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스쿨, 원각사 급식소 봉사
원각사는 파고다공원터에 있던 고려 조계종의 본산인 사찰이다.연산군이 여기에 '연방원'이라는 기방을 만들고 중종7년 절을 허물어 재목을 나누어 줌으로써 절은 없어지게 되었다고한다.
오늘 노노스쿨 동기들과 함께 원각사 무료급식소로 봉사를 다녀왔다.
시작은 오전 열 시 반이지만, 나는 조리팀에도 지원했기에 아침 아홉 시까지 서둘러 도착했다.
종로3가에 내려 눈치껏 어르신들을 따라가다 무료급식소를 물었다. 서너 분이 나를 따라오라며 두 군데니 맘에 드는 곳으로 가면 된다고 하신다.
먼저 도착한 일행과 함께 앞치마를 챙겨입었다.
커다란 상자들에는 손질해야 할 채소들이 가득했고, 그 앞에서 우리는 재료를 다듬고 과일을 소분하고 요리를 위해 산더미 같은 칼질을 묵묵히 이어갔다.
팔목이 저리도록 다듬은 채소들은 어느새 밥 한 끼의 재료가 되어 갔다.
머리가 띵하고 허리가 뻐근했지만, 잠시도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시간이 다가오자 하나둘 들어서는 동기들의 손이 무척이나 반갑다.
현장에서 스물아홉의 아르바이트생을 만났다. 취업이 안 되어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 나왔다라며 부모님은 시집이나 가라고 하신단다.
우리 얘기를 물으며 “퇴직하면 적당히 놀고 여행하며 살지 봉사는 왜 하느냐”는 것이다.
“놀고 먹는 것만 가지고 살 수는 없다”라고 답해주었다.
열 시 반이 되자 본격적인 '밥 퍼’가 시작되었고, 식판을 든 어르신들이 줄을 이루기 시작했다.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마치 도시의 소음과 먼지 속을 걸어온 인생의 시간들이 줄을 선 듯했다.
식사를 마주하는 어르신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 한 끼가, 누군가에겐 하루의 버팀목이자 생의 위로가 되겠구나.
그러한 마음으로 나는 다시 허리를 곧게 세웠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 한 끼가 될 수 있다면, 그 수고로움쯤이야 괜찮다고….
그런데도 모든 일이 끝나고 나니 다리가 휘청거렸다.
돌아오는 길, 손끝에 남은 음식 냄새가 묘하게 따뜻했다.
오늘 하루의 피로가 아니라, 마음 한켠에 작은 감사가 남았다.
‘봉사’란 남을 돕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란 걸 그 한 끼의 무게 속에서 새삼 다시 깨달았다.
정작 원각사 탑이 어디에 있는지도, 탑골공원이 어느 방향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앞사람의 발걸음을 따라 종로 거리를 빠져나왔고 대신 익선동 골목에서 차 한잔을 나눈 뒤 집에 돌아왔다.
드물게 힘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