만 ‘나이도 어린 게’는 불문율이었다. 나잇값을 따지기도 한다. 나이 앓이도 한다. 아홉수에서는 연 나이와 만 나이, 그리고 세는 나이 등 온갖 핑계를 대며 앞자리가 바뀌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누구는 나이가 많아서, 누구는 어려서 고민이다. 어릴 때는 그 나이에 해서는 안 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나이를 먹길 바라고,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는 나이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 한숨 짓는다. 어려서는 ‘좀 더 나이 들면 하지 뭐.’라는 생각에, 나이가 들면 ‘이 나이에 무슨….’ 이런 생각에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한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실험도 있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앨렌 랭어가 7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노인들에게 20년 전의 환경에서 살아가게 한 후 신체나이를 측정한 결과 전보다 무려 7~10년이나 젊어진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저 환경을 바꾸었을 뿐인데 젊어졌다는 것은 정말 놀랄만한 이야기인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할 때 인용하는 실험이다.


나이 얘기이다.

친구들은 거의 모두가 OO 띠인데 그중에서도 나를 포함 늦둥이들인 00년생이 몇 명 있었다. 그 이유는 그 해 마을 어머니들 20여 명이 임산부였는데 다른 엄마들이 모두 해산한 뒤에도 오랫동안 늦게까지 엄마는 배가 불러 있었던 것이다.

다음해 1월생 늦둥이인데다 신고가 늦어져 출생일과 신고일이 달라서 어려움은 시작되었다. 음력으로 챙겨 올린다는 게 한 해, 햇머리를 착각하여 또 한 해, 실제 생일보다 두 해나 높여 신고된 것이다.


‘저는 출생일과 신고일이 달라서 어릴 적 학창시절부터 교우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본 나이 (토끼띠)로 교류하다가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두살이나 차이나는 주민등록 나이에 대해 구구히 설명해야 했고 저 스스로도 두 살의 간격으로 살아가야 하는데서 오는 혼란과 어려움은 매순간 저를 당혹하게 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위축되도록 만들었습니다. 평생을 대인 관계에서, 언니이자 오빠이기도 한 사람들과 동년배로서, 동년배에게는 언니로서 살아 오면서 마음 고생은 너무 컸고 이들과의 관계설정에 매번 혼란스러웠습니다. 특히 직장에서는 동기의식이 강하고 서열에 민감한 선후배 사이에서 범띠 년생은 ’범띠가 맞냐고‘, 토끼띠 년생은 ’호적대로 하자‘하고, 용띠 년생은 저를 어른 대접 하느라고.....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동료의식을 가질 수 없었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왔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다만 직장에서 만만찮은 상사 노릇을 할 때는 두 살 위의 호적 나이가 더할 나위 없이 요긴했습니다. 하지만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부분을 바로잡아 정체성을 확보하고, 마음에 항상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는 나이 문제를 해결해서 앞으로 남은 생은 자신있게 살고자 합니다.’


준비사항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은 <본인 진술서> 초안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누구는 대단하고 용감한 일이라고, 또 누구는 이제야 바로잡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인우보증서를 부탁했을 때 사람들이 그랬다. 이제 와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리 어렵다는 국가 장부에 손을 대느냐는 것이다. 이제 내 나이도 그때의 아버지를 이해할 만큼이고 한편 이 일을 해결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되어 나만의 소신을 믿기로 했다. 나의 글쓰기 실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생년월일 정정 신청을 감행하였다. 성공이었다. 정성을 다한 진술서가 진정성을 발휘한 것이다.


나이가 많아도 나이가 적어도 고민거리인 시대. 두 해에 얹어진 나의 생이 덤으로 주어졌으니 하고 싶은 일을 하리라. 어릴 적 만 18세가 되지 않아 시작된 내 성인의 삶. 두 해쯤은 느긋한 휴식의 시간으로 사용 하리라. 또래와 소속감을 갖고 진정한 마음으로 교류하리라.


어깨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는 놀라운 발견을 하고 만다. 챠트의 내 나이가 이 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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