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길 수 없는 새빨간 마음

딸의 초등학교 입학식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엄마인 나보다 더 설레는 사람이 있었다. 입학식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할머니는 예쁜 옷을 선물하고 싶어하셨다. 입을 옷이 충분한데 입학식 옷을 꼭 사야 한다고 우기시니 말릴 재량이 없었다. 

“우리 OO, 무슨 옷 입을까?”

딸 아이는 그 또래 여자 아이들과 달리 예쁜 옷을 싫어했다. 다른 사람 눈길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니 치마도 절대 입지 않았다. 치마를 입으면 친구들이 놀릴 거 같다며 피했다. 그 나이에만 입을 수 있는 공주 같은 옷, 특히 치마를 부끄러워서 입지 못한다는 게 엄마로서는 안타까웠다.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그런 논리로 타이르고 설명을 해도 아직 어린 그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고집을 세우는 게 또 있다. 매해 좋아하는 색상이 바뀌는데 파란색, 초록색을 거쳐 이제 빨간색이 좋다고 빨간색만 모은다. 몇 년째 빨간색을 좋아하다 보니 소장하고 있는 물품이 모두 빨갛다. 물론 옷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자기에게 관심 갖고 놀릴까 봐 싫다면서, 빨간색으로 도배를 하고 다니니 오히려 친구들도 ‘빨간색’ 하면 딸을 떠올릴 정도였다. 

결국 입학식 날 의상도 빨간색으로 깔 맞춤을 하였다. 쉽게 찾기 힘든 빨간색 상하의 세트를 맞춰 입고 당당하게 학교를 가는 그녀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전교에서 빨간색으로 맞춰 입은 아이는 딸 한 명이었다. 입학식에는 반 별로 대표 한 명을 앞으로 세워 식을 진행하였다. 딸 의상이 담임 선생님의 눈길을 끌었는지 그 날 반 대표로 식의 진행을 같이 하게 되었다. 

대 여섯 살 때부터 매일 아침 옷과 머리스타일을 놓고 딸과 전쟁이었다. 어른이 정해주는 대로 하지 않으니 꼬마 숙녀의 취향에 맞춰주려고 노력은 했으나 힘들었다. 무엇보다 어린 아이가 벌써부터 다른 사람 눈길을 의식해서 그런다는 게 속상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이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게 있는 법이다. 그녀 속에 숨겨져 있는 새빨간 마음이 빨간색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꽂히면 집요하게 늘어지는 열정으로 요즘은 트로트 삼매경이다. 코로나로 트로트 방송이 유행이라더니 매주 새로운 트로트를 불러 댄다. 나이트 램프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걸 켜 놓고 춤추며 트로트를 부르는 그녀를 보니, 학급 행사로 열렸던 장기자랑 대회에 나가기 싫다고 울던 모습이 생각난다. 집에서처럼 하면 1등도 하겠다! 그녀 마음 속의 새빨간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언젠가는 부끄러움을 내려놓고 본연의 빨간 모습을 보여줄 때가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