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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Jun 09. 2023

이곳저곳 숨겨져 모르고 살던 사랑들.

하늘로 돌아가신 외할머니.





 외가댁 식구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왔다고 늘 생각해 왔다. 식구들과 만나 이야기할 때면 내가 몰랐던 사랑과 헌신들은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곤 한다.

외할머니께서 하늘로 돌아가신 후, 할머니의 일기장에서는 숨겨져 있던 많은 헌신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할머니의 부재와 함께, 튕겨져 나온 헌신 조각들이 가슴에 쿡쿡 박히면서 마음은 한 없이 몽글몽글해졌다.





할머니의 구멍 난 양말과 나의 어마무시한 빨간 양말.






 할머니댁에 가면 늘 상다리 부러질듯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반찬은 큰 식탁에 더 올릴 곳이 없을 정도로 가득했고, 내 기억에 스무 가지 정도의 반찬은 평균이었다.

새로운 반찬이 올라오면, 한 가지를 치워야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식탁은 빼곡했다. 초등학생시절부터 나물반찬을 제일 좋아하던 나는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이 최고 맛있었다.


 그 맛있던 따뜻한 식사는, 할머니께서 티브이 볼 시간도 없이 바쁘게 차려주신 것이었음을 왜 나는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까?


 토요일마다 할머니댁에 가면 정신없이 어질러 놓고, 뛰어다니며 놀고는 정리 한번 하지 않고 집에 오곤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정리해라, 어지르지 마라 등등의 말씀은 하신 적이 없다.


치워도 끝이 없는 것이 집안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요즘도, 예전에 할머니의 헌신은 생각도 못하고 살고 있었는데.


그래, 내가 모르는 사랑과 희생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 것인가 생각해 본다.








우리 할머니는 씩씩하셨다.

대가족의 제사며, 행사며, 수십 인분의 식사와 손님맞이는 늘 할머니 몫이었다고 한다.

바쁘신 할아버지를 도와 일도 하셨다고 했다.

손주들도 많이 키워주셨다.

그런데, 그 많은 일들을 하시면서 손주 돌보는 일에도

엄청 헌신적이셨던 기억이 또렷하다.



 할머니께서는 늘 공부하기를 좋아하셨고, 학원이나 노인복지회관을 열심히 다니셨다.

초등학생인 나에게 한글을 가르쳐달라고 하셨다.

산수와 한글을 가르쳐드리며, 할머니와 다정하게 보냈던 추억들도 꺼내본다.





 우리는 감사한 일들은 잘 잊고 지내며,

잊어야 할 기억들은 가지고 산다.



 할머니께 마지막으로 말씀드렸다.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겠다고.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모두 하늘에서 다시 만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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