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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Mar 29. 2021

코스트코의 완벽한 환불에 대하여

코스트코 20년 다닌 아줌마의 찐 경험담

국내 최대 유통업체가 운영하는 아웃렛, 유명 브랜드에서 남편의 겨울 외투 두 벌을 샀다. 집에 와서 입혀보니 두 벌 중 하나는 생각보다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무려 30만 원에 가까운 가격이었다. 이틀을 고민하다가 “환불하자!” 마음먹고 미리 전화를 걸어서 옷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사이즈를 바꿀지 환불을 할지 둘 중 하나는 하겠다고 말해두었다. 그리고 며칠 뒤 매장을 방문했다.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느꼈다. 환불하기는 틀렸구나! 사장님의 얼굴이 옷을 살 때랑은 완전히 달랐다. 뭐랄까 웃는 표정이긴 한데, 이상하게 내리깐 시선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매장 안에는 나 말고 다른 고객도 없었는데, 엄청 바쁜 듯 매장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하며 나를 무시했다. 남편이 입은 모습이 너무 벙벙해 보기 싫다고 말했더니, 한 사이즈 작은 것으로 가지고 가라고 한다. 환불 얘기를 꺼내자 얼굴이 굳는다. 이런 대형 의류 아웃렛에서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코로나로 가게 매출에 타격을 입고 마음이 어려운 상황이었을까? 어쨌든 내 꼴도 환불원정대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다. 그 아저씨랑 기싸움을 할 만한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다. 집에서 입던 검정 레깅스에 오래된 롱 패딩, 큰 애 고3 때 사 3년째 신은 낡은 모카신으로 저 노련한 남성복 매장 아저씨를 상대할 재간이 있나! 순순히 한 사이즈 작은 걸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계산할 때 정말 신중해야 한다. 계산하기 전까지는 그토록 다정하고 따듯했던 아저씨가 환불 소리에 저렇게 차가워질 수 있다니. 너무 당황해 그 당시 내 마음이 어떠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요즘 같은 세상에 상상을 벗어난 흉흉한 사고도 종종 일어나곤 하니 그냥 좋게, 좋게 끝내자 하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만약 삼십 대 초반이었다면 호기롭게 한번 대거리를 해 봤을까? 하여간 나이 탓인지 그날의 망한 드레스코드 탓인지 왠지 모르게 위축된 느낌으로 확실하게 지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도 속이 풀리지 않았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마치 그 아저씨가 내 앞에 서 있는 듯 뭐라고 중얼중얼.      

“엄마 뭐라고?”

“아니야. 아무 말도 안 했어.”                

이런 나에게 코스트코의 환불 시스템은 정말 환상적이다. 왜 환불을 하는지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는다. 이 거대한 유통 시스템은 나의 단순 변심으로 인한 환불 몇 건 정도로 무너질만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내 경우는 동행하지 않은 가족의 옷을 샀다가 사이즈가 맞지 않아 다시 환불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저 깨끗한 쇼핑백에 담아 가기만 하면 된다. 최근에 큰 고생을 하며 반품한 건 라텍스 매트리스다. 매트리스에서 이상한 냄새가 끝없이 나는 바람에 며칠 베란다에 두고 냄새를 빼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해결이 안 돼 결국 다시 가지고가 환불하기로 했다. 솔직히 재포장도 제대로 못했다. 박스에서 나온 라텍스 매트리스는 거대한 몸을 바닥으로 늘어뜨리며 감당 못하게 널 부러졌다. 비닐에 담아 원래 포장돼 있던 상자에 꾸역꾸역 담았지만 박스 상자는 감당하지 못했다. 마치 박스가 “왜 이러세요?” “누구세요?” 하는 거 같았다! 억지로 욱여넣자 박스는 폭발할 듯 거대하게 부풀었다. 되는 데로 테이프를 붙여 최대한 형태를 유지하게 해 봤지만, 결과물은 엉망진창이었다. 물에 빠진 솜이불 같이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것을 질질 끌고 환불 창구로 갔다. 성인의 가슴 높이 인 환불 창구에 들어 올리지도 못한 채, 난감한 표정을 짓고 서 있자, 재빠르게 직원이 밖으로 나온다. 나는 최대한 진심을 담아 직원에게 설명했다.  내가 이 매트리스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어떻게든 냄새를 해결하고 써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쓸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리기까지 내 고뇌가 얼마나 심각했는지에 대해. 이건 아마 그저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빠진 나만의 한풀이였을 것이다. 솔직히 그 환불 담당 직원은 내 이야기에 크게 관심도 없었다. 그저 이 아줌마 웃기다. 그런 표정으로 순순히 환불을 해주었다. 그럴 법도 하다. 그동안 환불 창구에 줄을 서며 갖가지 상황을 목격했다.           

기억에 남는 장면 몇 개.      

커클랜드 잡화 벌꿀, 내 기억으로는 삼만 원대 후반의 가격이다. 이걸 반 이상 먹고 남은 걸 환불하러 온 것이다. 환불 직원보다 그 모습을 보는 다른 고객들 표정이 볼만했다. 먹다 보니 질렸던 걸까? 암튼 코스트코는 통 크게 아무 말 없이 환불해 주었다! 20킬로 쌀 한 포대에는 쌀이 반도 안 남아 있는 듯 보였다. 꽤 높은 창구로 쌀 포대를 들어 가볍게 올려놓자 담당 직원은 말없이 환불해 주었다. 그래 뭐!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겠지! 한 번은 어떤 젊은 커플이 보드라운 천 주머니에 담긴 명품으로 보이는 작은 가방을 올려놓았다. 담당 직원 가방을 꺼내 조심스럽게 살피더니 가방을 다시 천 주머니에 넣고 금고를 열어 현금을 꺼낸다. 커플 고객은 가방을 현금으로 구입한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놓인 은행에서 쓰는 지폐계수기를 이용해 촤르륵, 또 촤르륵! 담당 직원은 돈을 여러 번 세어 확인 또 확인을 하더니 백만 얼마입니다. 하며 그 돈을 젊은 커플에게 건네주었다. 와우! 만몇 천 원의 양말 한 꾸러미도, 백만 얼마 하는 명품 가방도, 하나의 창구에서 평등하게 환불받는 시스템. 이걸 평등하다고 해야 하나? 상징적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나에겐 상당히 신선하다. 주말에 장본 것들 중 마음이 안 들거나 사이즈가 안 맞거나 한 것들은 커다란 쇼핑백에 영수증과 함께 담아둔다. 물론 영수증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환불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언제든 다시 가서 환불 창구에 올려놓기만 하면 내가 지불한 금액을 토해내 줄 것이다. 스트레스가 제로인 완벽한 환불이 코스트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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