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지만 확실한 것들이
이토록 슬픈 이유

#. [소확행]이 [소확성]된 사연 #. MZ세대에게 미안해, 고마워.

by 임지원

간절하게 원하는 건 좀처럼 내 것이 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았다고, 정말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조금의 기대라는 걸 했던 건지 마음에 실망이 찾아온다. 브런치 시작하고 나의 글에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을 만나 소통하고 팬데믹 시대에 걸맞은 언택트 사회 활동을 찾았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지만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누군가는 수상의 영광을 누릴 때, 당신은 아닙니다!라는 통보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서글픈 일이다. 속상한 마음을 삭히기 위해 애를 쓰다 보니 불쑥 얼굴에 그늘이 지고 한숨이 나온다.


'왜 그렇게 쓰냐? 그만 쓰고, 운동해. 재밌게 지내. 그거 돼도 이래저래 골 아프다.'

남편의 레퍼토리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걸 알면서도 '쓰는 나'를 그에게 이해시키긴 힘들 거 같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운 빠져 있을 수 만도 없는 게 이런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딸이다. 우연히 잡지에 칼럼을 연재할 기회를 얻게 된 사실을 딸에게 전했을 때 그 아이가 기뻐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어쩌면 나는... 한번 더 굿 뉴스를 딸에게 전하고 싶었던 거 같다. 눈치를 보며 내 주변을 맴돌던 딸이 슬쩍 다가와 다정하게 말을 건다.


"엄마, '소확행' 알지?"

"알지."

"요즘 소확행 다음 버전이 나왔어. 뭔지 알아?"

"그다음?"

"소. 확. 성. 요즘 우리 MZ세대는 소확성이 트렌드야."

"소확성? 엄마 처음 들어본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 요즘 우리 세대는 성취할 수 있는 게 너무 없어서

아주 작은 걸 성취하면서 기쁨을 찾아.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기, 침대 정리하기,

아침 스마트폰 앱으로 명상하기, 유튜브로 요가하기, 감사일기 쓰기. 나도 요즘 아침마다 그거 다해.

그걸로 작은 성취를 맛본다고.


그래도 엄마는 이십 대 때 성취라는 걸 해봤잖아. 나는 지금... 어떨 거 같아?

코로나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 같기도 하고... 엄마보다... 내가 더 힘들 거 같지 않아?

엄마, 성취 못했다고 속상해하면 안 돼.

엄마도 나랑 아침에 일어나서 명상하고 요가하고 감사일기 쓰자! 응?

작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확실한 성취! 어때 괜찮지?"


"엄마가 잘못했네... 미안"


팬데믹이 정말 무섭다. 도전이든 실패든 뭐든 꽝꽝 들이받으며 질주해야 할 청춘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를 하기 위해 침대를 정리하고 감사일기를 쓰고 명상하고 요가를 한다니.

소확성, 이 단어는 누가 만들었나 생각할수록 너무나 슬픈 단어다.


소확행의 시작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건 모두가 알 것이다. '랑겔한스 섬의 오후'라는 수필에서 그가 말한 소확행은

'막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소확행'을 미국의 단편 소설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A small, good thing'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루키는 레이먼드 카버를 좋아했던 것 같다.

하루키는 그의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검색창에 두 사람의 이름을 같이 넣으면 수많은 에피소드가 쏟아진다. 이십 대부터 지금까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있는 나지만 부끄럽게도 레이먼드 카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raymond-carver.jpg 레이먼드 카버

이번에 이 글을 쓰며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건 그가 지독한 가난과 불안 속에서 너무나도 불행한 삶을 살았고, 쉰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것. 그리고 문학적 역량은 매우 뛰어났지만, 노동을 멈출 수 없어 장편 작업보다 단편을 썼으며 헤밍웨이가 하바나에 가 '노인과 바다'를 쓸 때, 그는 그럴 돈이 없어 그저 고단한 서민의 삶에 대한 글 밖에 쓸 수 없다고 한다. 그런 그의 작품에서 '소확행' 나왔다니, 도대체 하루키가 찾아낸 행복은 뭘까? 'A small, good thing'에 대해 알고 싶어 미칠 거 같았다. 도서관도 문을 닫은 시간이다. 검색 또 검색... 겨우 써머리 된 영문판을 찾아 딸의 도움으로 작품을 만났다.


생일을 앞둔 아들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매다 사망한다.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하기 위해 찾아갔던 빵집에서 너무나도 불친절한 베이커를 만나고 기분이 나빠진 엄마는 결국 이 모든 불행이 거기서 시작됐다고 생각하게 돼 그 베이커를 찾아가 분노를 폭발한다. 하지만 그 베이커는 그 부부를 테이블에 앉히고 따듯한 차와 롤을 준비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부부의 슬픔을 위로한다는 이야기.

자식을 잃은 거대한 슬픔 중 만난 실낱같이 작은 위로, 그게 바로 'A small good, thing'이었다.


그렇지. 행복한 사람에게 소확행이 필요할 리 없고, 큰 성취 옆에 소확성 따윈 의미가 없겠지.

소소하지만 확실하다는 게 이렇게 슬픈 거 라니... 하루키도 불행한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그 말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나이가 몇이든 항상 트렌드에 민감하고 싶은 나다. 특히 MZ세대가 하는 거라면 '코파기'그런 거라도 따라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제 트렌디하게 '소확성'을 실천할 예정이다.


-일찍 눈뜨면 나가서 자전거 두 바퀴 타기

-하루에 한 번 유튜브 보며 5분 요가하기

-가족에게 하루 한번 감사 카톡 보내기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고 싶을 때 한번 참기

-레이먼트 카버 작품 하루에 세 쪽 읽기


MZ세대의 소확성이 경력단절과 갱년기로 위기를 맞은 X세대까지 구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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