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캄머굿, 초록 호수에 반하다

-볼프강 호

by 남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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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태양이 신비로운 이국의 커튼을 열어젖히자 밤새 숨어있던 풍경들이 한꺼번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드넓은 초지 너머 숲은 아득히 배경으로 밀려나고 버드나무와 자작나무들이 지나가고 반가운 KIA SOUL이 지나간다. 초원을 따라 마을과 마을을 잇는 전봇대들이 목가적 그림을 연출하면서 전선을 이어간다. 자세히 보면 전봇대들은 통나무로 만들어져 똑바로 곧은 게 별로 없다. 회갈색으로 조금씩 삐뚜름하게 서있는 모습이 다리를 살짝 푼 열중쉬어 자세다.


그래서 자연과 쉽게 동화되어 있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을 바라봐도 숨통이 트여 고밀도에서 옴짝달싹 못 하던 나를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공간적 해방감을 실컷 맛본다. 저 야트막한 언덕에 예쁜 집을 짓고 살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것 같다. 경작지인 듯 황무지인 듯 경계를 가늠할 수 없는 들판을 넘어 국경의 이음새를 표시하지 않는 오스트리아로 간다.


국토의 2/3가 산악지대임을 예시하는 알프스 산맥의 가파른 산군들이 어느새 펄럭이며 등장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호수가 나타나고 흰 돛을 펼친 요트들, 자갈이 깔린 맑은 시냇물이 버스의 빠르기만큼 졸졸 굽어 흘러간다. 목초지 위로 빨간 제라늄들이 창가에 매달린 목조주택들이 줄곧 눈길을 빼앗는다. 평지 화단에 핀 꽃과 창가에 매단 바구니 꽃의 품격은 하늘과 땅 같아서 높이만큼 위상도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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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여행객의 마음을 빼앗는 목조주택의 꽃들은 큰 저택 집 한 채를 화분으로 삼는 도도함을 그 붉은 빛깔로 제압해버린다. 제라늄 꽃들이 피어난 집의 경계는 신성하여 방충효과를 수행하는 기능적 쓰임새와 더불어 행복한 웃음만 안으로, 안으로 삼켜버린다.


모차르트 외가가 있는 볼프강 호숫가 길겐 마을, 호젓한 나룻배 한 척 떠밀리는 화창한 가을 햇살의 축복 속에 예비부부 한 쌍의 야외 촬영이 보는 이들의 부러움을 산다.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에서 솔방울 모자를 쓴 귀여운 목동 인형과 라벤더 꽃 수 놓인 새하얀 테이블보를 저렴한 값에 구입한 뒤 쇼윈도에 진열된 ‘Echt Malachit(공작석)’이라 적힌 초록색 원석 목걸이를 잠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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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해저가 융기하여 움푹 파인 지형에 바닷물이 갇혀 암염이 된 소금광산이 이 지역에 있다는데 알프스의 어떤 성질이 저토록 고귀한 빛깔의 암석을 품도록 인내하였을까. 신비롭고 그윽한 빛깔에 매료되어 발길이 쉽게 떨어지질 않는다. 골목길로 접어들자 벼룩시장 같은 임시장터가 열렸다.


통닭 튀김부터 갖은 모양의 덩어리 치즈, 아기 옷, 해바라기 꽃, 신선한 야채, 과일들을 내다 판다. 모양도 고르지 않고 꺼칠한 껍질에 빨간빛이 배어든 어린아이 주먹만 한 야생 사과들이 먹음직스럽다. 1kg에 1.34유로니까 우리 돈으로 이천 원도 안 되는 사과들을 한 봉지 사서 한 입 깨물자 새콤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인간의 간섭으로 재배되지 않은 사과 맛이란 이런 걸까.


길을 건너 어느 주택 뒷길로 가니 수령 일백 년은 되었음직한 이끼 낀 오래된 사과나무를 만난다. 축 늘어진 사과 가지마다 조그마한 붉은 사과를 탐스럽게 매달고 있다. 역시 가지 치기라든가 손을 댄 흔적이 없다. 갓 떨어진 사과 몇 개를 주워도 죄 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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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로 나와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자 아치형의 돌문이 나오고 햇살이 유난스럽게 쏟아지는 꽃밭이 나온다. 놀랍게도 십자가 기둥에 고인의 이름과 사진과 생애, 묘비명이 새겨진 공동묘지이다. 사람들은 묘비명을 읽으면서 고인을 기리고 오후 햇살 속으로 거닐면서 꽃내음을 맡고 다름 아닌 묘지에서 느긋한 산책을 한다. 삶과 죽음의 공간이 따로 분리되지 않는 밀착형 터전에서 그들은 열렬히 사랑하고 살아가고 또한 죽어간다.


산 자의 삶 속으로 깊이 파고든 죽은 자의 공간이 친숙할 수 있다니, 죽은 자를 터부시 하여 멀리 산속에 격리시켜놓고 일 년에 한두 번 성묘니 제사니 유난을 떠는 우리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고 사람 사는 정이 각별하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 아니던가. 내가 사는 집 옆에서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찾아가서 고인을 그리워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우고 싶다.


드디어 배를 타고 볼프강 호수를 건넌다. 한 움큼 두 손에 길어 담아도 사라지지 않을 초록빛 호수를 넋 나간 듯 들여다본다. 공정하고 빈틈없는 신의 내면을 본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는지. 순수한 내면의 거울에 양심의 알몸을 비춰본다. 그림처럼 붙박혀 호수를 내다보는 저택들 사이로 <사운드 오브 뮤직>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넘실대는 폰 트랩 대령의 집이 보이는 것만 같다.


엄마 손을 붙잡고 숱하게 외갓집을 오간 어린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이 투명하고 아름다운 호수 물로부터 퍼 올린 감수성이 아닐까. 시원을 알 수 없는 창조의 영감과 근원을 꿰뚫어 보는 눈빛을 몸서리치도록 푸른 물빛으로부터 직시한다. 자연이 빚어내는 음악을 오선지 위에 그대로 그려 틀리거나 지운 흔적을 남기지 않은 즉흥 연주곡이 오늘 우리 귀에 들리기까지 모차르트의 마법은 계속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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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물빛으로부터 기인한 푸른 눈동자의 이곳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매일 살아갈까. 순간과 영원의 간극에 균열을 내는 예술의 도시 비엔나는 알프스 산정에 우뚝 선 고성처럼 필연적인 귀결에 이미 당도하여 전 세계 이목을 홀리고 있다. 만년설이 흘리는 푸른 눈물의 호수를 만든 산의 이면을 만나러 빨간색 곤돌라를 타고 올라간다.

5mm 두께밖에 안 되는 합판 널빤지로 만든 출입문이 안전을 담보하는 허술함에 슬슬 불안해지는데 한 번도 사고 발생이 없었다는 곤돌라, 우리가 거닐었던 풍경들이 발아래로 멀어진다. 산정에 이르러 잠시 산책을 하면서 야생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우리 국토와 식생의 분포가 다른 이곳 식물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몸집이 큰 잡초와 꽃들은 이미 시들어 형체를 알 수 없는 반면 민들레, 미나리아재비와 키 작은 풀꽃들이 아직 살아남아 생생한 색채로 부족한 산소와 사그라든 햇빛을 쪼이고 있다.


거친 화강암이 대부분인 우리 산야와 달리 여기 산정에 흩어져 떨어질 줄 모르는 바위들은 흰빛이 나며 반질반질 매끄럽다. 바위 위를 걸을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3000미터 급 알프스 준령들이 허연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조각도로 빚어놓은 듯 험준한 산세를 호령하며 저 멀리서 버티는 모습이 비로소 유럽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하늘과 만나는 굽이치는 고산들의 물결 아래로 작은 호수들이 고만고만 고여 푸른 바다를 가두어 놓은 것 같아서 대양을 흠모할 일은 없겠다, 이곳에서는. 오스트리아 알프스를 떠나도 알프스는 끝나지 않았다. 아무리 도망쳐도 이번 여행의 남쪽 끝까지 알프스는 나를 놓아주지 않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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