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에코백을 든 여자 김선영 1.

by 임지원

1.

[결혼 18년 차, 나이 46세 이름 김선영]


아침 먹은 설거지는 그대로 둔 채로 집을 나왔다. 설거지를 시작하면 한쪽에 쌓인 빨랫감도 보인다.

굴러다니는 양말까지 챙기려다 엉망진창인 어떤 서랍이나 수납장이 거슬리기 시작하면

나는 또 일 지옥에 빠지게 된다. 그보다는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는 편이 낫다.

게다가 지금은 몸에 좋은 가을볕을 쬘 수 있는 아주 짧은 시즌이다.

이 볕이 올 겨울 우리 아이의 감기 예방 주사라 생각하며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산책을 나왔다.


우리 동네에 카페가 이렇게 많았었나.

넓은 공간에 커피 로스팅 기계까지 돌리며 온 동네에 커피 향이 진동하게 한다.

전화번호 뒷자리가 8255였던 중국집 ‘양자강’은 진즉에 마카롱과 쿠키를 구워 파는 마마 브레드라는

카페가 됐고, 그 길에 쭉 있던 김약국, 술집 민들레까지 몽땅 합쳐져 ‘커피 피렌체’가 됐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도 사거리를 기준으로 하나씩은 있다.


나는 이 동네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여기 살고 있다.

어려서 다니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고, 골목골목 모르는 길도 없다.

3,40년 전 즈음 우리 동네는 여름마다 수해를 입는 집이 많았다.

한강에서 가까운 위치라 장마철만 되면 온 동네가 물바다가 되곤 했다.

그 시절 이 길 끝에 있던 철물점 딸이었던 내 친구는 여름마다 수해를 입고

가을이 될 때까지 똥물에 젖은 옷과 이불을 빨아서 말렸다.

친구네 집은 결국 그 집을 팔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다.

그 철물점 자리는 지금 4층짜리 건물이 자리잡았다. 1층에는 편의점이 있다.


남편과 만나 결혼하고 한 십 년 다른 지역에 살다가 7년 전 다시 돌아왔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며 조금씩 돈이 부서졌다. 속을 끓이다 결국 친정집 옆에 있는

20년쯤 된 빌라 2층에 전세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삼성빌라 201호.

힘들 땐 그래도 엄마 곁에 있는 게 마음도 편할 거 같았다.

이사를 와 보니 이 지역 중앙에 있던 시장이 사라지고,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건물이 올라왔다.

그리고 4년 전 휘황찬란한 아파트 단지가 완공됐다. 파크로열 무려 3000세대.


시간이 멈춘 듯한 우리 동네는 갑자기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기껏 해봐야 오층 육층 건물이 전부였던 이 동네에 20층이 넘는 파크로열의 위용은 대단했다.

게다가 입이 떡 벌어지게 비싼 그 아파트의 가격은 한 주에 두세 번씩은 뉴스에 언급됐다.

엄마는 파크로열 아파트 가격보다 줄줄이 늘어선 카페에서 파는 브런치 메뉴 가격에 더 놀랐다.

파크로열 때문에 동네 물가가 너무 올랐다고 엄마는 자주 투덜댔다.

거기 있던 재래시장이 사라진 걸 못내 아쉬워하셨다.

입주가 시작되자 선주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전학생이 몰려와

대기까지 해야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동네에서는 어딜 가도 파크로열이 보였다. 밤에도 파크로열 때문에 동네가 환했다.


어렸을 땐 엄마랑 돌아가신 외할머니랑 그 중앙에 있던 시장에 가서

광주리 가득 복숭아를 받아온 적이 있다.

그걸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여서 먹었다. 아기 엉덩이만 한 복숭아를 손에 들고 한 입 물면

단물이 팔뚝을 타고 줄줄 흘렀다. 그 하얀 살이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나중에 알고 보니 과일가게 사장님들이 팔지 못하는

상처 난 복숭아를 공짜로 나눠주신 거였다.

시장이 있어 가난한 사람들도 먹을 것이 풍부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시장이란 곳은 늘 지저분할 수밖에 없다. 여름에 냄새도 많이 났다.

동네 한복판에 시장이 있는 것보다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니까 번듯해 보인다.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일 때는 공사장 먼지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지금은 놀이공원에서나 볼 거 같은 멋진 놀이터가 단지 안에도, 밖에도 있고,

주변에 심은 수목들이 우거져 동주와 함께 이렇게 산책을 나와 놀기도 좋다.

우리 가족이 살던 그 오래된 집도 아파트 단지 때문인지 가격이 열 배가 올랐다고 한다.

그래 봐야 파크로열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되지만.


내가 친정 곁으로 이사를 온 이유는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을 조금씩 친정엄마의 손을 빌려 키우고

다시 일을 시작해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해 갑자기 둘째를 임신했다. 당시 내 나이는 서른아홉,

노산은 조산으로 이어졌고, 7개월 만에 아이를 출산하고 그 연약한 아기를 키우느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폐가 약해 어린이 집도 갈 수가 없었다. 잠깐 산책을 나갔다 왔을 뿐인데, 감기에 걸리기도 했다.

열이 나기 시작하면, 어떤 해열제도 듣지 않았다.

부루펜과 타이레놀을 번갈아 먹이다 결국 응급실로 뛰어갔다.

어떤 날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또 응급실로 뛰어갔다.

그 사이 아이는 여섯 살이 되었고, 내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아이 체중도 많이 오르고,

이제 해열제를 먹이면 열이 내려갔다.

나는 용기를 내 근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방문해 상담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그 날 세 명의 아이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바로 등록을 할 수가 있었다.


그게 내일이다. 내일이면 드디어 둘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다.

아이와 둘만의 고립된 생활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은 일주일에 두세 번 유모차를 태우고 브런치가 카페가 줄 선 길을 지나 파크로열 근처

놀이터에서 30분 정도 놀고 오는 것이 그나마 할 수 있는

바깥 활동이었다. 이제 오전에 잠깐이라도 자유가 생기겠구나!


유모차를 밀며 걷다보니 카페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내 또래 엄마들이 보인다.

테이블 가득 브런치 메뉴가 놓여 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울까? 왜 저렇게 행복하게 웃을까?

카페 앞 작은 주차장에는 각기 다른 외제차 석대가 서 있다.

테이블 아래 까딱거리는 그녀들의 발끝에 매달린 구두는 대부분 아주 독특했다.

황금색 버클이 달린 빨간색 플랫슈즈를 보니, 왠지 주눅이 드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꿋꿋하게 걸었다. 고급 아파트라 그런 지 단지 내 조경도 정말 아름답다.

한껏 푸르른 나무는 말할 것도 없고, 바닥에 초록 잔디와 곳곳에 위치한 떨기나무에 핀 작은 꽃까지 함께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봄에는 벚꽃 때문에 더 호사를 누렸다.

앞으로 이 아파트에서 살 수 있을 거 같진 않지만 그래도 고마운 일이다.

벤치가 놓인 길을 지나 동주가 좋아하는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로 갔다.

무한 반복하며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를 바라보며 와~ 박수를 쳤다. 아이가 내려온다. 또 박수를 친다.

아이가 웃는다. 나는 점점 지쳐간다.


문득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가만히 있자 아이가 다가온다.

박수를 치라고 한다. 박수를 쳐본다. 흥이 나지 않는다. 눈앞이 뿌옇다.

뭐가 고장 나 이러는 건지 자꾸만 눈물이 난다.


이십 대 중반부터 글 쓰는 일을 했다. 이름을 날릴만한 작가는 아니었지만,

착실하게 기업체의 홍보 관련 글이나 직원 교육 관련된 원고를 쓰며 돈을 벌었다.

여행사 홍보 글을 쓰다가 클라이언트로 만난 남편과 결혼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쓰는 일을 멈췄다. 1년쯤 지나자 다시 일이 하고 싶어 졌다.

이곳저곳에 연락을 해봤다. 고작 1년 쉰 것뿐인데, 나를 부르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기다리던 끝에 과거 일했던 회사가 외주를 주던 작은 회사의 디자이너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은 일이지만 해보실래요?”


그 작은 일도 감사하며 열심히 썼지만, 결국 그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그 사이 남편은 몇 건의 금융 사고를 쳤다. 우리 살던 동네가 터가 안 좋았던 건가.

어쨌든 친정 곁으로 이사를 오고 남편 직장도 대충 안정을 찾고, 나는 둘째를 임신했다.

입 덫이 시작되면서 나는 포기했다.


내가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일은 이제 불가능하겠구나. 중요한 건 엄마로서의 내 임무다.

그렇게 다짐하며 남편의 작은 월급에 감사하며 단돈 만원을 아끼며 장을 보고 밥상을 차렸다.


이제 미끄럼틀 타는 게 지겨운 듯 때를 쓴다.

아이를 번쩍 들어 유모차에 태우고 집을 향해 달린다.

집에 오자마자 이번에는 배가 고픈지 짜증이다. 세탁기는 빨래가 끝났다고 삐리링 삐리링 거리며

나를 부른다. 머리가 터질 거 같다.


저녁에 식구들이 먹을 찌개를 끓인다.

동주에게 TV를 틀어주고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하고 음식 한두 가지를 준비하고 정리하고 돌아서면

어느새 서 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아이고야. 예전에는 몸이 천근만근이라는 말, 생각 없이 내뱉었는데,

요즘은 정말 그 말에 담긴 진짜 의미가 뭔지 알겠다. 소파에 기대 까무룩 잠이 들었나 했는데,

학교에 갔던 선주가 돌아왔다!

언제나 모범생인 내 인생 최고 보물 선주는 중학교 2학년.

내 인생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건 오로지 이 아이 때문이다.

심심하던 동주도 누나를 보자 신나서 방방 뛴다.

보던 TV까지 끄고 누나와 함께 간식을 먹는다.

간식을 먹는 동안 아무 말도 없이 동주를 보며 몇번 웃어주던 선주는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학원에 가겠다며 집을 나선다. 무슨 일이 있나?

그늘 진 아이 얼굴이 마음에 걸린다.


선주가 나가고, 동주를 작은 방에 잠시만 있으라고 한 뒤 문을 닫았다.

나머지 문과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렸다. 보일러가 있는 다용도실 환기도 해주면 좋을 거 같아 문을 열었더니, 읔 곰팡이 냄새다. 그새 여기에 곰팡이가 폈다. 작년에 한번 대대적으로 청소를 했는데,

곰팡이는 다시 살아났다. 질긴 놈들이다. 한숨이 나온다.

저걸 어떻게 치워야 하나. 락스로 닦아야 할 텐데, 골이 아프다.

동주가 방문을 두드린다. 청소 끝났으면 이제 방에서 내보내 달라는 거다. 일단 다용도실 문을 닫았다.

좀 더 환기를 한 뒤 방문을 열어 주니 뽀르르 달려 나와 다짜고짜 품에 확 안긴다.

말랑하고 따듯하다. 나를 바라본다. 사랑스러운 눈빛에 마음이 뭉클...


“엄마, 만화 틀어줘!”


그럼 그렇지. 만화 때문이었구나! 요 이기적인 녀석. 또 너한테 속을 뻔했다.


이따 학원 버스에서 내리는 선주를 데리러 나가야겠다.

왜 얼굴에 그늘이 졌을까?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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