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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Jul 14. 2023

이웃집 토토로 감상


마음이 붕 떠서 일이 좀처럼 손에 잡히질 않는다. 아무래도 불안한 시기다. 정신건강의학과가 이전보다 낫다고 하지만, 내 선택이 잘 한 선택일지 잘 모르겠다. 계약을 취소할 일도 없고 이제는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때로 막막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장소를 계약하고, 이름을 정하고, 사업자 등록을 하고, 세무사나 은행에 연락하고 연락을 받는다. 여러 인테리어 업체와 미팅을 진행해서 내게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업체를 고르는 중이다. 여러 사람을 만날 때마다 참 사람은 다양하단 생각이 든다. 다양한 감정이 오고 간다. 나는 어떤 기준으로 상대방을 신뢰하고 계약을 진행하게 되는 것일까. 인테리어는 처음이라 인테리어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래도 미팅을 하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해, 그 사람과의 작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반대로 나는 직업적으로 어떤 사람일까. 나는 진료를 하며 환자분께 어떤 인상을 줄까. 때로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고 마음이 안정적이다가 때로는 나도 모르는 구멍으로 그런 자신감들이 다 빠졌는지 텅 비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때엔 불안하기도 하고 갑갑하기도 하고, 막연하게 화가 나기도 하다.


출퇴근길 전철을 타는 40분간 뭐라도 잡고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의 습관이었는데 요즘엔 도저히 책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책이 취향에 맞지 않아 그런가 하고 몇 번 책을 바꿔봐도 마찬가지길래, 아 지금은 때가 아닌가 보다 언젠가 또 때가 오겠지 하고 책 읽는 것을 포기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많이 읽힐 때 많이 읽고 굳이 내 마음을 거스르면서까지 습관을 유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최근엔 이웃집 토토로를 봤다. 아마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기 때문일까. 아이들을 돌보는 입장이라 그런가 영화가 왜 그렇게도 가슴이 아프던지 모르겠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화면이 아름다웠다. 화면이 아름다워서 그런가 아이들이 밝은 모습으로 씩씩하게, 희망적으로 그려지는데, 마냥 마음이 편한 환경 같지는 않다. 건강이 안 좋은 어머니는 입원 중이라 집에 없고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큰 애가 아버지와 자신과 동생의 도시락을 씩씩하게 준비한다. 아버지가 때로 퇴근이 늦어져서, 비 오는 날 아이들이 가로등도 없는 산길에서 하염없이 아버지를 기다린다. 예정된 시간에도 아버지가 오지 못하는 일이 있다. 간절히 기다리던 엄마 퇴원이 미뤄진다는 전보를 받고, 엄마의 건강이 악화돼 엄마를 잃을 수도 있겠다고 걱정한다. 아이들은 먼 길을 뛰어가며 엄마와 연락할 전화를 찾거나 길도 잘 모르는 병원으로 향한다. 그런 장면마다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듯 토토로가 등장한다. 나는 토토로가 아이들이 희망적인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절박한 환상처럼 느껴져서 더 마음이 아팠다.


출근길에 매일 들리는 카페가 있다. 그 카페가 생기고는 출근하는 날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 하고 있다. 내 출근 시간 전에 문을 여는 몇 안 되는 가게이기도 하고, 1500원에서 1900원으로 가격도 최근엔 조금 인상되었지만 일대에서 가장 저렴하다. 맛도 괜찮아서 같은 곳에서 습관처럼 커피를 사서 마신다. 내가 근무하면서 그곳의 직원이 바뀌기도 했는데 최근 바뀐 남자 직원이 사뭇 인상적이다. 대기가 긴 것은 아닌데 내가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동안 메뉴 늘 먼저 물어봐서 만든다거나, 어느 날 보니 밖에 나와있어서 보니 혼자 열심히 가게를 청소한다거나. 그 행동이 아주 큰 차이는 아니겠지만, 뭔가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 이상의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최근에 멍해있었는데 그 직원을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자극이 되기도 했다. 한편으론 저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행동에서 차이가 나는구나 싶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사람은 누구나 효율적으로 움직임을 줄이고 싶어 한다던데, 혹시나 지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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