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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Kim Dec 21. 2021

내가 살 자리

당신의 안녕을 빌어요

경사가 높은 이태원 우사단로 언덕길을 오른다.

오랫동안 운동을 멀리한 나는

그야말로 숨을 헉헉 내쉬며 힘들게 그 길을 오른다.

아무도 없는 약간은 삭막한 그 길에 내 숨소리만 들린다.


길 옆 대문에서 흑인이 나온다.

환한 대낮인데도, 그러면 안 되는데도,

순간 긴장하며 걷는다.

그 남자가 다가온다.

" How are you?" 하고 묻는다.

"I am good" 하고 난 최대한 긴장한 티가 나지않게 대답한다.


그 남자가 그냥 지나가길 바라며 걷는 속도를 눈에 띄지 않게 살짝 늦춘다.

그 남자가 느닷없이 한마디 묻는다.

"힘들어?"

예상치 못한 한국말로 "힘들어?" 하고 묻는 그 남자의 말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의 긴장과 경계가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얼굴로 내가 웃고 있다고,

당신을 경계하지 않는다고 보여주기 위해

최대한 길게 반달눈을 만들며 웃었다.

그의 웃고 있는 눈동자는 따뜻한 흑진주처럼 예뻤다.


낯선 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넬줄 아는

헉헉거리며 걷는 사람에게 힘드냐고 묻는

그저 따뜻한 사람인데

나도 모르게 그를 서러운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이방인의 서러움를 나도 잘 아는데 말이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오늘의 안녕을 빈다.

당신의 피부색 때문에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기를.

내가 미안해요.

삭막한 뒷골목이라 그랬어요.


친구의 작업실로 향했다.

작품 하나를 샀다.


살 자리(Zari_Home)_심희정


Where I am coming from...

Where I am...

Where I will be...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나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나는 앞으로 어디에서 살지


언제나 나에게 던지는 질문들


내가 지구 어디에 살든

내가 자라온 곳을 잊지 말고

나를 잊지 말고

앞으로 가게 될 미래의 어떤 곳이라도

내가 다녀가는 자리에

나의 은은한 향을 남길 수 있도록


그런 내 자리를 생각하자고

친구의 작품 "살 자리(Jari_Home)"를 샀다.


기와, 벽돌 담장 그리고 열려있는 문.

기억할게.


서울에서 만난 한 이방인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외국에서도 이방인이고,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한국에서도 이방인이 되어 있는 나의 삶을.

가끔씩 기분이 가라앉는 때가 있다. 나의 글들은 명랑한 이방인으로 잘 살아내려는 나의 생각과 태도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것은 행복이기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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