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바로 옆 팀 A가 내 자리를 찾았다. 손에는 청첩장이 들려 있었다. 결혼에 전혀 관심이 없던 친구인데 결혼을 결심할 정도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니 축하할 일이었다.
결혼식 당일 서둘러 집을 나섰다. 결혼식을 찾는 길은 어렵지 않았지만 모처럼 차려입은 정장에 구두를 신은 발은 생각보다 걸음이 더뎠다. 일찍 가서 신부 얼굴이라도 봐야 하는데, 식 시작 5분 전에 겨우 도착했다.
신부대기실의 신부는 평소 성격처럼 전혀 긴장하는 기색 없이 웃음이 가득했다. 결혼을 앞두고 식단 조절을 한참 하더니 쇄골이 도드라져 보였다.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넨 후 나오니 친한 회사 동료가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들을 따라 식당으로 가려다 동료의 말에 멈춰 섰다.
“팀 사람들 얼굴 봐야지. 자리 맡아놓고 있을 테니 인사하고 와.”
곧 식이 시작될 분위기였다. 어두운 식장에 조심히 들어가니 식장 안 둥근 테이블에 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인사만 하고 나올 수 없어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이런 결혼식이 오랜만이었다. 친한 친구들이나 비슷한 또래 나이의 지인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식장에 앉아서 가만히 집중하는 이 시간이 낯설기도 하고 새로웠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 유행이라더니 A의 결혼식도 주례가 없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근엄한 주례사 대신 이목을 끄는 이벤트가 계속 이어졌다. 양가 부모님의 자식을 위한 편지 낭송 시간이었다.
“처음에 네가 태어났을 때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랬는데 정말 그 바램대로만 자라주더구나.”
신랑 아버님의 솔직한 축사는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감은 다 똑같은가보다. 처음에는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라지만 크면 클수록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 이제 AS는 없으니 예비 며느리에게 앞으로 잘 부탁한다며 마무리를 지었다. 결혼하면 더 이상 부모님께 AS를 요청하면 안 된다는 말에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님, OO아빠가 너무 몸관리를 안해요. 이야기 좀 해 주세요.”
한참 살이 찌는 남편을 보며 잔소리를 일삼을 때였다. 내가 말해도 소용이 없으니, 내 편이라고 생각한 시어머님께 지원 사격을 요청했다. 물론 어머님은 남편에게 몸 관리에 좀 더 신경쓰라며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 후 남편이 달라진 건 아니었지만 내 속이 답답할 때 어머님께 연락을 드리곤 했다. 그런데 시어머님 마음도 신랑 아버지 같지는 않았을까?
‘이런 걸로 그만 연락해라. 키워줬으면 그만이지. AS, 하자 보수는 알아서 해라!’
여러 이벤트들 이후 신랑 신부의 혼인 선언문이 이어졌다. 이 둘은 긴 글을 준비했다. 신랑, 신부 서로 번갈아가며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며 미소 짓는 모습이 마냥 행복해 보였다. 그 많은 문장을 어떻게 준비했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앞으로 잘 지켜질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남편이 저와 함께 할 때 늘 웃게 만들겠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행복하게 살게 하겠습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다. 갑자기 내 혼인선언문이 궁금해졌다.
집으로 돌아온 뒤 혼인선언문을 찾기 시작했다. 분명 서랍장 위에 세워뒀는데 눈에 띄지 않았다. 한참을 찾으니 서랍장 한쪽에 먼지가 쌓인 채 눕혀져 있었다. 주례를 해 주시던 교수님 앞에서 신랑, 신부가 번갈아가며 짧게 읽었던 혼인 선언문이었는데, A의 혼인선언문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았다.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분명 ‘네’ 라고 하객 앞에서 선언했다. A 못지않게 씩씩하던 철 없던 신부였다. 결혼 10년차 지금의 내 모습은? 선언문대로 살고 있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부끄럽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고, 앞으로는 아이까지 함께 더 잘 살면 된다.
그나저나 하객 앞에서 수십 가지를 약속한 A와 신랑은 잘 지킬 수 있을까? 다 지킬 수는 없겠지만 결혼식 날의 그 설레는 마음으로 행복하기를 옆 팀의 결혼 선배가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