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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산 Oct 10. 2022

리더란 참 외로운 자리야

익숙하려고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 자리

직업이 방송사 PD임에도 TV를 잘 보지 않는 괴랄한 성격이지만, 최애 프로그램은 있다. 바로 [유 퀴즈 온 더 블럭]. 본방 사수는 아니어도 유튜브 등의 OTT 플랫폼을 통해 꼬박꼬박 챙겨보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인데, 최근 재정비를 마치고 새롭게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 1700만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나왔다. 이순신 장군을 워낙 좋아해서 이순신에 관한 공부만 거의 10년을 해왔다고 한다. 영화감독이든, PD든 어떤 주제로 작품이나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해당 주제의 준전문가는 되어야 한다는 말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김한민 감독이 들려주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조금은 감정적인 부분에 공감을 하게 됐다. "감독이란 참 외로운 자리"라는 말.


영화감독과 방송사 PD는 장르는 다르지만 가장 크게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제작팀의 '리더'라는 것. 내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의 팀 구성은 메인 연출인 나를 포함하여 진행자 1명, 조연출 1명, 작가 1명, 카메라 감독 3명으로 구성되어있다. 10명도 되지 않는 이 작은 팀에서도 역시나 리더는 존재하고 그 자리는 메인 연출이 맡는다. 경력과 나이가 가장 적음에도 팀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연출이다. 이 말인즉슨 제작 과정에 관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Director의 숙명이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중


영화 제작 팀에 비하면 그 규모가 비교도 되지 않겠지만 나 또한 비슷한 마음을 느낀다. 촬영 현장에 나가면 즐거움보단 부담감과 두려운 마음이 더 크게 들 때가 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일이었는데도 도망치고 싶은 생각도 들 때가 있다. 내가 리더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생기는 예상치 못한 모든 문제들에 대해 오롯이 혼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출연자가 갑자기 촬영을 거부하며 화를 낼 때, 나의 선택으로 일정이 꼬여 팀원들이 힘들어질 때, 조연출이 고가의 카메라를 망가뜨렸을 때 등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 오롯이 혼자 결정해야 한다. 책임은 언제나 연출자에게 있기 때문에 정말 머리가 하얘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는 정말 큰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이 외로움을 주변에 함부로 표현할 수도 없다.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리더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외로워진다. 어려운 상황이 와도 당황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화가 나더라도 한 번 더 참아야 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어도 현장에서는 웃어넘기려 노력하지만 결국 근본적인 외로움은 해결할 수가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외로움은 우리 같은 제작자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리더가 느끼는 공통적인 것이 아닐까. 하다못해 한 가정의 가장이 느끼는 외로움도 아마 이와 결이 비슷하지 않을까. 리더가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하는 왕관의 무게 같은 것일까. 어떻게 해야 이 외로움을 좋은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역시 리더란 참 어려운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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