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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니쌤 Nov 07. 2023

[북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현대인은 삶을 이루는 두 가지 측면(내면의 순수성과 현실 세계)이 불협화음-사실 양 극단이 부딪히는 모든 상황- 에서 오는 구토감과 현기증을 느낀다. 이번 책을 읽으며 나른한 구토감을 느꼈다면,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반쯤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르트르의 <구토>와 카뮈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 소설뿐 아니라 하루키 소설들의 공통적인 주제는 현대인이 느끼는 구토감, 특히 '개인의 순수성, 내면'과 '현실' 사이의 괴리 속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방향 감각 상실(부조리의 감정)에서 오는 구토의 감정들이 하루키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순수성을 추구하지만 결국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은 어떻게, 왜 돌아왔는지도 모른 채 결국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이전 작품들에서도 이 부조리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수많은 장치들이 쓰이며, 이번 책에서는 현실과 대립되는 세계로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사용되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점이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에게 더욱 이입하게 만들어서, 현실과 내면의 불협화음을 견디며 살아가는 현대인들 자체라고 느끼게 하는 데 더 효과적인 설정은 아니었을까.


 예전에 썼던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 리뷰를 같이 본다면 하루키가 어떤 생각을 소설로 나타내었는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brunch.co.kr/@zoomwk/4

 <도시와 불확실한 벽> 76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읽는 데는 크게 어렵지 않다. 인내심을 가지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이 글은 하루키의 문제의식과 소설적 창작력에 대한 나의 존중을 표시하는 의미로 매우 자세하게 주관적 해설 및 느낀 점을 적었다. 이 글을 읽고 교훈을 얻는 것은 본인의 몫이지만 다소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리뷰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줄거리 정리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주인공과 주인공이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던 소녀가 나온다. 어느 글짓기 대회에서 우연히 만난 소녀와 주인공은 만남을 이어간다. 그러다가 그 소녀가 꺼낸 어느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마음을 키워간다. 하지만 어느 날 소녀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1부의 진행은 소설의 두 가지 공간적 배경인 '현실(과거)'과 '도시'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나온다. 즉 1부에서 소녀와의 일화를 이야기할 때는 어린 시절의 주인공으로, '도시'에서 나오는 주인공은 중년의 아저씨인 것이다. 다른 시점과, 다른 장소를 번갈아가며 구성한 것이 나름 신선했던 장면이다. 


 2부의 공간적 배경은 주인공이 중년의 아저씨로 나오는 현실 세계이다. 1부의 마지막에 주인공은 도시를 빠져나오지 않기로 했지만 어떤 의지에 의해 현실 세계로 돌아오며 도서관의 관장을 맡게 된다. 거기에서 전(前) 도서관장 고 야스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주인공과 고야스는 진심으로 사랑한 존재를 잃은 큰 상실감과 그로 인해 현실에서 받는 고통을 공유한다. 두 인물 모두 상실감을 경험한 후에 현실 세계에서 괴리를 경험했다.


  2부 ~ 3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M** 소년도 등장한다. 이 소년은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천재 소년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말도 없으며 학교도 다니지 않고 매일 도서관에서 책만 읽는 소년이다. 즉, 주인공이나 고야스처럼 현실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괴리를 느끼는 소년이다. 이 소년은 우연히 주인공이 경험했던 '도시'에 대해 듣고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그 후 그 소년과 주인공을 그 도시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 소년은 끝까지 도시에 남고, 주인공은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소설의 두 가지 공간적 배경


 이 소설에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 순수성을 간직한 '어떤 도시' 그리고 주인공이 구토감을 느끼는 '현실 세계' 두 개의 큰 공간적 배경이 있다. 현실에서 주인공은 특출 나지 않은 중년의 미혼 남성이다. 그는 현실 세계가 자신을 위한 공간이 아님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간다. 


 이에 반해 그가 떨어진 도시에서 그는 할 일이 있다. 바로 '꿈을 읽는 것'이다. 시간도 흐르지 않는 도시는 주인공이 순수함을 간직했던 시절, 상실을 겪기 이전에 소녀와 함께 만들어가던 상상 속의 도시이다. 이 도시 안에서 주인공은 자신만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것을 하며 살아간다. 여기에서 주인공은 안정감, 편안함을 느끼고 어린 시절에 만났던 소녀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도시와 현실, 그 경계의 모호함


 이 책에서 중요한 두 공간적 배경 사이에 놓인 '불확실한 벽'이다. 도시는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성벽은 견고하며 상처하나 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이 성을 나가기로 결심했을 때, 그 견고해 보이던 성벽은 하나의 꾸덕꾸덕한 점액질에 불과했다. 자신이 머물고 싶은 내면과 돌아가기 싫은 현실 사이의 벽은 절대적인 게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내면과 현실의 경계를 이루는 도시의 벽의 애매모호함은 인간을 더욱 힘들게 한다. 어떠한 도덕률과 기준에 의해 세운 자기 내면, 현실의 경계들은 사실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가치 판단은 그 경계에서 애매해지고, 어떤 것이 선과 악인지, 도덕이고 비도덕인지 허물어지게 된다. 가장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것과 비천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사실은 너무나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그걸 느낀 인간은 본질적으로 가치 판단에서 이와 같은 모호함을 참을 수 없기에 현기증과 구토감을 느낀다. 




결국 인간은 현실에 살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처한 현실은 이상과 많이 다르다. 그러나 인간은 어찌 되었든 현실에 살아야 한다.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허공에 떠있는 (743p) 도시에서 살 수는 없다. 인간은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모순과 우연히 가득하고 불행과 불평등, 경쟁으로 가득하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기계적인 현실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다. 



 이상적인 세계와 현실의 세계 중 어떤 곳에 머무를지 택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다. 무엇인지 모를 세계의 어떤 것이 인간을 항상 현실에 묶어두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지만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세계에서 '고통'이라고 느끼는 것들 중 가장 근원적인 고통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인류애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바로 우리의 선택과 관계없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가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그럼, 현실 세계에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과 M**소년은 "어떤 도시"에서 거의 한 몸이 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결국 현실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M**에 따르면 그 도시는 "허공"에 떠있는 곳이었고, 거기를 떠나려 하면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결국 이 책에서 하루키가 현실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이 대화이지 않을까?


 현실에서 자신의 존재를 아무 말 없이 받아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사람은 허공 (현실을 부정하는 이상적인 세계)을 벗어나 땅에서 살 수 있다. 그게 가족이든, 애인이든, 친구이든 간에 어떠한 편견 없이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꼭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인간은 땅에 발을 디뎌 걸을 수밖에 없다. 현실에 머물러야만 한다면, 허공에서 떠다니지 않게 자신을 꽉 매어주는 무언가 의미 있는 것들을 지상에서 찾아야만 인간은 살 수 있다. 


 그렇다고 이상의 세계는 버려야 하는가? 아니다. 이상 세계인 도시에서 주인공과 거의 한 몸이 되었던 M**은 도시에 남아 주인공이 했던 꿈 읽는 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즉, 하루키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현실에 매여 살 수밖에 없지만 이상의 세계에도 자기의 분신을 남겨두어라.






라고 말이다.




마치며




 나는 하루키 소설이 좋다. 하루키의 소설은 어려운 질문을 쉽게 풀어가는 상상력에 그 매력이 있다. 현실에서의 욕망과 내면의 순수함을 모두 다루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나름의 결론들도 내포하는 소설이다. 그렇기에 방향감을 잃은 현대인들이 한 번쯤은 읽어 볼 만한 현대 소설의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도시에 두고 온 이상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나를 지상에 묶어 둘 수 있는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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