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모임

에코백을 든 여자 김선영 3.

by 임지원

3.


오늘이 바로 다혜 엄마가 초대한 그 브런치 모임이 있는 날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시작해 평소보다 일찍 동주를 유치원에 데려다주었다.

다행히 적응을 잘하고 있다. 큰 걱정을 덜었다.

기분 좋게 나를 보며 손을 흔든다. 그리고 친구들 틈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마음이 뿌듯하다.


얼른 집으로 돌아와 부지런히 집을 치우고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입을 옷도 마뜩지 않고 화장품들도 몇 년씩 묵어 사용기간이 만료된 것들이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오래전 입었던 옷들이 다시 유행이 돌아와 비슷하게

요즘 옷처럼 입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내가 대기업 회장님하고 미팅도 하며 커리어우먼으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 기억들을 되살리며 기분 좋게 화장도 하고 옷도 꺼내 입었다. 구김이 많이 간 코튼 바바리는

낡아 보여도 빈티지하다. 적당히 더럽게 때 묻은 운동화와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면 에코백으로 마무리하면 이게 바로 프렌치 시크 룩.

나름 연출한 나만의 스타일에 만족하며 마지막으로 코랄 빛 립스틱을 발랐다.

걸어가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뭔가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걸었다. 나를 좋아하게 될 거야! 우리 딸 선주가 전교 1등인데, 기죽을 게 뭐 있어?

하며 불안한 마음을 잠재웠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오그라드는 마음이었다.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일보다 동료 학부모를 만나는 일이 더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이만저만 북적이는 게 아니다.

마지막 한숨을 내쉬며 힘을 내 문을 밀었다. 한쪽 넓은 테이블을 장악하고 앉은 엄마들 틈에서

다혜 엄마가 손을 흔든다.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로 다가갔다.

다들 이미 주문한 음료를 가지고 앉아 있었다.

어색하게 다시 메뉴 주문하는 곳으로 갔다. 줄이 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줄을 서서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또 한참을 기다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내 컵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한참 자기들만의 수다에 빠져 낄낄 호호 대더니 내가 자리에 와서 앉자 다들 조용해진다.

다혜 엄마가 참석한 다른 엄마들에게 나를 소개한다. 그러자 한 엄마가 불쑥 친한 척을 한다.

내가 동주를 데리고 다니는 레몬 소아과 의사가 자기 남편이라며 자기도 예전에 간호사여서

가끔 병원에서 일을 돕는데, 그때 나를 봤다고 한다. 아이가 귀엽다고 한다.

늦둥이를 낳아서 고생한다고 그래도 부럽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러자 다 같이 합창이라도 하듯 육아의 고통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거다.

같은 마음이라는 게 이런 건가? 갑자기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거 같았다.


“아이를 키우는 게 정말 너무 힘들어요.”


한 엄마가 툭 내뱉은 한 마디. 그냥 엄마들이 놀이터에서, 소아과에서 그냥 엄마라는

공통점만 있으면 그냥 입버릇처럼 주고받는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목이 메었다. 그 순간 시끄럽던 테이블에 잠깐 침묵이 찾아왔다. 모두 당황한 듯 보였다.


머시룸 오믈렛과 아보카도 타르틴, 그리고 촉촉한 프랜치 토스트.

거대한 접시 세 개가 테이블에 도착했다.

이건 자신이 쏘는 거라고 한다. 다들 웃는다. 다음 모임에는 나도 한번 사야 할 텐데...


다른 대화가 시작됐다.

“선주는 어떻게 공부해요?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공부 잘했잖아요. 지금도 그렇고”


나는 오랜만의 소통으로 인해 마음이 활짝 열려 있었다. 눈물까지 흘린 탓에 감정은 한층 깊어졌다.

게다가 방금 전 마신 커피의 카페인이 온몸에 퍼지며 왠지 흥분된 마음이었다.


“선주는 두 살 세 살 때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을 땐데,

모모를 읽더라고요. 회색 신사 얘기도 하고요. 한글 뗀 지 얼마 안 됐는데, 애가 좀 특이했죠.

아이 어릴 때 살던 집은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었어요,

거기 영어도서관이 괜찮아서 거기서 영어동화 읽으면서 영어도 익히고.”


“학원은요? 어학원 다녔어요? 아니면 그냥 학원 보냈어요? 혹시 영유 출신?”


“이전에 다니던 초등학교에 원어민 선생님이 있어서 방과 후 프로그램 열심히 했어요.

그다음엔 쭉 도서관에서 공부했고요.”


"......"


다들 뭔가 대단히 실망한 표정이었다. 학원 이름을 대야 하는 질문이었던 건가?

왠지 나의 대답은 그날, 그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선주가 정말 대단하네.”


그리고 그다음, 테이블 끝에 앉은 누군가가 작게 읊조린 한마디가 귀에 꽂혔다.


“그렇게 지원을 못 받고도 전교 1등이란다.”


얼굴이 화끈했다.

이후 대화는 필리핀 어학연수, 새로 문을 연 영어학원, 원장이 직강 한다는 수학학원으로

흘러갔다. 나는 한마디도 보태지 못하고 앞에 남은 커피를 홀짝홀짝 다 마시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뻘쭘하게 앉아 있었다.


이때, 다혜 엄마가 빙긋이 웃으며 다른 대화를 시작한다.

그런데, 들어보니 삼성빌라에 사는 어떤 아이가 반에서 문제를 일으켜 골치가 아프다는 얘기다.

그러자 다른 엄마도 그 아이에 대해 알고 있다며 자신의 지인의 아이도 그 아이 때문에

수업에 집중 못하고 학교도 가기 싫어한다고 한다.

아이들 싸움에 어른이 나서는 것도 볼썽사나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속이 상해 죽겠단다. 아이들이 빌라에 사는 친구들을 ‘빌라충’이라고 하길래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혼냈는데, 겪어보니 애들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모양이란다.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그 아이가 도대체 누구지?


저 아줌마들보다 내가 이 동네에 오래 살았고, 삼성빌라에 고작 여섯 세대가 살고 있는데, 내가 왜 모르지?

나도 그 삼성빌라 산다고 얘기를 해야 하나.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있던 차,

다혜 엄마가 슬쩍 나를 본다.


“아! 선주 엄마도 삼성빌라 살죠?”


머리가 하얘지는 거 같았다. 다른 엄마들도 깜짝 놀라는 눈치다. 이 브런치 모임 제안을 받고, 이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느꼈던 불안감의 실체를 이제 확인한 것 같았다.


"선주 엄마도 힘들겠다. 그 아이 때문에.”


문득 둘러보니 그녀들의 쌔끈한 의상과 구두 가방에 비해 나의 프렌치 시크 룩은 그냥 지저분하다.

먼지 가득 묻은 운동화도 늘어진 에코백도 초라하기만 했다.

물 컵을 손에 든 다혜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음수대로 걸어간다.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와 10센티는 넘어 보이는 노란색 힐까지 완벽한 스타일이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보이는 구두의 빨간색 밑창이 시선을 끈다.

우리 테이블은 물론 다른 테이블 손님들까지 흘끔 거리며 볼 만큼 압도적이다.


문득 선주가 생각났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요즘 유독 쳐져 있는 어깨, 그 쪼그라든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잠깐 나왔다 들어간 얘기인데, 파크로열에 사는 학부모가 빌라 사는 아이들과

파크로열 사는 아이들의 반을 구분해달라는 요구를 학교에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뉴스에까지 나왔다. 그 바람에 유아 무야 된 건 다행이었지만,

어쨌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어렴풋이 선주의 학교생활이 편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그래도 우리 선주는 모범생 이미지 때문인지 파크로열 사는 아이들과도 잘 지냈다.

심지어 파크로열 사는 다혜를 집으로 데리고 오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요즘은 다혜를 데려오지 않는다. 그런 지 벌써 한참 됐다.


추어탕까지 먹자는 엄마들의 제안을 힘들게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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