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고향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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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이곳에서 옛 계급에 따라 대대 편성이 되었다.

나는 육군 이등병으로 돌아왔다. 전투장에서 진급받은 것은 육본에 기록이 남지 않았으니 갈매기 3개던 것이 겨우 갈매기 하나 없는 이등병이다.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그래도 좋다. 비록 이등병이지만 지금의 하사관 장교라도 나를 인정해주고 예우는 친구 간으로 좋았다. 또한 이곳의 전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가만히 파도를 모으는 둥근 섬들이 하늘의 별처럼 옹기종기 내려앉아 있고 간조가 있는 곳이라 물이 빠져나가면 숨어있던 갯바위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섬 주위에는 돛단배가 한가로이 어로에 열중하는 모습은 언제 전쟁이 있었던가 싶다. 그러나 막사 안의 공기는 냉랭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어느 막사 안에서는 지난밤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느니 집단 구타로 매 맞아 죽었다느니 흉흉한 소문이 옮겨 다닌다. 여기도 수용소라 기류가 평온치 못하다. 이를테면 이북에 있을 때의 보복이 이제 와서 가해지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부모형제, 처자식의 상봉을 눈앞에 두고 죽게끔 한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행위이다.

그네들도 사람이라 살기 위해 했던 일, 남한으로 귀환할 때는 자기들의 지은 죄 스스로 알고 보복을 당하리라 예측은 했을 것이다. 미처 죽음까지 당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리라. 서로의 고생을 알고 조금만 이해한다면 이와 같은 악형은 없을 것인데 나는 못내 안타까웠다. 이곳도 서서히 질서가 잡히고 정보부의 심사가 시작되었다. 어느 날 나도 차례가 되어 심사장으로 호출되어 갔다.


거기에는 많은 인원이 심사 차 와 있었다.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가 싶어 두리번거렸더니 한 사람이 보였다. 바로 이북에 있을 때 반미구국투쟁 위원장을 지낸 그 친구의 얼굴이었다.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 두 주먹에 힘이 불끈 쥐어지는 순간 그 친구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죄와 덕은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 했던가.

내 주먹이 아니더라도 어느 곳에 간들 자기의 죄는 면할 길이 없는가 보다. 시퍼런 독기를 내뿜던 얼굴은 찾아볼 수 없고 퉁퉁 부어오른 데다 매를 맞아 퍼렇게 멍든 자국이 오히려 동정심을 유발했다. 불쌍한 그 모습에 내 주먹이 맥없이 풀려버린다. 내 차례가 되어 심사관 앞에 앉아 심문이 시작되었다.


심사관 …“이북에서 무슨 직책을 맡았나.”

나 …“예, 부소대장 직책을 잠시 맡았습니다.”

심사관 …“그래, 악질적으로 놀아났겠구나.”


그는 나의 왼손을 잡아당겨 손가락 사이마다 연필을 끼워 넣고 손가락 끝을 감아쥔다. 순간 엄청난 고통이 찌릿찌릿 손가락뼈를 타고 전해온다.

나 …“왜 이러십니까. 제가 악질로 놀아났다면 제 얼굴이 이렇게 깨끗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동료를 구해냈습니다. 지금 저의 중대 인사계 조○○상사는 나와 함께 있었습니다.”

심사관 …“알았다. 확인해보겠다. 그간 수고 많았다.”


심사관은 이내 풀어주면서 그간의 경위를 듣고는 매우 만족하는 듯 좌우 열 손가락으로 지문을 찍고 귀대하게 되었고 나는 아직도 그 지문 부본을 보관하고 있다. 이런 심사과정이 달포에 걸쳐 끝났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곧 제대하게 되어 있었으나 그 당시 우리들의 결의는 대단했다. 1개 사단 병력은 될 것 같은 이 병력을 그대로 군 편성을 하게 된다면 천하무적의 강군이요, 사기충천했다. 그래서 제대를 원치 않고 원대 복귀를 하고자 전원 궐기대회를 열었다.

이것이 반영되어 보름간의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느덧 9월에 접어드니 섬 땅에도 가을은 찾아와 주었다. 억새꽃이 하얗게 피어나 소슬바람에 춤을 추니 고향집 정경이 눈앞에 선하다. 승선할 포구로 가니 환송장에는 수많은 인원으로 가득 메워졌다. 수용소장의 인사말이 끝나고 순서에 따라 위문품이 지급된다.


C레이션, 이것은 미군 전투식량으로 각종 식료품이 들어있는 귀한 선물이다. 각자 한 박스씩 받아서 부산항으로 간다. 떠나는 용초도는 멀어져 가고 다가오는 바닷길에 한산섬을 지난다. 그 옛날 한산대첩 때 바닷물에 빠진 왜놈들이 허우적거리던 그 바다, 파도는 잔잔하고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선선하다.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옵기에-” 구슬픈 가락에 마음이 울적해진다. 내 길지 않은 인생길, 가시덤불 생채기 나는 험한 길도 영광의 길이었기에 떠날 때는 애달픈 추억이 되어 가슴 아리다. 한 달여간 환희와 시달림이 교차한 용초도, 언제 다시 찾아오려나. 다시 한번 뒤돌아본다.

수치스런 포로생활의 종식을 고하며 떠나는 용초도의 산천과 그 바다 기억에 남겨두었으나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모습 아득히 물거품처럼 아른거릴 뿐이다.


배는 어느덧 부산 부두에 닿았다. 대기 중이던 군용차에 승차했다.

종전 직후라 정기 운행 차 한 편 없다. 내 고향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까.

옛집 그대로일까. 아버지, 형님 내외분, 친인척 모두 살아계실까. 돌아가신 어머니 품이 그립다. 어머니께서도 내가 살아서 귀향하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면 지하에서도 기뻐하실 것이다. 오만 생각 끊이질 않는다.

가족들은 내 오늘 살아 돌아옴을 알고 계실까. 갑자기 집에 들어서면 어찌 대할까.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는 트럭은 내 맘과는 다르게 아주 느리다.


보채는 마음 달래며 오후 늦게 집에 도착하였다. 노란 빛깔로 온화하게 물든 가을 들판이 벼 익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면서 나를 먼저 반긴다. 험한 세상 어느 곳을 떠돌다 와도 고향산천은 과거를 묻지 않고 고요히 맞아준다. 오래전부터 나만을 기다려준 것처럼 내 발자국 소리를 알아챈다.


마을 입구에 서서 오백 년 나이를 먹은 당산나무도 가지를 흔들면서 어서 오라고 나를 품에 안는다. 내가 태어나 자란 내 고향 동산을 단 하룻밤도 꿈에서 멀리한 적 없었다. 압록강변 빙판 길을 걸으면서 그토록 발을 들여놓고 싶었던 내 고향집 마당에 들어선다.

“아버지, 형님! 저 살아 돌아왔습니다. 응구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에 식구들은 모두 놀라서 맨발로 달려온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면서 부둥켜안고 응응 운다. 소식은 듣고 있었다고 한다.

전사했다는 소식!

그런데 오늘 이렇게 살아 돌아올 줄은 몰랐다며 내 얼굴을 만져보고 몸은 성한지 팔과 다리도 만져본다. 나는 무어라 할 말이 없다. 말문이 막힌 것이다. 쏟아지는 눈물로 4년 만에 만난 가족 상봉의 기쁨 대신할밖에. 모두 살아계셨다. 다만 둘째 숙부님께서는 지병으로 6.25가 나고 며칠 후 작고하셨다. 나는 알고 있다. 군 입대 전 집에 있을 때부터 숙부님은 뇌졸중으로 수족을 떨고 몸이 불편하여 조약으로 치료하였으나 백약이 무효하였다. 애석했다. 일본으로 건너가서 알뜰하게 돈을 모으셨고 조국 광복 직전 귀국하시어 고국 땅에서 형제 분이 함께 의좋게 사셨건만….


그동안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나에게는 주위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조상님의 묘가 명당에 모셔졌다느니 하늘의 도움이었다느니 하면서 부러운 시선으로 그간의 고생담 물어온다. 집에서는 나의 생사에 대해 점쟁이에게 여러 번 점을 쳐보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다 하였으나 인편으로 듣는 말에는 죽었다 하니 판단이 서질 않은 채 애를 태웠다 한다.

이웃 마을에 내 형님과 나이가 비슷한 이 씨라는 분이 그동안 몇 번 휴가차 올 때면 형님께서는 나의 생사에 대해 물었단다. 그때마다 그분은 같이 싸우다가 총에 맞아 전사해서 이름 모를 산에 고이 묻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네 동생의 생각일랑 하지 말라, 했다고 한다. 한날한시 군 입대해서 그분은 살아서 휴가차 자주 나오는데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생사 알 수 없는 그 마음 얼마나 암담하였을까.


그 후 이 씨 그분도 제대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고향 땅에서 재회하니 감회 깊었다. 그때 어째서 나의 죽음을 고했느냐고 물어보니 올 때마다 애끊는 심정으로 문의하는 데는 무어라 답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차라리 전사했다고 말하면 단념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15일간의 휴가는 꿈같이 지나갔다.

다시는 부모 형제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시는 내 자식 내 형제 떨어져 살 수 없다면서 보내지 않겠다고 하시나 원대 복귀 명령을 받고 온 터라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전쟁도 끝났고 가면 곧 제대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집결지인 강원도 춘천에 있는 보충대로 출발했다.


보충대 막사는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소양강변에 위치한 천막생활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어느덧 12월로 접어드니 발 빠른 추위에 얼어붙어 세수할 물도 나오질 않는다. 며칠씩 그대로 지내다 보면 막사 안에 깔아놓은 짚 검불이 온통 머리로부터 의복까지 들러붙어 거지와 다를 바 없었다. 소양강 얼음을 깨고 그 물에 세수하니 손등이 터져 피가 맺힌다.

마침내 발령이 났다.


속초의 간성 15사단 포병대로.

이곳에 도착해서 대대장님의 배려로 대대본부 보급과로 배치되었다. 오랜 고생 끝에 돌아와 수고했다며 편안한 부처로 배치해주신 것이다. 보급과 선임 하사관은 군 입대로 따지면 나의 후배요, 계급은 상사, 나는 선배이면서 이등병이다. 모순된 계급장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모두 우호적이고 친절했다. 나는 별다른 직책은 없고 식사 당번 사역병으로 따분한 날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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