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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Jan 03. 2024

신혼집에서 눈물 쏟은 이유

결혼 D-73

드디어 신혼집에 입주했다.

신혼집 잔금을 치르고 바로 다음 날, 곧남편이 불참할 수 없는 개인 일정이 있어서 부모님께서 입주청소를 도와주셨다. 청소에 아직 능력치 부족인 나를 너무 잘 아시는 부모님은 가만히 보고만 계실 수 없었을 거다. 청소 도구를 바리바리 챙겨 부엌이며 화장실이며 창틀이며 베란다며 여기저기 쓸고 닦고, 그날 집에 가서는 모두 드러누웠다. 그 뒤로 며칠 후 가구가 들어오고, 그다음 날엔 가전이 들어오고, 보수할 곳을 보수하고, 인터넷을 연결하고, 하나씩 집 살림을 채워 넣고 있는데, 정말이지 신경 쓸 구멍이 메꿔지지 않는 기분이 든다. 필요한 게 계속 생기고, 구비해야 할 건 또 어찌나 많은지. 신혼살림은 살면서 채우고 정리해야 한다는 말이 이거구나 싶다.

     

거실에 멍하니 앉아 집을 둘러보면 이게 무슨 복인가 싶을 만큼 집도 가구도 가전도 다 새것.

부모님들의 챙겨주심이 아닌 게 하나 없는 것들을 둘러보고 있자면, 괜히 우리가 이런 걸 누릴 자격이 있나 싶다가 결국엔 둘이서 부모님들께 감사하자. 우리 앞으로 정말 열심히 잘 살자. 그런 대화로 마음을 다져보는 중이다.


부모님이 이곳저곳, 이것저것 채워주신다고 집에 오시면 왁자지껄 정신없이 흘러가다가, 갈게 하고 가시고 나면 갑자기 적막해지는 집에서 정말 이상하게도 코끝이 왜 이렇게 찡해지는지.

한마디로는 정리할 수 없는 정말 복합적인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대학생 때 원룸살이로 잠시 독립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감정들.


부모님이 들으시면 꼴값을 떤다고 하시겠지만, 괜스레 부모님을 두고 떠난 기분이 드는 건 뭔지. 집이 먼 것도 아니고 맘만 먹으면 휙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인데도 갑자기 왜 이렇게 멀찍이 느껴지는지. 부모님 밑에 있을 때는 나 나름 좋은 딸이지 하고 생각했는데 결혼한다고 집 나와보니 무겁고 헐어버린 삶의 무게 부모님께 허물 벗어 두듯 두고 온 것만 같은 느낌에 자꾸 싱숭생숭, 그저 받기만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마저도 왜 이리 염치없게 느껴지는지.

울컥울컥 자꾸 눈물이 쏟아질라 하는 게. 나 불효녀였나.


벌써부터 결혼식 날 큰일 났다 싶다.   

곧남편한테 이야기하고 나니 꼭 안아주면서 에구, 하는 게.

엄마 아빠 보고 싶으면 집에 데려다줄까? 하는 게.

내가 무슨 초등학생이야? 그래서 그러는 거 아니라니까 하고 괜히 앙탈을 부려본다.


앞으로 부모님한테 더 잘해야지 하는 얼마나 갈지 모를 다짐을 해보며 결혼 D-73 하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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