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에 비친 빛의 거울

-잘츠부르크

by 남연우

연간 200일은 흐리고 비 오는 오스트리아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우리를 위해 빗나간 오늘, 낮 기온 20˚c 해발고도 높은 청정 산악지역을 통과하는 흰 구름은 내 마음과 같다. 버스 맨 뒤 칸 앉아있는 무르팍까지 내려오는 버스 통유리 창은 어떠한 시야도 막힘없이 다 보여주는 통쾌함 덕분에 피곤에 감기는 두 눈을 절대 그냥 재울 수 없다. 산골짜기 초지에 흩어진 농가로부터 양떼와 소, 말, 닭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가둬놓은 울타리 사슬 하나 발견하지 못해 허탈할 지경이다. 비좁은 울타리에 갇혀 배설물을 밟고 서서 우유와 고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우리 환경에 비추어 볼 때 소 한 마리의 가축일지언정 여기에서 태어난 소는 행복하겠다. 자유로운 순종의 울타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그어놓을 줄 안다.


궤도 이탈이라든가 도피, 탈출이라는 반사적 행동은 억압이 가해질 때 수반되는 반작용이다. 끝없이 펼쳐진 식량창고의 풍요로움을 ‘적막한 평화’라고 가만히 불러본다. 어떠한 불순도 끼어들 수 없는 ‘절대 평화’라고만 해두자. 한반도 태생 내 자존심이 그들의 졸린 평화를 부러워하지 않는 걸로 여행객의 one-way 티켓은 유효하다. 궁핍한 조건에서 연마하고 싹트는 영적인 성장의 길은 좁고 험난한 길을 선택하므로.


버스는 어느새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얽힌 전선줄이 가로등까지 매달고 있는 잘츠부르크 시내로 진입한다. 깨끗한 환경을 보전하고 물려주기 위해 운행되는 전기버스 트램이 인상적이다. 가까이서 보면 예쁜 꽃도 별반 없는 정원이 일정한 형식을 따르는 가운데 관조의 미를 자랑하는 미라벨 정원은 마리아와 아이들이 부르는 도레미송을 드높이며 1606년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를 위해 지었으며 당시는 알트나우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들 조각상이 도열해 있고 사각 아이스바처럼 다듬은 보리수들이 정원 테두리를 에워싸는데 저 너머 묀히스베르크 언덕 위로 견고한 철옹성 호엔잘츠부르크 성채가 성벽처럼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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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바이올린 연주자의 애잔한 선율이 흐르는 날개 달린 천마 페가수스 분수에 멈춰 선다. 천마는 동굴의 문을 형상화한 구멍 난 돌탑 위에서 막 하늘로 비상하기 위해 앞다리를 들어 올리고 두 날개를 활짝 편다. 돌탑 위에 고정한 뒷다리의 힘으로만 이 거대한 청동 조각상의 무게를 어떻게 지탱하고 있는지 힘의 균형이 온통 공중으로 분산되어 금방이라도 날아갈듯하다. 페가수스의 역동성을 더하는 물줄기가 뿜어져 흐르고, 연못에 툭툭 던져둔 돌더미 사이로 초록색 화초들이 자라는 이 분수대를 한 바퀴 돌아 뿔 달린 유니콘을 홀로 두고 잘자흐 강을 건너 게트라이데 거리로 간다.


1층에 식료품점이 있는 모차르트 생가 노란 건물 앞,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따라가니 기네스북에 오른 적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한평 반짜리 보석상 가게가 나오고 잘츠부르크 대성당이 거느린 광장이 부채를 펼치듯이 나타난다. 774년 건립되어 1628년 파괴된 년도, 1959년 바로크 양식으로 복구된 년도가 나란히 세 개의 아치문 위에 표기된 이 성당에서 어린 모차르트가 영세를 받고 연주회를 하였다고 한다. 성당은 만 명을 수용하는 규모라고 하니 그 당시 황금보다 귀하다는 소금을 관리하던 소금성 잘츠부르크의 번성을 실감하게 된다. 시내의 건물들은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붙어있어서 육중한 출입문을 일제히 폐쇄하면 적의 침입으로부터 요새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따그닥, 따그닥 마차를 끄는 금속성 말발굽 소리가 경쾌하게 지나가고 나는 중세 시대 분수에 이르러 잠시 휴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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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저녁 6시를 알리는 종소리 옛 성당 푸른 첨탑 아래서 들려오고 광장에 모였다 흩어지는 인파들 사이로 하이톤으로 울려 퍼지는 모차르트의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적어도 예술이나 과학을 하는 사람은 여행을 하지 않으면 비참해집니다."라고 말한 모차르트.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골목길, 땅을 빈틈없이 메운 돌길, 돌기둥, 석조 건축물들. 온통 견고한 돌의 역사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중세로 데려간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물건들만 바뀌었을 뿐 우리는 여전히 과거를 소비하고 있다. 노천카페에서 레드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의 손 안에서 깨지지 못해 투명한 과거의 시간 그릇이 아름답다. 오전에 본 길겐 마을의 고즈넉한 자연을 노란 건물 3층에 앉아서 북적이는 거리의 행렬을 내다보며 음표를 찍던 천재 작곡가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걸까. 공교롭게도 클래식의 대중화를 이끈 카라얀도 이곳 태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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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와 향나무가 잘 손질된 일식집에서 도시락 밥을 먹고 어둠에 묻혀가는 시골마을에서 여장을 푼다. 이제부터 시차 부적응을 제대로 하려는 건지 통 잠이 오질 않는다. 깨어 있는 의식을 뒤척이며 가혹한 새벽 미명이 비쳐드는 6시 반, 거친 시멘트가 덧발라진 오래된 돌 아치가 있는 숙소 식당에서 무미건조한 식사를 마친다.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캐리어 가방 바퀴를 굴려 숙소 밖으로 나오니 조용한 시골마을 골목길로 한기가 돌면서 집집마다 노란 현관 조명이 푸른 어둠을 붙잡고 있다. 간밤 내 불면증의 정체를 말해주려는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묘지가 바짝 붙어 어둠에 잠들어 있고, 골목길을 건너 장미 넝쿨을 올린 예쁜 집이 매혹적인 새 아침의 얼굴을 단장하고 있다. 하지만 내 눈길을 들어 올려 저 멀리 공중에 내다 꽂히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이번 여행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감탄과 탄성을 이끈 대상은 바로 ‘분홍빛 돌산’이다. 정비율로 결합된 균일한 형질의 대상은 그것이 물이든 암석이든 투명한 거울로 투영될 수 있음을 저 진귀한 광경을 통해 터득한다. 수목한계선을 넘어선 희뿌연 돌산의 7부 능선 위로 지평선을 새어 나온 아침 첫 직사광선이 반사되어 분홍색, 주황색, 황금색으로 시시각각 빛깔을 달리하여 빛난다. 신성불가침 구역에 깃든 초자연적 현상을 시의 사명으로 돌리는 수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자석처럼 들러붙는 발걸음을 간신히 떼어 버스에 오르는데 돌산은 이런 내 마음을 아는 걸까. 버스 뒤 유리창으로 다시 한번 뒤돌아보자 내 가슴 밑바닥까지 벅차오르는 새벽 무지개를 돌산과 세상의 나머지 절반쯤 구부린 채 잘 가라는 작별 인사를 고한다. 돌부처에게도 마음이 있음을!

서로를 알아보는 쿠흘(Kuchle)의 돌산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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