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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Aug 19. 2023

땡스 투 마이 라이프

정말 고마워.

고등학교 1학년에 만났던 담임선생님은 학교 내에서 학생들에게 '괴짜'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선생님이셨다. 내 기억에도 말투며, 행동이며 범상치는 않은 포스를 가지신 분이었다.

전교생 중 유일하게 그 선생님의 학급 아이들만 해야 하는 독특한 숙제가 있었는데, 바로 그건 하루에 세 가지씩 '감사일기'를 적어 종례 후 하교 전에 선생님께 도장을 받는 일이었다.


조금은 유치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역시 독특한 분이야라고도 생각했다.

처음 감사일기를 적는 날은 고심의 끝에 세 가지를 적었는데, 이후의 대부분의 날에는

등교 전 아침식사를 차려주신 엄마 감사합니다.

스파게티를 급식메뉴로 먹게 해 주신 영양사님 감사합니다.

졸려하는 나에게 목사탕을 나눠준 친구 감사합니다.

이러한 류의 감사 내용을 세 가지 적어 냈던 거 같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이런 당연한 감사를 쥐어짜 내기도 했던 거 같다.


2학기 말, 담임선생님은 자신의 '감사일기' 검사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너희는 숙제처럼 여기고 적어서 냈겠지만, 숙제로라도 시간을 내어 감사함에 대해 생각해 보는 그 시간을 통해 하루를 돌아보면서 감사하다는 단어와 말을 겉으로 드러내다 보면 세상에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들이 충분히 감사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길 바란다고 하셨다.


2학년이 된 이후 담임선생님이 바뀌고 매일 감사일기를 적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 이후로 '감사'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깊숙이 내 마음속에 박히게 되었던 거 같다. 예의를 중요시 여기셨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어딜 가나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은 습관처럼 뱉었지만,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말하는 건 전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십 대 후반이 된 나는 하루하루 눈앞에 떨어지는 내 몫의 일들을 쳐내며 보통의 나날들을 살고 있다. 그러다 문득 한 번씩 그때 썼던 '감사일기'가 떠오르곤 한다.

매일 감사함이라는 것에 대해 상기하면 살 수는 없지만, 내가 온전한 하루를 무사히 살아냄에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을, 그리고 그 하루에 함께하거나 혹은 다른 곳에서 나의 안녕을 바라주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끔. 정말 가아끔 되새기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런 마음이 앞으로 살아갈 나날들에 큰 힘이 된다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든든하다! 뭐 이런...?


우리는 행운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살아간다.

로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떠한 순간이 행운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기준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누구의 도움 덕분인지, 누구의 사랑 덕분인지, 누구의 노력 덕분인지, 누구의 배려 덕분인지.

그것을 돌아보지 못하게 되는 순간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 불만이 쌓여 결국 스스로 불행한 사람을 만들겠구나 싶다.


인간이 살아가며 하는 다양한 선택에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제외하면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 그저 선택에 따른 책임만이 있을 뿐.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내린 선택이나 결정에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것. 내가 선택한 지금의 순간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끊임없이 찾아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결국은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이 고단한 삶을 살아나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정신승리라고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씩 문을 열고 나가다 보면 그 과정 자체가 즐거운 삶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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