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에코백을 든 여자 김선영 2.

by 임지원

2.


“혹시 선주 엄마? 맞죠?”

“아... 네.”

“나 기억 안 나요? 작년에 봉사 같이 했었잖아요, 아이들 하교 도우미”

“아!! 안녕하세요.”

“저 다혜 엄마요.”

“아 맞다! 다혜, 다혜 예전에 우리 집에 놀러 온 적 있었는데.”

“아 그랬어요? 웬일로 오늘은 그 꼬맹이가 없네요?”

“오늘부터 유치원 가요. 좀 늦었죠..."

“그랬구나. 그 꼬맹이 때문에 꼼짝도 못 하고, 안쓰럽더라고요.

아! 내일 시간 어때요? 마침 내일 피렌체에서 반모임 있는데. 전부 다 오는 건 아니고 몇 명만 오니까

편하게 오세요.”

“아아 글쎄 너무 갑자기라.”

“솔직히 선주가 1학년 때도 반대표였고, 지금 2학년도 반대표잖아요. 선주 엄마가 나와야죠.

안 그래요? 전교 1등 엄만데”


얼떨결에 그만 모임에 참석하기로 약속을 하고 말았다.

두려워졌다. 요즘 다혜와 선주는 예전만큼 친하지 않다. 분명 그렇다. 선주 얼굴이 어두울 때마다

어쩌면 다혜와의 관계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어봐도 답을 해줄 거 같지 않은 표정이라... 묻지 못했다.

게다가 다혜 엄마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 동네에서 유명하다.

그녀는 파크로열에 산다. 그녀가 나타난 이후 초등학교 학부모 운영위원회는 언제나 그녀

소관이다. 그녀의 남편은 유명 언론사 기자인데, 책도 쓰고, 해마다 학교를 방문해 직업특강을 한다.

가끔 동주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다가 엄마들이 무리 지어 쑥덕거리는 걸 듣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 다혜 엄마 이야기였다.

파크로열 다른 동 집도 갖고 있다는 둥, 예전에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었다고 하는데 거짓말 같다는 둥.

듣다 보면 시샘하나? 싶은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학교를 위해 저렇게 애쓰는 엄마는 없다며

칭찬도 많이들 했다. 말하자면 집에서 아이나 키우며 학교 일에 나서지 못하는 나 같은 엄마하고는

레벨이 다른 거다. 내가 가도 될까? 그런 모임들 늘 창밖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신발장에 쌔끈한 구두가 없다.


마트에서 돌아와 선주의 방으로 들어갔다.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 각종 문제집과 노트가 가득했다.

책장 맨 아래 꽉 찬 클리어 파일이 보였다. 어느새 그 자리에 앉아 그 파일을 펼쳐 보기 시작했다.

각종 임명장, 모범상, 독후감 쓰기 최우수 상. 내 딸 선주는 모범생이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육아와 살림은 나에게 맞지 않는 옷 같았다. 최선을 다해 하지만, 결과는 늘 초라했다.

아무리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해도 늘 집이 엉망진창이었다.

큰 아이를 낳던 시절엔 이상하게도 자연분만, 모유 수유 열풍이 불었다.

자연분만을 하고 모유수유를 한 아이가 똑똑하고 건강하다고, 난리법석들이었다.

나도 그 트렌드에 편승해 죽을 둥 살 둥 자연분만에 성공했고,

모유수유 안 하면 애가 바보가 되는 줄 알고 매일매일 유축기를 끌어안고 윙~ 착! 윙~ 착! 젖을 짜냈다.

어느 날 밤, 젖은 꽉 찼는데, 유축기가 말을 안 듣는다. 고장이 난 거다.

젖은 점점 더 차올라 가슴이 돌처럼 딱딱해지고 열이 펄펄 났다. 손으로도 짜 보고, 수건으로도 짜 봤지만

도저히 해결이 안 됐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던 나는 고민 끝에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왔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산후조리원을 찾았다. 겨우 불 켜진 산후조리원을 찾아 벨을 눌렀다.

대답이 있을 때까지 벨을 눌렀다. 제발, 살려주세요. 유축기가 고장 났는데, 젖이 꽉 차서 가슴이 터져 죽을 거 같아요. 다행히 문이 열렸다. 그 새벽, 그 낯선 곳에서 유축을 했다.

가슴이 터질 듯 차오른 젖을 빼내자 살 거 같았다. 성급히 나온 터라 아무 준비가 없었다.

젖병이든 비닐주머니든 뭐든 들고 나왔어야 했다. 낯선 조리원에서 그런 걸 달랠 수도 없고,

그냥 그 젖을 하수도에 버렸다. 죄책감을 느꼈다. 저주가 내릴 거 같았다.

어떤 날엔가 선주가 브로콜리와 당근을 다져 끓인 이유식을 먹지 않고 자꾸만 뱉었다.

어떻게든 먹여보려고 애쓰며 달래고 달랬지만 도저히 한 숟가락도 더 먹일 수가 없었다.

이유식이 담긴 그릇을 싱크대에 던져버렸다. 쾅 소리에 놀라 울음이 터진 아이를 안고 나도 엉엉 울었다.

선주를 낳고 키운 나의 첫 육아는 과장 없이 그냥 지옥이었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육아와 살림은 그냥 마술처럼 뚝딱 이루어지는 일이라 생각했다.

나는 오천 삼백 육십칠 개의 갖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 그에게는 그게 단 세 가지 일처럼 여겨지는 거 같았다.

숨이 턱에 찰 듯 힘든 나날이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눈물이 쏟아지고, 너저분한 집 안을 바라보다가

악! 소리를 질렀다. 절절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를 보면 분노가 치밀었다.


저러다가도 결국은 이렇게 나처럼 밥하고 청소하고 정리하고 아기를 낳아 기르는 게

인생 전부가 될 텐데, 왜들 저렇게 유난을 떠는지 이해가 안 됐다.

코딱지만 한 침대에 누워 방실방실 웃고 있는 아기와 수유가 불가능한 통 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화면에 나오면 화가 치밀었다. 저 말도 안 되는 육아 판타지는

왜 그러게 심어주려고 애를 쓰는데? 한 숨을 쉬며 TV를 껐다.

분이 안 풀렸다. 리모컨을 던져버렸다.


선주는 자라면서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뭐든 열심히 하고 엄마 마음에 들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생이 됐다. 어쩌면 힘들게 먹인 모유 때문에 애가 정말 똑똑해진 건가?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전 02화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