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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Apr 03. 2021

아이랑 코스트코에 가면
일어나는 일

코스트코 20년 다닌 아줌마의 늦둥이 육아 스트레스 폭발 이야기

막내를 데리고 코스트코에 가는 일은 내키지 않는다. 늦둥이로 태어나 병원 신세도 많이 지고, 그게 안쓰러워 오냐오냐 길렀더니 이거 저거 자기 눈에 드는 건 다 사겠다고 한다. 특히 박스에 담겨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워있는 대형 인형들만 보면 전쟁에서 헤어졌던 부모 형제라도 만난 듯 끌어안고     

 

“엄마! 너무 귀여워. 나 이거 사줄 거지?? 응?? 응응???”    

      

 너를 이렇게 만든 건 나의 오냐오냐 양육방식 때문이다. 엄마가 잘못했다. 하지만 사줄 순 없어. 솔직히 이 대형 인형이 우리 집에 들어가는 순간, 일주일 남짓 귀여움을 받을 거야 그러다 어느 순간 보면 거실 바닥에 누워 먼지를 닦고 있거든. 한두 번은 스타일러에 들어가 몸을 닦고 나온 뒤 다시 너의 침대에 함께 누워 아침을 맞기도 할 거야. 하지만, 결국 며칠 뒤 엄마가 네 침대 아래로 쑥 밀어 넣은 진공청소기에 의해 발견된단다. 너도 기억하고 있지? 물론 엄마도 인형을 애틋하게 바라볼 때가 있어. 어느 날 문득 너에게 별일 아닌 일로 큰 소리를 쳤던 순간 같은 게 떠올라 미안해지면 엄마는 그 인형이 너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기로 마음을 먹는단다. 인형을 세탁기에 넣고 빨아 건조를 하지. 너도 아는지 모르겠는데, 인형은 건조기에서 나온 뒤에도 사흘 넘게 베란다에서 나머지 수분까지 말려줘야 한단다. 날이 흐리면 냄새도 나곤 했지. 그렇게 다시 네 방 어느 곳에 놓아주면 또 따듯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연출할 거야. 하지만 결국은 어딘 가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발견되거든. 엄마는 그동안 우리와 이미 함께 살고(?) 있는 그 인형을 버리기로 작정하고 거대한 쓰레기봉투를 몇 번이나 샀단다. 인형을 받아주는 재활용 상자는 없어. 그런데, 그 인형을 쓰레기봉투에 넣는 순간 엄마는 이상한 죄책감에 휩싸이게 돼! 그새 이름까지 생긴 이 존재에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거든. 가끔 반려견이 쓰레기봉투에서 발견됐다는 뉴스, 우리 같이 본 적 있지? 마치 엄마가 그런 짓을 하고 있는 범죄자로 느껴진단 말이야.           

이 말을 아이에게 다 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의 의도는 명확하게 아이에게 전달했다. 비로소 아이는 오늘 코스트코를 아빠가 아닌 엄마랑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순순히 나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지만 이미 나빠진 기분을 어떻게 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 뿔난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다 보면 차라리 그냥 사줄 걸 그런 마음이 든다. 아이의 행동, 눈빛, 표정 하나하나 다 거슬린다. 점점 아이 눈치를 보게 된다. 그동안 남편이 왜 그 인형들을 턱턱 사줬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하지만 더 이상 인형을 우리 집에 들이긴 싫다. 최대한 그 일에 무신경한 상태인 듯 연기를 한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 길 푸드 코트의 기름내가 코끝을 스치 길래 아이 맘도 풀어줄 겸 핫도그를 먹자 했다. 아이는 못 이기는 척 따라온다. 그저 핫도그를 먹기로 한 것뿐인데, 카트를 적당한 장소에 놓고 음식을 주문하고, 그 음식을 들고 와 테이블에 자리를 잡기까지 얼마나 힘이 들 던 지. 앓느니 죽겠다 싶은 심정으로 겨우 앉아서 먹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물을 달라고 한다. 물? 늘 가지고 다녔던 물인데 오늘따라 내 에코백에 물이 없다. 생수 자판기에 가서 사주려고 가방을 뒤지니, 동전도 한 개 없다. 코스트코의 생수는 오로지 자판기 현금 구매만 가능하다. 테이블마다 사람이 가득하고, 주변에는 어느 테이블이 먼저 비워지나 기다리는 사람들이 천지인데, 테이블엔 아직 먹어야 할 음식이 남아 있고 내 앞엔 빵 먹다 목멘 아이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앉아 있다. 인형 사달라고 보챌 때부터 이 불행이 예정된 걸까? 인형을 사줬다면 이런 불행이 없었을까? 마음이 힘들고, 머리가 어지럽다. 지금은 전업 주부지만 예전엔 작가라 불리며 이런저런 일을 했었다. 그 경력이 대략 20년인데, 그 오랜 세월 이렇게까지 나를 힘들게 하는 클라이언트가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얼굴이 없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의 아주머니가 우리 테이블 위에 동전 두 개를 놓아주셨다. 200원.      


“애 키우기 힘들지요? 내가 아이 봐주고 있을 테니까 가서 물 사 와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그분은 남편 회사 직원들 명절 선물을 사기 위해 오늘 코스트코에 왔다고 했다. 자신도 아이들 키울 때 너무 힘들었다며, 그래도 지금이 행복한 거라고, 아이들 다 크고 나면 쓸쓸하다고 하셨다. 그분 말씀에 100% 공감은 못했지만 따듯한 마음을 받고,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고 나니 힘든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아이도 물을 마시고 나니 속이 편안해진 모양이다. 엄마로 살아가는 게 힘든 이유가 이거다. 인형이나, 물 같은 사소한 이유로 어마어마한 짜증에 사로잡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내가 태어나 했던 일 중 가장 복잡하고 고단한 일, 단연코 육아. 그래도 그렇게 고생하며 키워 성인이 된 큰 애를 바라보면 사람을 키우는 일인데, 당연히 힘든 거지, 그럴 수밖에 없는 거지.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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