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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Mar 29. 2021

코스트코에서 산
진주 귀걸이를 한 아줌마

코스트코 20년 다닌 아줌마의 찐 경험담


코스트코 쇼핑의 핵심은 스피드라고 생각한다. 광활한 매장에서 이거 저거 괜히 구경하며 돌아다니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진이 다 빠지는 느낌. 집에 오면 맥이 탁 풀린다. 그래서 꼭 사 가지고 가야 할 것, 주로 먹는 것, 입는 것, 신는 것 세 가지에 집중하는 편이다. 당연히 유리장에 담긴 보석들이나 시계, 명품 가방 지갑 등등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일은 별로 없다. 그저 상품이 고객 눈에 보이기만 하면 됩니다! 하는 듯한 하얀 형광등 불빛과 보석류는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앞둔 내가 슬퍼하는 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이 반지는 코스트코 양평점에서 샀단다... 엄마를 기억해 다오...”      


이번엔 딸이 아들에게 물려준다. 아들은 여자 친구에게 반지를 건네며       

   

“이 반지는 아주 옛날 우리 할머니가 코스트코 양평점에서 사신 거야.

 나랑 결혼해 줘.”      


하기도 좀 그렇다. 그래서 나에게 코스트코는 먹고, 입고, 신고, 생활영역의 범주에 속해 있다. 

그런데, 오래전 그날은 달랐다.         

       

신혼 초, 남편과 7년 연애를 했다는 것이 무색하게 우리는 매일매일 밤낮으로 싸웠다. 결혼해서 싸워보니 

연애할 때 투탁 거리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난 말을 해서 풀어야 하는데 남편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자버리는 거다. 왜 싸웠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어쨌든 속에서 불이 활활 타오른 내가 남편이 누워있는 침대로 달려가 절규했다.      

     

“ 내 말을 들어! 내 말은 아직 안 끝났어! 내 말을 들으라고!!”          


남편은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며 누운 남편에게 다가갔다. 일어나라고 더 얘기하자고 말했다. 남편은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무슨 말을 해도 절대 일어날 거 같지 않았다. 결혼이 이런 것인가? 이렇게 힘든 것인가? 어렸을 때부터 같은 교회를 다니며 봐 온 한 살 연상의 신앙심 넘치는 오빠와 7년 연애하고 결혼을 했는데 이게 말이 돼? 분노에 몸부림치던 나는 남편에게 달려들어 그가 입고 있던 잠옷을 찢어버렸다. 신혼여행을 위해 내가 구입한 푸른 계열의 체크가 프린트된 노란색 실크 면소재의 잠옷이 쫘악 찢어졌다. 치열한 신혼이었다. 놀라지 마세요. 많이들 그러면서 삽니다. 대충 노닥노닥 말싸움 좀 하는 게 무슨 부부싸움이라고. 이 정도 안 싸워봤으면 말을 하지 마시길.     

 남편과 싸우고 집을 나와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다가 코스트코에 갔다. (그렇게 갈 데가 없었나?) 늘 스쳐 지나쳤던 보석 장식품 유리장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시계도 있고, 목걸이도 있고. 가격표를 보니 동그라미가 얼마나 많던지 하여간 엄청 비쌌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참하게 생긴 진주 귀걸이, 60000. 육십만 원인가? 하고 다시 보니 육만 원이었다. 어? 저렴한데? 솔직히 액세서리 가게에서 육만 원짜리 귀걸이를 봤다면 분명 비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육십만 원인 줄 알고 봤는데 육만 원이라니까 냉큼 사볼까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남편에게 상처 입은 이 마음, 진주 귀걸이로 위로해 볼까? 싶었다. 빨간 조끼를 입은 직원을 불러 귀걸이를 사겠다고 했다. 허리춤에 찬 열쇠를 꺼내 유리장을 열어주었다. 암튼 그 뽀얀 진주 귀걸이는 빨간 상자에 담겨 나에게 왔다. 기분이 풀렸다. 확실히! 지금도 그 귀걸이는 내 화장대에 놓여 있다. 특별한 외출이 있는 날 꺼내 귀에 걸면 뽀얀 진주 빛이 내 얼굴을 환하게 밝혀준다. 그 진주귀걸이를 볼 때마다 치열하게 싸웠던 신혼 시절이 떠오른다. 다시 돌아간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끔찍하다. 대학생이 된 큰 애가 귀를 뚫더니 호시탐탐 그 귀걸이를 노린다.        


“엄마 그 진주 귀걸이 정말 예뻐, 크기도 적당하고 빛도 우아해.”

“그 귀걸이 엄마가 아빠랑 싸우고 코스트코 양평점 가서 샀잖아.

 육십만 원인 줄 알았는데, 육만 원이라서 덜컥 샀다!” 

“엄마 아빠 진짜 많이 싸웠지. 나 그거 중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지?”     

“알지. 엄마 귀걸이, 아예 주는 건 안 되겠고, 필요할 땐 가져가라.”      


코스트코의 빛나는 보석장을 보면 치열했던 우리 부부의 신혼,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렇게 23년이 훌쩍 지나 그도 나도 이젠 중년이다. 중년되니 아주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져 웬만한 일은 서로 이해하고 싸우지 않는다. 그럴 줄 알았지요? 지금도 가끔 불타오르듯 싸웁니다. 일부 극소수 천생연분을 제외하곤 사는 게 다 그럴 듯. 그러니까 안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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