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밤 중에 '비건(vegan)'이라니...

왜 Z세대는 비건을 좋이 할까?

by 임지원

넷플릭스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본 이후

TV에서 문어를 먹는 장면만 나오면 나와 아이들은 고통스럽게 소리를 지른다.

"으... 우리 문어 선생님 어떡해..."


이번엔 [씨스피라시]와 [카우스피라시]를 본 우리 집 두 아이가

갑자기 지구를 위해 우리 가족이 비건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고 나섰다.

축산업이 지구 오염의 주범이고, 어업은 바다를 죽인단다. 채식만이 지구를 살리는 길이란다!


니들 엄마와 상의는 했니? 밥하는 엄마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비건이라니, 채소만으로 상을 차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나 그러는 거니? "엄마!!! 코스트코 갈 거지! 가면 연어, 고기 절대 사 오지 마 알았지! "

"그래... 알았다."


사실 전에도 이런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땐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본 큰 애가 앞으로 자신은 절대 절대 절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당시 [옥자]를 못 본 동생은 한창 고기를 먹을 때라 걔 혼자 고기를 멀리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가족이 다 함께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를 방문한 날, 고기의 향에 새롭게 매료됐고, 자신의 채식 선언을 확실하게 번복했다.


"엄마, 나 옥자는 잊고, 그냥 고기 먹을래."



지난주에 코스트코에서 로퍼를 하나 샀는데, 브랜드도 훌륭하고 할인 중이라 가격도 너무너무 저렴했지만

뭔가 투박한 게 신을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아 고민 끝에 환불을 결정하고 겸사겸사 주말에 먹을 것들도 채우기 위해 코스트코에 가려는데 아이들이 따라나선다.


"엄마, 코스트코 가서 고기랑 연어 사면 안 되니까 우리가 따라갈래!"


코스트코에서 고기랑 연어를 못 사면... 뭘 사니? 떼어놓고 가려는데 기어코 따라붙었다.

비건이 되겠다는 열정과 의지가 활활 타오르는 두 딸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이번엔 얼마나 가려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B1 식품코너로 올라온 아이들의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연어였다.

고소하고 맛있다며 엄지 척! 엄마 짱! 을 외치던 아이들이 오늘은 싸늘한 눈빛으로 연어를 바라본다.


"엄마 알지? 저 주황색이 색소라고, 색소!!"


얘들아, 연어가 무슨 잘못이 있니. 죄가 있다면 우리 행복하게 해 준 죄밖에 없다. 과거야 어쨌든 앞으로는 절대 먹어선 안된다던 큰 아이의 눈빛이 흔들린 건 몇 걸음 더 걸어 만난 곱창전골 밀 키트 앞에서였다.


"고기랑 생선은 안 먹어도... 곱창은 먹을까?"

"곱창 먹는 비건도 있다니."


둘째가 나선다.


"플렉시 테리언이면 가능하지! 플렉시테리언은 채식을 지향하지만 때때로 육류와 생선을 먹는 사람이야!

우등생논술에서 봤지!"


아니 때때로 고기를 먹는데, 그게 무슨 채식주의자라니? 희한하다! 어쨌든 매운 국물 홀릭인

딸아이 식습관을 이번 기회에 고쳐주고자 비건 선언하자마자 무슨 곱창전골이냐고 아이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더니 평소엔 가지도 않던 채소 코너로 간 남편과 아이들이 손에 가득 브로콜리, 가지, 콩나물 봉지를 들고 온다. 저런 식재료는 동네 마트에서 사면되는데... 하여간 그날 카트엔 두부, 각종 채소들이 가득 담겼다.

확실한 건 평소보다 적은 금액으로 계산을 마쳤다는 거다! 비건... 나쁘지 않은데?

어쨌든 엄마로서 뭔가 목적을 가지고 변화를 해보겠다는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지구는 너희들만 사랑하니! 엄마도 사랑한다!


다음 날 아침, 이케아에서 사둔 베지 볼에 야채들을 썰어 넣고 굴소스와 소금 후추로 양념해 볶아서

잡곡밥 옆에 놓아주었다. 기대에 찬 얼굴로 베지 볼 하나를 입에 넣은 둘째 아이 표정이 이상하다.


"엄마... 도저히 못 먹겠어... 케첩이라도... 아니 그냥.. 아빠 계란밥이라도..."


첫 끼니에 둘째 아이는 비건 선언을 철회하고 말았다. 언니는 스무 살 넘게 고기 먹었는데, 자기는 이제 열한 살이니 지금 비건을 시작하는 건 아무래도 안 되겠단다. 십 년 더 고기를 먹고 스무 살 지나면 그때 비건을 하겠단다. 야무진 논리에 우리는 깔깔 웃고 말았다. 큰 아이는 베지 볼이 먹을 만하단다.

이제 자기 스스로 비건 식단을 알아서 준비할 테니 엄마는 걱정 말라며

인터넷에서 검색한 다양한 비건 음식 레시피로 요리를 준비한다.

첫 도전작은 코스트코에서 산 각종 채소와 버섯 그리고 미소된장을 넣은 비건 라면이다.

KakaoTalk_20210704_195247862.jpg 준비한 재료를 끓는 물에 넣고 끓이고 마지막에 쌀국수면을 넣어 먹는 비 건라면


그리고 비건 음식을 파는 식재료점까지 찾아내 아빠와 야심 찬 쇼핑 계획까지 세운다.

비건도 장비 발이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점심으로 우리 동네 만둣국 맛집에 가서 생만두와 국물을 사다가 만둣국을 끓였다.

뽀얀 사골국물에 만두에서 우러나온 돼지기름까지! 기름 둥둥 뜬 국물은 고소하고

만두는 한 입 꽉 차게 풍성하다! 만둣국 얼마나 맛있게요! 를 외치며 대접에 코를 박고 먹고 있는데,

비 건라면을 먹는 큰 아이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엄마... 만두 남았어? 아휴..."

"힘들겠다. 네 마음이 뭔지도 알겠고... "



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그 해, 난 TV 속의 TV라는 MBC 옴부즈맨 프로그램에서

옛날 TV라는 코너를 맡고 있었다. 매주 다양한 주제로 과거 우리의 옛날 TV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는데,

많이 고민할 것도 없이 선거철이면 과거 선거 방송 자료를 보면서 과거엔 이렇게 했어요~ 지금은 이렇지만! 뭐 이런 식으로 원고를 쓰고 자료실에 넘치게 많은 자료화면으로 화면 구성만 하면 되니, 밖으로 야외 촬영을 가길 하나 섭외가 있길 하나, 하여튼 20년 방송작가 생활 중 가장 편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다뤘던 주제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는데, 바로 [1980년대가 본 밀레니엄]이었다.

과거 시사프로그램들은 2000년의 지구는 어마어마하게 증가한 인구로 인해 식량이 고갈되고

결국 멸망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하고 있었다. 지금 2021년, 우리는 인구 절벽 시대를

살고 있고, 지구는 멸망은 하지 않았다.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다.


지금은 뉴밀레니엄도 이미 과거가 되어 그 시절 사람들이 Y2K를 두려워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땐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다 바보가 되어 은행, 관공서, 증권사.. 등등 하여간 어마어마한 혼란이 올 거라는 비관적 생각이 파다했다. 2000년 1월 1일이 시작됐지만 컴퓨터는 다행히 00년을 제대로 인식했고

큰 탈 없이 그 순간은 지나갔다.


이런 해프닝 같은 사건을 경험하며 미래에 대한 부정적 예언이 어쩌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대충 괜찮겠지 하며 안심하기엔 확실히 걱정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

우리 집에서 일주일에 나오는 일반쓰레기와 재활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쓰레기만 해도

깜짝 놀랄 양이다. 우리는 배달음식은 거의 먹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 확실히 자랑인데... 즐겨먹던 맛집 음식이 생각나면 집에 있는 스텐 밀폐용기를 가지고 가서 담아온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양의 쓰레기가 나오는 거다. 또한 스콜 같은 소나기가 불현듯 쏟아지는 날씨도 낯설다.

어쨌든 지구온난화는 확실히 진행되고 있고, 지구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넷플릭스 다큐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예언이 어쩌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현재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거운 걸로 알고 있다. 놀라운 건, 지구 온난화에 대해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용을 담은 교양서도 인기라고 한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마이클 셰런 버거 지음)]/ [불편한 사실(그레고리 라이트스톤 지음, 박석순 옮김)]


북극곰은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책이라 들었다. (흠흠 읽지는 않았어요...)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확연히 다른 두 개의 시각이 존재한다니 참 21세 기적이다!



지구를 위해 비건을 선언하고 사서 고생을 하던 우리 집 큰 아이, 이제 뜻을 철회할 때가 됐나 했더니 의외로 좀 더 노력을 해보겠다고 한다. 계란과 우유까지 안 먹는 건 엄마가 너무 힘들다고 했더니 그건 먹는단다.

아이스크림에 대한 미련도 있었던 모양이다. 천천히 하자 우리...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가족이

갑자기 툰베리 수준까지 가긴 어렵지 않겠니? 그래도 동구밭 고체 비누는 이제 엄마도 많이 익숙해졌다! 샴푸 안 쓰는 것도. 엄마도 더 노력할게! 오늘 저녁은 두부를 넣은 콩나물 국과 콩나물 무침이다!


북극곰아, 펭귄아, 미안해!

지구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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