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과 영화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공포 장르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영화는 일단 보려고 한다.
멜로, 코미디, 액션, 스릴러, 미스터리, 모험, 판타지, 드라마, 역사,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등.
넷플릭스 영화를 보려고 리스트를 쭉 돌리다 보면 안 본 영화보다 본 영화가 더 많을 만큼 영화를 많이 보았다.
어렸을 때에는 일주일에 한 편 정도, 대학생 때는 방학이 되면 이틀에 한 편 꼴로, 지금도 일주일에 두 편 정도는 자기 전 영화를 보니 이 정도면 영화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지?
영화를 보면서 때로는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이 되기도 하고, 가슴 절절한 사랑을 하는 연인이 되기도 하고,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도 되었다가, 위험 천만한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난 모험가가 되기도 하고, 때론 조선시대 사람이 되기도 했다가, 외국인이 되기도 했다가, 초능력자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한 번의 생애만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쉬웠던 나에게, 다양한 누군가가 될 수 있는 경험은 너무도 절실하고 너무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 모든 삶을 겪으면서 모든 입장에 대해, 또 모든 상황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경험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내가 누군지에 대해서 너무 정확히 알게 되기도 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나를 이루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영화를 왜 이렇게까지 많이 보았고, 좋아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영화를 사랑한 이유, 어쩌면 영화보다도 영화를 보던 그 시공간, 그 순간들을 사랑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에 영화를 좋아하시는 아빠 덕분에 우리 가족은 영화를 자주 보았다. 그때만 해도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주는 비디오 가게가 있었고, 금요일이면 아빠와 함께 집 근처 비디오 가게에 가서 어떤 영화를 볼지 고르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우리는 거실에 이불을 쫙 깔고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영화를 보았다. 그런 날이면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자도 된다는 생각에 일탈하는 듯한 짜릿함이, 다음날 늦잠을 자도 되는 날이라는 생각에 여유로움이, 그저 상상만 해도 행복한 것들에 마음이 즐겁곤 했다. 불을 끄고 영화를 재생하면, "얼른 와~ 영화 시작한다~" 하면서 모든 가족들이 모이는데, 나는 그 순간을 참 좋아했던 거 같다. 영화를 다 함께 기대하는 순간, 같은 장면에 웃음이 터지고 같은 장면에 눈물을 흘리고 같은 순간에 놀라기도 하며 마음과 감정을 나눈다는 걸 실감하던 그 다정했던 순간들을 나는 무척 사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게 보았던 그 영화들을 훗날 만나게 될 나의 아이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아이도 없는데 벌써 굴뚝같다.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내가 행복이라 여긴 그 순간들을 내 아이에게도 남겨주고 싶은 마음인 듯하다. 그리고 그 아이와 함께 다시 보낼 그 시간이, 그리고 다시 마주하게 될 그 설렘들이 벌써 기대가 된다.
나에게 영화는 아무래도 낭만 그 자체인가 보다.
그걸 느끼고 나니 영화가 더욱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