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원 Oct 30. 2023

개원 3주 차

오랜만에 잠을 푹 잤다. 오랜만의 낮잠이었다. 잠에서 깨고도 2-3시간 동안은 잘 잤다는 감각, 기분 좋은 두통이 지속되었다. 좋은 느낌이 오래가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했더니 아내는,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좋은 기분을 충분히 만끽하라고 했다. 하긴 맞는 말이다. 갑자기 찾아온 행운이 잘 믿어지지 않는 것처럼.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숙면이 낯설었던 것 같다. 

 개원한지 2주가 지났고 이제 3주 차 월요일이다. 개원을 준비하면서도, 개원을 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잠을 잘 못 잤다. 보통은 잠을 들긴 어려워해도 한번 자면 세상모르게 잘 자는 편이었는데. 근 한 달간은 새벽에 자주 깨고,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출근 3시간 전에 눈이 떠졌다. 식욕이 신기하게 사라졌다. 새로 들인 뇌파 기계를 매일 나를 대상으로 테스트하는데, 연두색으로 고르게 나와야 정상인 검사 결과가 시뻘겋게 나온다. 처음엔 아직 테스트가 좀 익숙하지 않은가 부정했지만 이어 내가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주가 지나니 이제야 굵직한 할 일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안정이 되는 듯하다. 이전이 산 넘어 산이었다면. 이제는 동산 넘어 동산 정도. 감정적으로 버거운 만큼은 아니다.

 처음 개원하고, 네이버 검색도 잘되지 않던 때엔,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화도 잘 오지 않았다. 강남구청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강남구청역 정신과라고 검색하면 마치 엉뚱한 것을 질문받았다는 듯, 내 의원의 위치는 네이버 플레이스에 안내되지 않았다. 모바일에서 더 보기를 누르고, 그래도 검색이 안돼서 펼쳐서 보기를 누르고, 그다음 한참 멀리 한강 건너에 있는 다른 정신건강의학과와 함께 검색이 되었다. 네이버 플레이스 순위가 낮아서 그랬던 것 같은데. 당시의 막막함이란. 

 개원 준비를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대로 내가 여기 있는지 아무도 모르면 어떻게 하나. 그대로 잊히면 어쩌나 하는 불안했다. 학창 시절, 자취를 하던 때에, 혼자 원룸에서 지내다 침대와 벽 사이 공간에 어쩌다 끼게 되었는데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없어 죽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 아니면 누가 적당히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당시에 듣고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10년 넘게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한창 불안한 마음이 드는 때에 그 이야기까지 떠올랐다. 이렇게 공을 들여 준비했는데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그래서 그런 상상까지 들지 않았나 싶다. 

 불안한 이유 중 하나는 마케팅을 따로 하지 않고 블로그만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이 충분할까 하는 걱정이 있기 때문이다. 건물의 간판은 작아서 시인성이 떨어지고, 게다가 가로수에 딱 걸리는 위치라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처음 개원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그리고 상당한 비용이 드는 마케팅 방법이 있다고 들었고 당시에는, 나도 잘 홍보성 글은 잘 읽지 않는 터라 꼭 그것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신과는 의료의 한 장면이지만,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곳이고 혹시 너무 상업적인 것이 그 마음을 해치지 않을까 싶었다. 다소 전문적인 마케터에 비해 어리숙하더라도 직접 내가 적고 홍보하는 것이 진정성 있고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경쟁이 많은 곳에 개원을 하고 그런 나이브 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혹시 일종의 오만한 생각은 아니었나 하고 자신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불안에 쫓겨 이런저런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는, 좀 시간을 두고 기다려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한가로운 진료시간에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거리가 먼 이전 근무지들에서 환자분들이 찾아와주신다. 짧게는 편도 90분, 길게는 편도 120분이 걸리는 거리이다. 먼 길을 오시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치료자인가 과분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감사하기도 하다. 

 아직은 전화 한 통에, 네이버 스마트 플레이스 예약 알람에 깜짝 놀라 신경이 곤두선다. 운동을 처음 배운 사람이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자세를 취하듯, 항상 해오던 진료인데도 힘이 잔뜩 들어간 진료를 한다. 아무래도 적응 시간이 좀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원을 준비하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