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초 독일에 처음 정착했던 도시는 뒤셀도르프였다. 백조가 사는 작은 호수 옆 아름다운 건물에 집을 구했다. 라인강변이 가까워 산책할 수 있고, 구시가인 알트슈타트(Altstadt)도 걸어갈 수 있는 작지만 완벽한 집이었다. 우리 집 위층에는 세련된 60대 초반의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은빛 머리에 언제나 검은색 옷을 입고, 목이 있는 부츠를 신던 멋쟁이 라인홀트(Reinhold) 아저씨. 언제나 따뜻한 미소를 보내던 조용한 게릿(Gerit) 아줌마.
하루는 그들이 작은 파티에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그날 아저씨 집 거실에 걸려있던 그림을 보고 난 산뜻한 충격을 받았다. 갤러리가 아닌 일반 가정집에 그렇게 큰 그림을 건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 여자가 거울을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칼 뒤로 진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행복한 그녀의 웃음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순간 내가 그녀인 듯 행복해졌다. 언제나 그녀처럼 웃고 싶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저 좋아했던 그림을 이젠 더 가까이 느끼고 싶었다. 더 알고 싶었다. 길을 걷다 갤러리가 있으면 들어가 구경을 했다.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을 만난 날에는 소소한 행복이 빛낸 나의 하루에 감사했다.
같은 해 4월, 남편의 대학 친구 커플을 만나러 브뤼셀로 여행을 갔다. 브뤼셀을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꼭 들르는 그랑 사블롱 광장(Place du Grand Sablon)에 갔다. 그곳에는 유명한 레스토랑, 카페, 초콜릿 가게, 골동품 상점 등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와플을 먹으며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순간 그림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홀린 듯 갤러리에 들어가 그림을 감상했다. 가격을 물어보니 2천 유로(약 260만 원). 갓 결혼한 우리에겐 가구를 사는 것이 더 급했기에 몰래 사진 한 장만 찍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느낌을 살려 내가 비슷하게 그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물론 너무 큰 꿈이라 실현하지는 못했다. 그 후로 집에 걸 그림을 고를 때면 브뤼셀에서 본 그림이 떠올랐다. 화사한 배경에 생각이 많은 듯 앉아있던 까만색 머리의 그녀가 자꾸 생각났다.
7년 후. 나에겐 어느덧 두 살 반 터울의 아들과 딸이 생겼다. 남편이 내 생일에 깜짝 선물로 브뤼셀 주말여행을 준비했다. 남편은 내가 브뤼셀에서 본 그림을 잊지 못하는 것을 알고 화가를 찾아보았다 했다. 구글맵으로 이름도 모르는 그 갤러리를 찾아, 갤러리에 편지를 보내 화가의 이름과 연락처를 물어보았단다. 마침 5월에 같은 갤러리에서 그 작가의 전시회가 있다고, 그때 오면 작가와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같은 그림은 아니지만 생일 선물로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을 사 줄게." 그렇게 다시 찾은 전시회에서 나는 화가를 만났고, 작품에 대한 설명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화가의 이름은 쥬느비에브 쁘띠(Geneviève Petit). 갤러리에 걸린 그림들을 천천히 감상했다. 첫눈에 좋았던 그림이 끝까지 마음에 남았다. 강렬하면서도 따뜻한 빨간색으로 눈길을 끌었던 그 작품엔 꿈을 꾸듯 눈을 감고 있는 발레리나가 있었고, 그녀의 튜튜는 꽃잎처럼 활짝 피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발레리나를 그렸으나 마치 한 송이 꽃 같기도 한, 눈을 감고 있는 편안한 얼굴이 보는 사람마저 차분하게 물들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 그림은 나에게로 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림을 배운 적이 있었다. 데생으로 아그리파까지 그렸고 중학교 때는 좋아하는 스누피를 따라 그리면서 즐기는 수준이었다. 고등학교 때 의상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을 때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도 어려웠고, 스스로도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뒤로 예술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림은 화가나 평론가 등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그림에 관심이 생기면서 내가 살았던 도시를 떠날 때마다 그림을 샀다. 내가 살던 도시를 떠난다는 아쉬움과 추억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모아 그 도시를 담고 있는 그림을 한 점씩 모았다. 나는 살았거나 여행했던 도시의 그림을 통해 나의 서사를 담아가고 있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그림 속 그녀들이 그림과 나의 세계를 다시 좁혀줬다. 책을 읽듯 그림을 본다. 그림을 보면서 화가의 마음을 읽어본다.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지, 무엇을 이해받고 싶은 지. 화가는 그림으로, 작가는 글로 마음으로 표현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림을 통해 내 마음도 헤아려본다.
나는 이제 더 큰 꿈을 꾼다. 내가 직접 그림을 그리는 꿈. 따라 그리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도 배우고 싶다. 글을 쓰고 그것에 맞는 삽화를 내가 직접 그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며 행복하게 나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