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부하는 워킹맘 Feb 11. 2021

옛날 아주머니의 오지랖

오지랖 

A : 어느 회사 다니세요?

B : XXX 다녀요.

A : 와 얼마 못 다닐텐데.. 

B : ….


분명 둘은 처음 대화를 나누는 사이다. 여기서 A는 딸 아이 친구 아빠다. 보통 처음 만난 사이에 직장까지 묻지 않는데 이 분 범상치 않으시다. 첫 만남에 호구조사를 끝낼 모양이다. 막 털리고 있던 찰나에 아이가 불러서 자리를 떴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아내가 공무원이라서 자부심이 넘치는 건 알겠다. 그렇다고 남의 직업에 대해서 왈가 불가하는 건 꽤나 기분이 나빴다. 부부가 둘 다 공무원이라더니 공무원을 찬양하시는건가? 출산 이후에도 지금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군 분투해 왔는데 너무 쉽게 얘기하시니 기가 찼다.    


‘나도 선생님 할 실력 됬거든요.’


멋지게 도전하며 살겠다며 교대 가서 선생님 하라는 엄마 말 뿌리치고 호기롭게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는데.. 이제 와서 동네 아저씨의 말씀 하나에 기분이 상했다. 


이후에도 이 분은 만날 때마다 호구 조사를 그렇게 하셨다. 남편에 대해서도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셨다. 그리고 또 아주 솔직하게 본인 생각을 얘기하시는데 왜 그와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딸이 아빠랑 붕어빵이네.. 엄마는 하나도 안 닮았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 이 분이 말씀하시니 또 기분이 묘했다. 부인하지도 않지만 유쾌하지 않은 건 또 뭘까? 이 분 오지랖이 부담스러워서 더 이상 이야기를 섞고 싶지 않았다. 


‘잘 먹어서 살이 올라서 그렇지 좀 빠지면 제 얼굴도 있어요!’ 


한번은 또 다른 학부모인 동네 언니와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이것 저것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분 이야기가 나왔다. 그 언니도 그 분과의 대화가 꽤나 부담스러웠 나보다. 그 날 우리는 그 분 별명을 하나 만들었다. 남 일에 관심 많고, 간섭하기 좋아하는 게 요즘 신세대 아주머니가 아니라 “옛날 아주머니”라는 거다.

 

“진짜 딱이다.. 옛날 아주머니”


남자에게 아주머니라는 별명을 짓고 서로 통쾌하게 웃었다. 


어느 여름 날 저녁 친정엄마, 딸과 함께 동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마트에 거의 도달할 쯔음, 하늘에 구멍이 났는지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집에 돌아갈 때 어찌해야 할까 당황해하고 있었는데, 그때 A가 온 가족을 데리고 마트에 등장하셨다. 각자 우산 하나씩 접으며 들어왔다. 그런데 우리를 보더니 바로 우산을 내미시는 거 아닌가? 심지어 두 개나 주셨다. A 가족도 본인, 아내, 아이 둘까지 하면 총 네 명이나 되는데 두 개나 건네시다니… 미안한 마음에 거절하려고 했더니 괜찮다고 꼭 가져가서 쓰라고 했다. 


‘참… 이 분 옛날 아주머니였지….’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하시는 게 싫어서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던 내 모습이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라면 과연 선뜻 우산을 내밀었을까? 그것도 두 개나? 절대 그러지 못했을 거다. 이 분은 간섭만 많은 게 아니라 정도 많으신 분이었다. 이후에도 크고 작게 이 분 도움을 받았다. 


그 사건 전에는 “오지랖 넓은 사람 = 나쁜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지랖이 넓다고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내 일 하나 건사하기 바쁘다고 주변에 소홀한 나보다 낫지 않을까? 내 주변엔 사람 일에 관심 많고 또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 꽤 있다. 그 분들 덕분에 혼자 꼿꼿이 서 있던 나도 살며시 옆으로 누울 줄 아는 사람(人)으로 성장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약자의 항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