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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Jan 05. 2024

겨울나무가 부르는 노래

잘 넘어지는 아이였다.

신작로를 달리다가 뾰족이 내민 돌부리에 걸려 자주 넘어지곤 했다.

흙먼지와 엉겨 붙은 핏방울이 그대로 딱지가 되어 무릎에 붙어있는 날들이 많았다.

중학생 때도 2차선 내리막 도로를 뛰다가 꽈당 넘어져 팔꿈치 무릎이 사정없이 갈렸다. 

시커먼 아스팔트는 입고 있던 옷과 내 살을 파고들 만큼 성질이 사나웠다.

그렇게 수난을 당하던 무릎이 말짱한 걸 보면 신기하다.


국민학교 운동회 때 달리기 잘해서 상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항상 꼴찌 아니면 꼴찌에서 두 번째, 그러면서 혼자 넘어졌다. 6학년이던 어느 가을 운동회 때 이웃 학교와 계주 경기가 열렸다. 그때 커다란 머리핀을 꽂은 처음 보는 아이가 우리 학교에 와서 달리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날렵해 보이는 아이였다. 

첫인상이 강렬해 보였던 그 아이를 중학교 진학하면서 다시 만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지금까지 연을 이어오고 있다.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그 친구는 유럽 바이어들을 상대로 의류업을 하는 사업가가 되었다. 확실히 운동신경은 한 사람의 행동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체육 시간은 강도 높은 운동을 시험하면서 교감신경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구기 종목은 그런대로 하겠는데 저만치 난공불락의 성을 쌓아두고서 뛰어넘도록 강요하는 뜀틀은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도입부 달리기를 하다 발판을 힘껏 딛고서 뜀틀 가운데 앉아버렸다. 딱 가운데 앉기 좋은 푹신한 소파 같았다. 공포를 조장하는 그 높이며 꼬리뼈가 부딪힐 것 같은 각지게 생긴 사하라 사막을 단번에 뛰어넘는 친구들이 다른 세상 부류 같았다.


선생님은 단을 한 단 빼서 못 넘는 아이들이 넘을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그러자 용기를 낸 친구들이 단숨에 뛰어넘고서 마지막에 남은 나는 역시 그마저 걸리고 말았다.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실내 체육관, 선생님은 벌칙을 내렸다. 다짜고짜 노래를 부르라는 것이다.


무대에 올라 뜸 들이다가 노래 한 소절을 불렀다. 딱따구리앙상블의 ‘지울 수 없는 사랑’. 

우연히 라디오에서 듣다가 멜로디가 좋아서 따라 부르게 된 노래였다. 얼굴이 빨개져 가며 꾸역꾸역 끝까지 불렀다. 뜀틀의 열기로 가득했던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선생님 귓가에 빗소리처럼 파고든 내 노래는 천장 높은 줄 모르고 울려 퍼졌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 소리와 함께 뜀틀을 못 넘던 나는 가벼이 떠오르고 있었다.


20대부터 즐겨 부르던 노래는 ‘겨울 애상’, ‘한여름 밤의 꿈’, ‘바위섬’.

어느 날 자취 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 기분에 취하여 여러 노래를 이어가며 불렀다. 순간 기분이 이상하여 창문을 열었더니 주인집 과년한 딸이 자기 방에서 커튼 사이로 빼꼼히 고개 내민 채 내 노래를 귀 기울여 듣다가 눈이 마주쳤다. 서로 말을 섞지 않았던 그녀는 당황했던지 황급히 커튼 뒤로 사라졌다. 무뚝뚝해 보이던 그녀도 내 노래를 훔쳐 듣는 청중이었나 보다.


아기들이 태어나면서 동요를 즐겨 불렀다. 아기들을 잠재울 때는 가슴을 살살 두드리며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섬집 아기’ ‘고드름’ ‘노을’ ‘바닷가에서’ ‘옹달샘’ ‘겨울나무’ ‘별’ ‘보리밭’ ‘사공의 노래’ 등등. 동요와 가곡을 오가며 불러주었다. 지금도 이 노랫말들은 입에 붙어서 술술 나온다.


가사가 아름답고 해맑은 동요와 가곡을 부르노라면 답답한 현실을 떨쳐내고 저 멀리 해방되면서 마음이 순화되어 탁 트인다. 노랫말이 이끄는 시공간이 눈앞에 그려지며 그리운 그곳으로 치닫는다. 이것이 진정 음악의 치유 효과 아닐까.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 피는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_ 동요 「겨울나무」     


새들도 찾지 않는 적막한 겨울 헐벗은 나무는 그 심연의 고독을 어찌 감당할까.

눈 쌓인 응달에 서서 춥고 시린 손발 나무의 슬픔을 누가 알아줄까.

바람이 알아준다.

꽃 피고 새 지저귀며 불어주던 다정한 바람이 냉기를 후려치며 다그치며 불어온다.

날씬한 종아리를 드러낸 나무에게 회초리를 가한다.


나약해지지 말라고, 더 강해지라고, 음성을 잃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슬픈 노래를 부르게 한다. 

바람의 음성을 빌린 나무는 웅웅거리며, 겨울숲의 하모니를 아랫동네가 떠나갈 만큼 크게 부른다.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영역을 자유자재 오가며….

그 노랠 듣고 있으면 슬픔이 공명 되어 저릿저릿하다.

겨울나무는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갈 위안을 얻는다. 허리가 끊어질 듯 세찬 북풍을 견디고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덧 훈훈한 온기가 다가와서 새순을 내미는 새봄 참았던 눈물이 한 뼘 키를 키운다.


빈 나뭇가지에 앉아서 저 혼자 노래를 부르다가 포로롱~ 날아가는 아주 작은 새 한 마리를 아침 창가에서 보았다. 저 새도 외로워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몇 소절 지저귀다 보면 고막이 뚫리면서 상대방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보다 더 깊은 메아리가 울린다. 그 고요한 울림은 내이를 자극하고, 내이와 연결된 미주신경을 자극, 유익한 생리학적 효과가 생긴다고 한다.


새해로 접어든 지 닷새째 새해 구경은커녕 매일매일 흐리고 침침한 날씨 가라앉기 좋은 기분이 든다면 가벼운 허밍을 흥얼거리자. 흥얼흥얼 흥얼거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엔돌핀이 샘솟고 무탈한 오늘 하루 긍정하게 된다. 

기다림은 그냥 넋 놓고 기다리는 기다림이 아니다.

내 눈앞에 천천히 분명히 형체를 발현하며 다가오는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이 있어 무채색 겨울을 한 걸음씩 건너가는 것이다.


때로는 발구름판을 딛고 힘차게 도약하는 뜀틀처럼 가라앉은 자기 기분을 살살 끌어올려주는 마성의 노래 부르기, 한동안 안 불렀던 노래를 혼자 가만히 불러본다. 겨울나무처럼 무슨 바람이 분 건 아니다. 

그냥 가만히….                    



** COMING SOON

신간 에세이집 출간이 곧 다가옵니다.

다섯 분께 저자 사인이 들어있는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따스한 관심 부탁드려요^^



고향 집 부엌 창가 대숲, 겨울철 유난히 "춥다"고 조잘거리던 참새 하숙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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