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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Mar 31. 2022

당신의 결혼 조건
1순위는 무엇인가요?

OO보고 결혼했다가 자기 눈을 찔러버린 한 여인의 슬픈 이야기

  "나 인물 보잖아. 나 남편 얼굴 보고 결혼했어."


우리 부부를 아는 사람이라면 거의 100% 웃음이 터진다.  


송혜교가 열연을 펼친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거기 패션회사 더원 황 대표가 딸, 황치숙을 시집보내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드디어 딸 옆을 얼쩡대는 남자를 찾아내고 자기 딸을 사로잡을 꿀팁이라며 해주는 말이 있다.   


"걔가 보는 건 얼굴 하나야!" 


설거지하다 그 장면에서 빵 터져 한참을 웃었다. 이 드라마 작가님 뭘 좀 아시네.        



 남편과 본격적으로 사귀기 전, 친구의 소개로 몇 번 만난 남자가 있었다. 

노트북을 배낭에 넣고 메고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배낭이 빨간색이었다. 

늘 만나면 그 빨간 배낭을 가져가 자기 어깨에 둘러메며 너무 무겁다고 이걸 어떻게 메고 다니냐고 

따듯하게 말했다. 그때만 해도 노트북이 진짜 무거웠다. 자기 가방에 내 노트북 배낭까지 메고 

종로를 돌아다니며 서점에 가서 책을 보고,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그 사람은 분명 내가 마음에 드는 거 같았다. 내 눈도 잘 쳐다보지 못했고, 다정함이 넘쳤다. 

눈빛은 또 왜 그렇게 따스했던지... 그게 문제였다. 

그 시절엔 착하고 따듯한 남자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 보이는 거다. 

솔직히 그의 얼굴, 외모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몇 년이 지나 이 소개팅을 주선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 남자가 어느 지방에 엄청 부잣집 아들이라는 거다. 

엥? 얘 뭐지? 친구 맞아? 진작 말을 하든가! 사람 좋아 보였는데... 

아깝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에 비해 남편은 다정하다기보다는 차가운 느낌이었다. 

왠지 나를 안달하게 만드는 그 차가움에 끌렸다. 무엇보다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차갑든 따스하든 상관없는 것인가? 결국 얼굴인 건가? 

나만 그런 건 아니다.  

넷플릭스 '블라인드 러브' 시리즈가 왜 만들어졌는가.

그걸 본 딸이 나에게 해준 이야기인데, 

블라인드 상태에서 거의 완벽하게 나와 맞는다고 했던 한 남자의 외모가 드디어 공개됐는데

여자는 많이 당황하며, 외모 공개 이전에 깊이 나눴던 감정을 모두 부정하고 

그냥 잘생긴 남자를 향해 돌진했단다! 넷플릭스는 왜 이 시리즈를 만들었을까?

단순히 외모에 좌우되는 연애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 시리즈를 만들었다면

넷플릭스의... 인류애(?)! 이건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다.   

더 빨리, 나 스무 살 때 만들어 나도 좀 구원해주지. 

어쨌든 차가운 인간한테 매력을 느끼다니 나는 정말 바보다. 

물론 맘에 들  수밖에 없는 구석도 있긴 했다.  

무엇보다 해결을 참 잘했다. 특히 나의 치명적 약점인 IT분야에 상당한 역량을 

보유한 인간이라 원고를 날렸다고 울면 달려와 백파일 찾아주고, 노트북 먹통 되면 고쳐놓고. 

그런 걸 진짜 잘했다. 그리고 사사건건 아는 게 많아 보였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자기는 집에 있는 백과사전을 다 읽었다고. 

슬프게도 난 아는 척, 잘난 척하고 싶어 안달 난 인간을 태생적으로 지적인 인간이라 생각한 거다. 

그 백과사전 읽을 시간에 인간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예를 들면 '폭풍의 언덕'같은 작품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는 지금 과연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까?  


남편은 일단 공대남이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감능력까지 상당히 낮다. 

공대남과 공감능력을 묶어서 이야기하면 공대남들이 들고일어날 거 같아 좀 걱정이 되지만

우리 딸이 문과로 대학에 들어간 후 언젠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엄마, 남자애들이... 막 공감을 해준다. 이상해. 

  대화하다가 좀 놀랐어. 아빠가 좀 그렇긴 해."  

 

남편과 살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그가 내 슬픔, 비통한 마음에 공감을 못하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다.      

내가 기분이 좋고, 행복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특히 나를 괴롭히는 어떤 일이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아주 그냥 신바람이 나서 후루룩 해결하고 스스로 행복에 이른다. 

그러나, 자기가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일로 내가 힘들어하고 우울해하면 

그는 웬일인지 아노미 상태가 된다. 

공감해주고 다독이며 우리 함께 이 어려움 헤쳐나가 보자! 그런 말을 못 한다. 

그저 빨리 그 문제를 해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나를 거기서 

탈출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좋아하고, 흠모하고, 심지어 아끼는 대상이나 일 때문에 힘들고 속상해지는 법이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장 때려치워! 없애버려! 끊어버려!  

무슨 일이야? 자기가 뭔데 내 인생을 결정해. 

힘들다고 다 때려치우면 도대체 뭘 하면서 살아?   

이 내용을 잘못 해석하면 어려움에 처한 나를 바라보기 힘들 만큼 사랑하고 있다?

그런 방향으로 오해를 할까 봐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인데, 그건 절대 아니다.

남편에게 자기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은 귀찮은 일이다. 

공감을 못하는 인간은 자기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귀찮은 일을 싫어한다.

한마디로 이기적인 것이다.      


결혼은 정말... 따듯하고 다정한 말로 공감해주는 사람과 해야 한다.  

혼자 살 땐 그냥 내 몸 하나 건사하면 끝이지만, 

결혼하면 모든 것이 두 배다. 물론 행복도 두 배지만 걱정도, 부담도 다 두 배다.

뭔가 복잡하고 골치 아픈, 지구가 두 쪽이 나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은 분명 생겨난다.

하다못해 명절에 전 부치기, 그런 별 거 아닌 일마저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게다가 가족은 늘 행복하지 않다. 아주 꿀처럼 달콤하다가도 몇 마디 말에 상처받고

한 순간 얼음장이 된다. 그런 일은 수두룩 하다. 아주 빈번하다. 

그럴 때 서로를 다독일 수 없다면 그 결혼은 그냥 지옥이다.  

그걸 알고 결혼을 해야 할 텐데...

나처럼 얼굴 보고 결혼했다가 낭패 보지 말고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상대가 있다면

일단 아주 극단적인 부정적인 커뮤니케이션 테스트 과정을 여러 번 거쳐서

남편감(또는 신붓감)이 그 상황에서 얼마나 다정하게 공감하는지 검증한 다음

결혼 여부를 결정했으면 좋겠다. 아니 꼭 그래야만 한다!   

그냥 공감해주고 내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 힘을 내보자고 하면 될 일을  

절대 풀 수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로 만드는 남편, 아주 재주꾼이다. 재주꾼 나셨다!    

한마디로 그는 부정적 커뮤니케이션을 못하는 인간,  

나는 그런 인간과 결혼이란 걸 했다.  


부부싸움이 끝나지 않고, 언성이 높아지고... 

(더 자세히 쓰면 안 되겠다. 부부싸움이 뭐 대충 그렇지 않나요? 흠흠)

저 답답한 인간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니 아주 골이 아파 죽겠는데, 

평행선을 달리는 우리 부부를 중재하던 큰 아이가 

아주 속 터져 죽겠다는 듯 소리를 지른다. 


"아! 그러니까 엄마는 공감받는 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면서 왜 아빠랑 결혼을 했어!" 


그러니까... 내 눈이 문제다. 나는 왜 저 인간 얼굴이 맘에 들었을까! 


"얼굴이 마음에 들었어!!! 내가 미쳤지. 그러니까 너도 얼굴만 보면 안 된다고!!!"   

"누가 들으면 아빠가 진짜 잘생긴 줄 알겠다."


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을 나간다.


독수리야! 내 눈이 문제다! 빨리 와서 내 눈을 찔러다오!  




 


 비교적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중년 남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 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자기를 엄청 귀여운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어린 시절 엄마에게 하듯 아내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거다.  

나는 이 증상을 '다람쥐 증후군'이라 명명했다. 남편이 바로 이 병 말기다.


지난 주말, 삼겹살 수육에 이거 저거 찍어먹고, 싸서 먹을 것들을 옆에 줄줄이 놓아주었다.

심지어 시판 쫄면에 오이 하나를 채 썰어 같이 비벼주기까지 했다. 

큰 아이, 작은 아이 다 맛있다고 난리가 났는데, 남편이 해맑은 표정으로 한 마디를 툭 내뱉는다. 


"여기에 오이고추 된장무침 있으면 아주 딱인데..."


해맑게 웃으며 자기가 정말 귀여운 내 막내아들이라도 된 듯 반찬투정을 하신다?

내가 속에서 천불이 올라와 젓가락을 딱! 내려놓으며 한마디 했다.


"미쳤어?"


며칠 후, 마트에 갔는데 오이고추가 딱 보이는 거다. 

저것만은 절대 사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난 생각보다 의지박약 한 인간이라

결국 두 팩이나 사 오고 말았다. 오늘은 백반집 스타일로 저녁을 준비했기에

순두부찌개를 끓이고 오이 고추 된장무침도 상에 올렸다.


"엄마 진짜 밥 신이다. 코로나가 엄마를 밥 신으로 만들었다 얘들아!

 오빠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오이 고추 된장무침이야 많이 먹어."


고맙다는 말도 없이 오이 고추 한 덩이를 와작와작 씹던 그가 한마디를 했다.


"야, 짜다."


밥을 먹던 두 아이의 눈이 아빠를 향했다. 그리고 일시정지. 

나도 멈칫. 진짜 내 귀를 의심했다. 


이건 진짜 내가 드라마 습작을 할 때도 써본 적 없는 대사다.

만약 이 대사를 쓴 습작을 교육원 수업에 제출하고 비평 시간을 가졌다면 어떤 의견이 나왔을까? 

너무 진부하고 뻔하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사 같아요!라는 비판을 받지 않았을까? 

내가 드라마 보조작가로서 드라마 작가님에게 이런 의견을 냈다면 

너 감 떨어져서 도저히 안 되겠다. 짐 싸서 집에 가라! 하지 않았을까?


남편은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른 채 헤헤 웃으며

자기가 이렇게 하나하나 지적을 해서 엄마가 밥 신이 됐다며 자랑스러워 죽겠다며 웃는다.  

이것이 바로 다람쥐 증후군 말기의 증상이라고 어디 기록이라도 해두고 싶었다. 

설마, 자기가 정말 귀엽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먹어보고 간이 맞으면 오늘 진짜 이판사판 결판을 낼 심산으로 

접시에 담긴 오이 고추를 집어 먹었다. 어? 좀 짜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항상 반 스푼 정도 넣던 설탕을 빠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용히 접시에 담긴 오이고추를 스탠 볼로 던져 넣고 설탕을 추가해 다시 무쳐 갖다 주었다. 

자기 덕분에 간이 맞았다며 좋다고 웃는다.   

아... 이 다람쥐 증후군 언제까지 봐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독수리야! 빨리 와서 내 눈을 찔러다오!






남편이 속이 아프단다. 쓰리단다. 밤마다 가슴이 뻐근하다며 한참을 앉아 있다. 

병원에 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주사맞기 싫어하는 초등학생처럼 버티고 있으니

결국 내가 데리고 병원에 갔다. 


"증상은요?"

"속이 아파서요."


이 한마디를 하는 게 귀찮아서 병원 가길 싫어했다고? 

속이 터져 한숨이 나왔다. 결국 내가 남편의 증상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설명을 했다.

그러자 의사가 남편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알려주는데 

아이고야, 남편은 지금까지 의사가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 

심지어 아주 열심히 실천하고 있었던 거다. 


"아침에 견과류가 안 좋아요? 무슨 보약처럼 얼마나 열심히 챙겨 먹었는데요!!"

"지방류라 자극이 있으니 안 드시는 게 좋습니다."


"빈 속에 사과가 안 좋아요?"

"산을 유발하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빈 속에 사과를 매일매일, 내장지방 빼는 명약이라며..."


그리고 이어진 의사의 마지막 지시사항. 


"식사 후에 눕지 마세요." 

"!!!!!!"


흡! 몇 마디를 보태려다 1절만 하자 싶어 그냥 입을 닫고 진료실을 나왔다.

나이가 쉰둘인데, 자기더러 틀렸다니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 그 심정 모르지 않으니      

나도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구시렁 거리는 남편을 데리고 약국으로 가 처방전을 내고

순서를 기다렸다.  드디어 남편의 이름이 불리고 쉰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성 약사분이 

남편에게 약봉지를 건네는데 웬일인지 씩 웃으신다. 그러면서 건네는 한 마디. 


"식사 후 눕지 마세요!"  

"!!!!!!!!!!"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많길래 웃음을 참으며 약국을 나오는데 

남편이 이런다. 


"약사님이 나보고 웃는다. 왜 그러지?" 

"그것도 몰라 이 바보야! 밥 먹고 바로 소파에 눕지 말고 

 밥 차리느라 고생한 아내를 위해 설거지도 좀 도와주고 그러라잖아! "

"... " 

 

독수리야! 독수리야! 당장 날아와 내 눈을 찔러다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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