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
새해가 밝았다. 자욱한 안개와 구름에 가려 떠오르는 해를 보지는 못했다. 큰 딸이 급체하는 바람에 성당으로 가려던 발길을 돌려 약국에 가서 부랴부랴 소화제를 사다 먹였다. 잠자는 걸 싫어하는 딸은 아프긴 아픈지 약을 먹고 잠이 들어 두살 터울 동생을 남겨두고 신랑과 성당에 갔다. 굳이 아픈 아이와 2학년짜리 막내를 집에 두고 복음말씀 중간에 빼꼼 문을 열고라도 성당에 가고 싶었다.
마흔 세번째 새해를 맞이하다보니 새해라는 감흥이 갈수록 줄어 들었다. 12월 31일과 1월1일 차이가 사실 뭐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좀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아무래도 12월에 몰아닥친 "지금까지 나 뭐하고 살았나?"하는 질문에 대한 헛헛한 마음 탓일 거다. 복직을 하고 워킹맘으로 분주하게 살긴 살았는데 아이들에게도 직장에서도 제대로 한 일은 없고, 엄마와 직장인 명함을 빼고선 개인적으로는 텔레비전과 퇴근 후 맥주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마흔 셋, 지방직 6급 공무원, 이제 오학년 삼학년이 될 딸 둘을 둔 엄마, 동갑내기 남편과 그럭저럭 잘사는 아내, 여섯딸 중 다섯째 딸, 큰며느리....
그나마 나를 표현할 키워드 중 조금 특별해보이는 것은 여섯딸 중 다섯째라는 것. 그 키워드를 가지고 가정사를 쓰자면 인간극장 10회 분량은 족히 나올 수도 있다. 헌데 쓰다보면 어째 '세상에 이런 일이'를 찍게 될 것 같아 관둔다. 사실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쓰려고 시도는 했으나, 솔직해지기가 쉽지가 않았다. 쓴다고 한들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한풀이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나를 치유하지도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도 없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감정 쓰레기통 같은 이야기들이 주저리주저리 늘어질 게 분명하다.
자, 그럼 올해 굳이 내가 네 가족이 모여 소원나무에 매달 소원열매에 적은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TO DO 리스트와 금기리스트를 작성했다. 그 중 하나는 하루 한줄 글쓰기.
물론 하루 한줄만 쓰자는 건 아니고 한줄 이상 무조건 끄적여 보자는 거다. 지난 해 100일 글쓰기는 실패로 끝났다. 이어서 쓰지 않기로 했다. 오늘부터 365 글쓰기다. 한줄, 단어하나라도 좋다. 어느날은 종이나 핸드폰에 끄적이게 될 수도 있겠다. 간절함이 필요하다. 작가가 되기위한 첫발을 내딛는다. 휘청거리고 넘어지더라도 우뚝 설 것이다. 혼자 힘으로 두발로.
#2. 2024. 2월 어느날
아이들을 회사로 초대했다. 회사에서 진행 중인 작은 전시회를 모 방송국이 취재나오는데 어린이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에 급하게 섭외되었다. 당초는 어제로 예정된 날짜가 하루 연기되는 바람에 영어학원이 개학을 해서 둘째는 못 올 뻔했다.
"나는 왜 못 가요?"
장화신은 고양이에서 고양이의 시그니처 표정을 지으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보는 둘째에게 졌다. 마음이 약해진 난 그럼 두시쯤 왔다가 학원 시간에 맞춰 네시쯤은 돌아가기로 약속을 받고 둘째도 초대하기로 한다. 차가 없어 동료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픽업했다. 촬영장에서 아이들 역할은 소소했고, 거기에 비해 직원들을 너무 힘들게 한 것이 아닌가 싶어 면목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옆자리에서 책만 읽으면서도 배시시 웃으며 좋아라 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어느 먼 훗날, 아이가 자라서 그때 엄마 회사에 가서 이랬더랬어 하고 꺼내놓을 추억이 연녹색 정도는 되지 않을까? 풋풋하고 약간은 새콤하지만 싫지 않은 맛!
열한 살, 아홉 살을 시작하는 두 딸에게 작지만 소중한 추억 하나 선물한 날일 것만 같다. 올해 다짐은 나도 도움이 되는 사림이 되자 였는데 역시나 도움을 더 많이 받고 살고 있다. 이걸 언제 다 갚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