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코 20년 다닌 아줌마의 리얼 부부싸움 이야기
결혼하고 7년 만에 집을 마련했다. 29평 주상복합. 남편도 나도 열심히 돈을 벌었다.
우리가 살던 전셋집 가까운 곳에 우뚝 선 주상복합, 미분양된 집이 몇 개 남았다고 해서 가봤더니 29평 화이트 느낌의 남산 뷰와 33평 온통 빨간 마루와 몰딩이 정신없는 철길 뷰, 두 개를 보여준다. 가격 차이는 3천정도? 나는 당연히 남산 뷰 29평을 골랐다. 살다 보니 그 집은 북향이었다. 게다가 주상복합이라 베란다도 없고, 창문 유리는 달장 한 장. 겨울에는 너무 추워 집에서도 목도리를 둘렀다. 결로 현상 폭발로 아침마다 바닥에 흐른 물을 닦느라 고생, 곰팡이 펴서 락스 발라 죽이느라 고생. 그런데도 난방비는 45만 원이나 나왔다. 집 살 땐 집을 여러 채 거래해본 어른과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거액의 대출 때문에 겁도 났지만 어쨌든 집을 샀다는 기쁨이 더 컸던 거 같다. 드디어 돌아오는 토요일 시댁 식구들을 초대하는 집들이가 예정됐다. 내 계획은 이랬다. 늘 먹는 음식, 갈비 잡채 뭐 이런 거 보다는 조금 특별한 것을 준비하자. 내 회사일이 바빴던 상황을 고려해 어쨌든 내 부담을 최소화하자. 나에겐 코스트코가 있다. 초밥이 떠올랐다. 지금은 사라진 거 같은데, 예전엔 엄청 큰 플라스틱 판에 다양한 초밥이 꽉 차게 든 메뉴가 있었다. 핵심은 상차림이다. 속일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굳이 코스트코에서 사 온 초밥이라고 광고할 생각도 없었다. 계란찜과 미소된장국, 샐러드. 상을 채울 것들은 내가 직접 준비했다. 오시기로 약속한 점심 식사 시간에 맞춰 상을 펴고 접시에 초밥을 세팅했다. 완벽한 준비에 내가 다 감탄을 할 지경이었다. 이제 곧 문이 열리고 가족들이 모두 함께 들어오시겠지!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연락도 없었다. 시댁에서 우리 집까지 주말 정체를 고려해도 한 시간 반 이면 도착하실 텐데,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해도 오시겠지. 오시겠지. 하며 전화도 하지 않고 청소와 정리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상에 올라간 초밥을 더 이상 그래도 둘 수가 없어 일단 랩을 씌워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전화를 드렸는데, 아직 출발 전이라고 하는 거다. 아니 왜? 가족사까지 시시콜콜 얘기하긴 그렇고, 암튼 사정이 있긴 했다.
“그럼 어머니... 전화라도 주셨어야죠.”
짜증이 나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때였다. 내 옆에 있던 남편의 얼굴이 한순간 차갑게 변하며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됐다. 감히 우리 엄마한테. 그런 느낌이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우리는 거친 말로 싸우기 시작했다. 쉽게 상하는 초밥을 상에 깔고 기다리다보니 노심초사하며 내 예민함은 극대화됐다. 게다가 나는 기대감이 있었다. 이 음식을 먹고 모두 즐거워하겠지, 어쩌면 나를 칭찬하겠지! 다 부질없는 일이다. 에라 모르겠다! 우리는 거친 말로 상처를 주며 싸웠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집을 나왔다. 차를 몰고 달렸다. 초밥이고 나발이고 샐러드고 미소된장국이고 다 쓰레기통에 쳐 넣고 싶은 심정. 가슴이 두근거리며 더 이상 운전을 하는 것도 위험할 거 같아 원효대교 아래 어딘 가에 차를 세우고 평소 친분이 두터운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 미칠 거 같아.”
좋은 마음으로 시댁 식구를 초대해 상을 차렸는데, 초밥이 상하는데, 오기로 한 시간에 오지도 않고, 언제 온다고 말도 안 해주고, 전화라도 해주셨어야죠,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나한테 레이저를 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폭발하듯 내 이야기를 쏟아냈다.
“잠깐만. 지금 시댁 식구들이 오고 있는 거 아니야?”
“그... 그렇겠지?”
“지원아, 지금 당장 집으로 가, 그리고 다시 상을 차려. 지금 빨리!!
참아! 좋은 날이잖아. 한번 꾹 참아. 지금 참은 거 나중에 분명 잘했다고
생각할 거야. 언니 말 들어.”
갑자기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아버지 얼굴, 시어머니 얼굴, 시누이들 얼굴까지 줄줄이 떠올랐다. 갑자기 몸이 덜덜 떨려왔다.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고 나발이고 얼른 냉장고를 열고 다시 초밥을 상에 깔았다. 급히 미소 된장국을 데웠다. 그리고 잠시 후 숨도 돌리기 전에 시댁 식구들이 와르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달려 나가며
“어머!! 어머님, 아버님, 오시느라 너무 힘드셨죠!!! 호호호호”
어머님이 그날 주신 화분이 지금도 우리 집에 있다. 모르겠다. 아무 일 없는 듯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아버님 어머님의 칭찬도 듣고 하다 보니 나쁜 기억들이 사라졌다. 언니 말이 맞았다.
“언니 고마워.”
일부 굴욕적인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날 그 집들이가 끝나고 남편은 나에게 사과를 엄청 많이 했고,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십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날의 기억이 이렇게 생생하다. 요즘도 코스트코에 가서 초밥 메뉴를 보면 아직도 그날이 생각나 한숨이 나온다.
“뭐야? 이 오레오 쿠키 언제 카트에 담았어?”
초코를 좋아하는 이 인간(남편)이 또 나 몰래 오레오 쿠키를 카트에 담은 모양이다.
“행사하던데, 내가 이 과자 좋아하는 거 알잖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냉정하게 오레오쿠키를 반품 카트로 옮긴다.
“나 먹고 싶다고!”
“먹고 싶은 걸 어떻게 다 먹고 살아.”
사소하게 복수하며 20년째 살고 있다. 그날 코스트코 초밥은 잘못이 없다. 나도 잘못이 없다. 그럼 누구의 잘못인가? 며느리는 죄인을 지명할 수 없다. 시월드는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