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둘째 아이의 소원 + 팀 버튼의 [WEDNESDAY] 리뷰
금요일 밤은 우리 가족의 예능 데이다.
'편 스토랑'부터 '나 혼자 산다'까지 달린다. 중요한 시험 일정이 있다면 큰아이는 빠지지만
아직 초등학생(비록 고학년이지만...)인 늦둥이 둘째는 졸면서도 끝까지 눈을 부릅뜬다.
"자는 거 아니야?"
"아니야!!!"
"자는 거 같은데?"
"아니라니까!!"
결국 반수면 상태에 돌입한 둘째를 업고 방으로 데려가 침대에 눕힌다.
종종 예능 데이를 넷플릭스가 점령하는 날도 있다. 우리는 다 같이 다음화, 또 다음화! 다음화!
절대 중단할 수 없는 마성의 다음화로 12시, 자정을 넘긴다.
어젯밤 우리 가족을 사로잡은 넷플릭스는 'WEDNESDAY'
큰 아이가 꼭 봐야 한다며 추천을 했는데,
감독이 팀 버튼이라는 거다. 팀 버튼? 내가 아는, 내가 좋아하는 그 팀 버튼!
몇 년 전 '빅 아이즈'라는 영화를 봤는데, 정말 좋았다.
그의 영화는 모두 아름답다. 예술적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지만 그가 그 아름다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혐오에 대한 거부와 소수자와 여성을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이 있어서 더 좋다!
'WEDNESDAY'는 400년 전 미국에서 일어났던 마녀사냥에 대한 끔찍한 역사와
이를 바로잡으려는 아주 특별한 17세 소녀의 이야기다.
검은 아우라를 내뿜는 이 소녀는 심각한 문제아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차별과 혐오에 맞선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어른들의 소리에 저항하며 400년 전 억울한 죽음을 다시 바라본다.
약자를 위해 싸우는 소녀라니... 너무 매력적이야!
물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웬즈데이가 하는 일을 싫어한다.
5화까지 달리니 새벽 1시.
"엄마는 여기까지다. 미안해... 더 늦게 자면 엄마 이석증 폭발한다..."
엄마의 이석증 언급에 큰 아이는 얼른 다음화를 중단시키고, 날 방으로 들여보내 주었는데
그다음은 기억이 없네...
아침에 눈을 뜨니
남편이 옆에서 자고 있다. 뒤척거리길래 몇 시에 잤냐고 묻자 뜬금없이 남편이 이런다.
"우리나라 월드컵 16강 진출했다 흐흐"
"진짜? 나 들어가고 축구 봤어?"
"우리가 포르투갈한테 이기고, 가나는 우루과이한테 졌어."
"그 아주 희박하다는 경우의 수가 된 거야?"
"그렇지..."
"아! 혹시 눈 왔어?"
"왜? 꼭 와야 돼?"
지난주 둘째 아이가 자신의 소원이라며 한 말이 있다.
"엄마, 토요일 아침에 눈이 와야 돼."
"왜? 등산 안 가게?"
"엄마는 아침 9시까지 자야 돼."
"왜?"
"그러니까, 토요일 아침에 눈이 오는 거야, 그럼 난 눈을 보고 나서 침대에 누워서
미하일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를 읽을 거야. 엄마 아빠는 9시까지 절대 방에서 나오지 마!
그때 우리 집엔 나만 깨어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읽으려고 지금 그 책을 아껴두고 있지."
"와... 우리 우연이 진짜 멋지다."
행복했다.
천팔십 그램, 27주 이른둥이를 키우며 벼랑 끝에 선 듯 암담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쏟아부은 시간을 가끔 아까워도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미안한 마음이 불일 듯 타올랐다.
세상에 거저 얻는 것은 없다더니 내가 온 힘을 다시 쏟아부은 시간은
긴 터널이었고 험난한 산이었지만
지금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큰 행복이 되어
내 마음에 파도를 일으켰다.
우리나라의 월드컵 16강 진출도 기적이지만
[눈 내린 아침 미하일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읽기]라는
멋진 소원을 이룬 열두 살 소녀의 이야기가 오늘 아침 나에겐 더 기적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