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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Apr 01. 2021

봄가을 코스트코에서
꽃게를 사면 일어나는 일.

간장게장, 꽃게찌게, 꽃게라면 미식이 펼쳐져요!

가을 꽃게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다. 남편의 오랜 친구가 대를 이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큰 상회를 운영하고 있던 터라 가끔 그분에게서 서해안 수게 한 상자를 택배로 받기도 했었다. 톱밥 속에 꽃게가 담긴 그 묵직한 상자를 열면 일단 '정적'이다. 하지만 톱밥 속에서 가만히 있던 꽃게를 집게로 집어 드는 순간, 무섭게 다리를 버둥대며 가루 톱밥이 이곳저곳에 튀기 시작한다. 순간 눈에까지 날아든다. 악! 내 눈. 사활을 건 듯 힘찬 버둥거림에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꽃게 제압은 일단 실패한다. 바닥에 떨어진 꽃게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는 거 같다. 정신을 바짝 차려본다. 면장갑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손에 힘을 모아 꽃게를 집어 들어 싱크볼에 던진다. 쿵! 그렇게 한 마리 두 마리 싱크 볼로 던지다 보면 몇몇 기운이 넘치는 놈이 싱크볼 밖으로 집게발을 흔들며 탈출을 감행한다. 아이고 골 아파.    

이제 살아 있는 꽃게는 제발 보내지 말아 주세요.    

    

하지만 주부 경력 몇 년인가? 나는 주부 5단 정도로 진화했다. 어느 날, TV에서 봤는데, 꽃게를 냉동실에 넣어 기절시킨 다음, 작업을 해야 한다는 거다! 내가 저걸 몰랐구나.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일던 차 어느 날 코스트코에서 바로 그 서해안 꽃게 상자를 발견했다. 아주 조용히 숨죽이고 있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지. 너희들의 실체를! 거친 버둥거림을! 사온 꽃게상자를 그대로 냉동실에 넣었다. 1시간? 정도 지나 꺼내니 꽃게가 살짝 정신 줄을 놓은 느낌이다. 이 평화로움 어쩔 건가! 세상에 똑똑한 사람이 많다!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꽃게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빨리 몸을 닦기로 한다. 이케아에서 천몇 백 원에 구입한 솔을 꺼내 한 놈, 한 놈 구석구석 꼼꼼하게 닦아준다. 배 쪽을 열면 보이는 새까만 줄 같은 것을 쭉 짜낸다. 이건 꼭 해야 한다. 다 씻은 꽃게는 배룰 위로 해 큰 밀폐용기에 착착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둔다. 이건 게장용이다. 그리고 남은 꽃게 몇 마리는 또 다른 밀폐용기에 담는다. 이건 찌개용인데, 가능하면 그날 바로 멸치육수에 된장을 풀고 애호박과 두부, 게를 넣고 끓여 먹는다. 신선한 게로 찌개를 끓이면 국물이 달다! 기가 막힌다! 대충 정리가 끝나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한 번 더 힘을 내 냄비에 라면 물을 올린다. 이 고생을 했으니 꽃게라면 정도는 먹어줘야 하는 거다! 제일 작은놈 한 마리를 냄비로 던져 넣고 라면을 끓인다. 아! 이건 엄청 중요한 건데 코스트코에서 돌아와 게 상자를 냉동실에 넣고 나서 바로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간장 끓이기다. 레시피는 다양하다. 검색해서 우리 집에 준비된 재료와 대충 일치하는 걸로 골라서 끓인다. 끓이면 맛이 다 비슷하고 게가 싱싱하면 대부분 맛있다. 이틀 정도 꽃게라면, 꽃게 찌개로 행복한 식탁을 만든다. 그동안 간장에 몸을 담근 꽃게는 점점 숙성이 될 것이다. 다음 날, 간장에 빠진 게를 다 건져 다른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그 간장을 다시 냄비에 부어 끓인다. 끓인 간장이 다 식으면 냉장고에 꽃게가 담긴 밀폐용기를 꺼내 붓는다. 그날 바로 먹어도 맛있다. 일주일 꽃게와 함께 즐거운 밥상. 


봄, 가을엔 코스트코에서 꽃게를 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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