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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Mar 08. 2023

사춘기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신개념 사춘기와 사투 중. 

 지난 제주 여행 때 일이다.  

어느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손부터 씻으라고 아이 둘을 화장실에 보냈다. 


 "여긴 타지니까, 동생 잘 챙겨." 


대학생 큰 아이에게 초등학생 동생의 안전을 꼭 챙기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이 나가고 보니 유리로 된 출입문으로 화장실이 보였다. 

아주 가깝게 몇 걸음 앞에 있었는데 주인장의 배려인지, 예술혼인지 

현무암 돌을 허리까지 높이 쌓아 미로처럼 길을 만들어 두었다. 

그 돌길로 들어서 몇 걸음만 걸으면 화장실에 도착할 텐데

우리 대학생 큰 애는 초등학생 동생 손을 꼭 잡고 길 밖으로 나가 

두리번거리며 화장실을 찾는다. 

난 자리에 앉은 채로 유리문 밖으로 보이는 그 장면을 아주 흥미롭게 바라봤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을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때, 초등학생 동생이 언니 손을 이끈다.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야! 하는 듯 보였다. 동생이 먼저 화장실로 가는 미로의 입구를 발견한 것이다.

그제야 언니는 동생 손에 이끌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왠지 이렇게 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이미 성인이 된 큰 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얘는 친구랑 놀기, 그런 것보다 혼자 책 읽기를 월등하게 좋아했다. 

친구가 놀자고 해도 그냥 책만 보던 아이. 

남들 눈엔 그저 조용한 모범생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눈치가 없고, 생활력이 낮은 아이랄까? 

어른들은 칭찬을 많이 했지만 또래 친구들 몇몇은 질투했고, 배척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기억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전 일이니 가끔은 미화시켜 추억하고 웃는다. 

그런데... 우리가 웃으며 그 시절 어두운 기억을 미화하며 추억할 때

그런 우리를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바로 사춘기에 돌입한 동생이다. 

    

그동안 언니는 열 한살이나 차이가 나는 동생이 귀여워 마치 복슬강아지를 대하듯

끌어안고 볼을 비볐다. 예쁜 원피스나 리본 머리핀을 보면 엄마인 나보다 더 흥분했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을 하면 안타까워 눈가가 촉촉해졌다.     

초등학생 시절엔 동생의 이야기를 글로 써 상도 받고

일기장에 동생 육아일기를 만화로 그렸는데, 지금 봐도 정말 재밌다!  

그동안은 동생도 그런 언니를 좋아했다. 

자기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언니의 일기장을 들고 나에게 달려와 보여주며 


"내가 정말 그랬어? 내가 이렇게나 귀여웠어?"

  

친구들에게 언니가 다니는 대학교가 600년이나 됐다며 자랑을 하고,

친구들이 너네 언니 키 크다! 하면 어깨를 으쓱하며 그렇게나 좋아했었는데... 

왜 갑자기 눈빛이 저렇게 무시무시해진 건가?  

생각해 보니 지난번 제주 여행에서도 동생의 눈빛은 아주 살벌했다.       

언니와 엄마가 제주도에 얽힌 가족의 추억담을 이야기할 때 특히 적대적으로 변하던 그 눈빛.

사진에 다 남아 있지만, 내가 묻어둔다.

 

그리고 또 이상한 게 있다. 

최근 이 사춘기 녀석이 친구를 거부하는 희한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교회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한 친구가 편의점에서 1+1으로 받은 포도맛 소다향 멘토스를 

우리 아이에게 건네주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됐다. 

심지어 그 친구는 내 딸의 절친이 되면 좋겠다! 생각했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이라 더욱 관심을 갖고 그 장면을 바라봤는데...

아이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어색한 표정만 지으며 그냥 읽던 책만 계속 읽는 것이다.

멘토스를 준 아이에게 미안해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줌마가 대신 사과할게!!! 

아니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그토록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대체 왜?

 

사회성이 낮은 큰 아이를 키우며 그런 아이들이 겪는 고초를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둘째를 키울 땐 놀이터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날이 컴컴해지도록 놀게 했다. 난 다른 엄마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렸다.

함께 짜장면까지 시켜 먹었다. 지역 공동체 속에서 아이가 놀면서 자랄 수 있도록 

정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그 시절 놀이터에서 함께 한 엄마들은 나보다 한참 나이가 어렸지만 

놀이터 봉사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존경할만한 엄마들이었다. 

난 그런 엄마들과 어울리며 틈만 나면 놀이터에서 뛰어놀도록 했다. 

체력이 떨어질까 봐 하루에 네 끼를 먹였다. 

유치원을 나오면서 늘 하던 말, 

"엄마 오늘도 친구들이랑 노는 거 맞죠?"


금요일 하교할 때면 늘 하던 말, 

"엄마 오늘 금요일 놀이터데이 맞죠?"   


오로지 '건강'과 '사회성' 두 가지 핵심가치를 내 육아의 지표로 삼고 달려왔는데

갑자기 얘가 왜 이러나? 도대체 무슨 일인가?      



며칠 전 아이가 푸는 수학 문제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정적인 느낌이 확 올라왔다. 문제집을 놓고 아이와 마주 앉는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엄마도 좀 살아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보지 않던 문제집이다.  

연산을 연습하는 문제집인데 웬일로 슬쩍 들춰보니 페이지마다 빨간색 색연필로 

대충 그린 동그라미가 한 개씩이다. 모든 문제를 다 맞았다는 얘긴데, 

페이지마다 스무 문제는 돼 보이는데, 저걸 다 맞았다고? 그럴 수가 있나?  

촉이 발동됐다. 답지를 보며 한 문제 한 문제 정답을 확인해 보았다.

하하하 그럼 그렇지. 엄마의 촉은 정말 무서운 거다.

맡은 편에 앉은 이 사춘기의 화신은 아무 일 없는 듯 조용히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다.

'너 정말 영어단어 외우는 거 맞니?' 채점을 마치고 천천히 빨간 색연필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탁. 

어느새 깊어진 눈으로 날 바라보는 아이. 


"무슨 일이야? 왜 이러는 거야?" 

"..."


명백한 잘못에 변명도 할 게 없고 그저 처분만 기다리겠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있으니

화가 나긴 나는데 그동안 엄마로서 챙기지 않은 것도 미안해지고,

늦둥이로 낳은 막내라 그런가 이 모든 게 마냥 귀엽기도 하고, 

암튼 복잡한 마음에 숨을 고르고, 화를 억누르며 며칠 동안 너무너무 궁금했던 걸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그 친구가 멘토스 줬을 때 왜 고맙다고 안 했어?" 

"..."

"혹시... 언니 흉내 낸 거야? 언니처럼... 되고 싶었어?" 


아이는 갑자기 폐부를 찔린 듯 얼굴이 빨개지며 눈물이 팡 터졌다. 그러면서 하는 말. 


"언니는... 공부 잘하잖아.. 흐엉흑." 


나는 작정하고 언니가 학교를 다니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세히 말해주었다.

책 보다 친구를 더 좋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말하다 보니 예전 생각이 떠올라 나도 울컥했다.  

그리고 엄마가 보기엔 넌 언니와 다르고, 

원래부터 책보다 놀이터와 친구들을 더 좋아하는 아이라고 말해주었다.    

언니랑 비슷한 친구를 만나면 외면하지 말고 챙겨주라고 했고 

지난번 제주도에서처럼 언니가 화장실을 못 찾으면 

네가 야무지게 동생 노릇을 하라고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큰 애가 나에게 말한다. 


"엄마, 내가 학교에서 언니 오빠 있는 애들한테 이것저것 물어봤거든,

 OO 알지? 걔가 세 살 많은 오빠가 있는데,  그냥 오빠는 다 짜증난데. 

 근데 오빠가 싫은데 또 오빠처럼 되고 싶기도 해서 

 아주 치욕스럽데!!"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그런 마음이었구나! 

우리 집 사춘기 녀석 마음이 지금 딱 그런 모양이다.

언니가 좋기도 하고, 너무너무 싫기도 하다. 그런데  

또 언니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아주 아주 치욕스러운 상태. ㅋㅋ 


큰 애는 늦게 만난 동생이 귀여운 강아지처럼 느껴졌는데, 

갑자기 무시무시한 여동생이 됐다며 이런 게 자매냐고 신기해한다.


큰 애 사춘기도 나름 힘들었는데, 그거 지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새로운 개념의 사춘기가 또 내 앞에 나타났다. 아이고.

인생 정말 모를 일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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