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나만의 요새를 건축하는 일을 즐겨했다. 어떻게 요새를 건축하냐고 하니, 책상 가장 자리에 이불을 펼쳐 올려놓고 영어사전이나 무게가 나갈 법할 물건들을 그 위에 올린다. 그리고 이불을 쫙 펼치면 책상의 의자와 다리를 넣는 사이를 이불이 가리게 된다. 그 안은 나만의 요새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엄마가 낮잠을 자거나 잠시 외출을 나갔을 때만 몰래 건축할 수 있는 한시적 요새이다.
그 한시적 요새가 얼마나 아늑한가 하니 그곳에 들어가면 어둡고 작은 공간에 들어가 있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안에 좋아하는 필기구나, 책, 과자 등을 가지고 들어가 그 껌껌한 공간에서 혼자서 시간 보내기를 즐겼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었을 때 캠핑을 다니는 어른들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저 어른은 어쩜 저렇게 대단한 장비들을 이고 지고 나르며 텐트를 펼쳐내고 불도 피워 밥을 해 먹나. 무엇보다 저 모든 것을 감수할 만한 경제적 여건이 된다는 것이 스무 살 초반의 나로서는 내가 이루기에 까마득해 보이는 일이기도 했을뿐더러 저런 장비쯤 이고 살아도 괜찮을 개인적인 공간까지 갖춘 것이니, 나도 언젠가 이뤄낼 수 있을까 하고 꿈만 꾸며 살아갔다. 그도 그럴 것이 텐트는 비싸고 그 모든 캠핑의 온갖 장비들을 구매하고자 생각한다면 여간 부담이 되는 금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까운 산에서 하는 백팩킹이 아닌 이상 어딜 가든 차가 있어야 했다.
나는 기어코 그 꿈을 이뤄낸다. 대단하리 만큼 여겼던 캠핑이란 실은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을뿐더러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캠핑에 가면 캠핑장비, 주유비, 거기까지 갔으니 좋은 것을 먹어야 한다는 압박과 기대로 인한 식자재 비용, 캠핑을 하고 나서 주변 경관을 둘러봐야 하는 관광비 등 돈 나갈 곳 천지라 부담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왜 돈을 써가며 이고 지고 캠핑을 떠나냐고? 그건 앞서 말한 나만의 요새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캠핑은 일단 밖에 나가 자신의 집을 지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차박을 하든 텐트를 치든, 어찌 되었든 오늘 밤 하루 자신이 뉘일 곳을 마련해야 한다는 소리다(캠크닉은 제외로 치겠다). 얇은 텐트의 천이 혹은 차의 알루미늄 벽이 나와 세상을 잠시 동떨어지게 해주는 칸막이가 된다. 망망대해의 요트, 첩첩산중의 동굴과도 같은 공간이 금세 펼쳐진다.
집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짓고 나면 그다음은 밥을 해 먹을 준비를 해야 한다. 간단히 음식을 포장해 와도 되지만 캠핑하면 뭐니 뭐니 해도 굽고 끓이는 것이 최고이다. 요새 안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라면도 삶아 먹는다. 돈 많이 드는 손꿉놀이 같다. 나는 주로 미니 가스버너 위에 잘 양념된 소고기를 구워 먹는다. 호주산 소고기는 싸고 맛도 있다. 돈이 조금 더 되는 날엔 하나로 마트에 가서 한우를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그럼 그걸 또 구워 먹는다. 가장 설거지 거리가 적게 나오고 맛있으며 캠핑 분위기를 내기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것이 조금 물려 다른 방법을 고안해 냈다. 바로 뭐든 튀기는 것이다. 요즘 캠핑용 튀김냄비들은 실용성 있게 잘 나와있다. 봄에는 두릅을 튀기고, 고기 구워 먹는 것이 물릴 때는 오징어나 새우를 튀겨 먹는다. 기름 응고제를 미리 구매해 가면 튀기고 남은 기름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 거기에다 곁들일 국물 요리로 빨간 어묵탕이나 부대찌개를 준비한다. 느끼한 것엔 약간의 매콤한 국물이 필요하다. 떡볶이를 만들어 분식메뉴 느낌이 나도록 준비할 때도 있다. 이 모든 것 또한 귀찮아질 때면 그냥 포장한 음식을 가져가 먹는다. 배달어플로 치킨 포장 주문을 해가면 배달비도 아낄 수 있고 무엇보다 너무나 간편하다.
요새에서 해 먹는 밥이 얼마나 귀중하냐면... 그것은 채렵과 수집, 사냥의 시대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나의 DNA에 각성된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행위를 나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과 즐거움은 크나큰 행복이다. 사회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든,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든 비난을 하든 간에 내가 쳐 놓은 나의 요새에는 감히 함부로 불쑥 찾아올 수 없으며 아무에게나 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곳은 나만이 내가 허락한 사람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일종의 성역임과 동시에 세상의 온갖 더러운 꼴들을 보지 않아도 되는 안락한 공간인 것이다. 이 세상은 나를 항시 귀찮게 하고 해야 할 일 투성에 내 정신의 고요함을 잡아먹기에 충분한 것들 투성이니 나는 이렇게 짐을 이고 지고 다시 밖에 나가 나만의 요새를 건설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저렴한 제품의 텐트들이 즐비하다. 각자가 원하는 모양과 색, 용도에 따라 구입하면 된다. 이건... 요즘 시대에 자기 집을 갖는 것보다 훨씬 쉽고 간단한 일이다. 원한다면 10만 원 안팎으로 구입할 수도 있다. 물론 브랜드가 주는 고급적 이미지의 포기, 약간의 허술함, 정형화된 구린 디자인을 감수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안전한 공간에서 직접 끓이고 굽고 튀긴 음식을 내 입으로 가져가 먹어버리는 행위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로써 오늘도 무사히 생존했다는 안도감까지 가져다준다. 그게 힐링 포인트가 된다. 캠핑러라면 밖에 나가 왜 사서 고생하냐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이제는 그냥 픽 웃는다. 너희가 이 안도를 아느냐. 너희가 이 안심이 되는 마음을 아느냐?
얼마 전 유튜브에서 용산역 근방에 텐트를 치고 살아가는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들을 자신만의 텐트를 세상으로부터 유일하 뉘일 한 곳으로 썼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했기에 텐트를 선택한 그들이지만 단지 저 얇은 천과 경량의 폴대 몇 개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에게는 힐링이지만 그들에겐 생존이다. 나에게는 캠핑이지만 그들에게는 단 하나의 유일한 집이었다. 요즘 일본의 가난한 청년들 중 집 없이 차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주거 비용은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 의식주 중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한다. 그래서 샤워실이 마련되어 있는 고속도로의 휴게소에 차를 정박해 놓고, 그곳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며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생의 의지도 느껴졌지만 그와 동시에 현대 사회에서 내몰릴 만큼 내몰린 젊은이들 나름대로의 생존 기법이 신박하고 슬펐다.
누구에게나 요새가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먹고살 음식을 저장할 곳, 추위와 더위를 견디해줄 외피를 보관할 곳, 추억을 간직한 물건을 둘 곳, 취향을 나타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이를 기꺼이 들일 수 있는 장소. 내 한 몸 뻗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어째 점점 더 그 면적은 좁아지고 그마저도 얻고 나면 유지하기 힘든 세상이 된 지 진작이다. 오롯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나의 욕망이 캠핑으로 귀결 됐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이곳이 아닌 어딘가 2년 계약해야 하는 월세나 전세가 아니라 나만의 진짜 요새를 찾을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