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디디의 노블 테라피 Oct 9. 2021
아이가 평생 할 효도를 다 하는 시기가 있다고 한다. 한창 예쁜 짓을 많이 한다는 4~5세. 나는 그 시기를 도둑맞았다. 대신 대학병원들을 전전하며 녹초가 되어버린 딸아이와 담당의사 앞에 무력하게 앉아 한숨만 내쉬던 내가, 그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열 살인 딸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여름, 아이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이상 증상은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입퇴원과 각종 검사를 반복하며 병명을 찾는 데만 이 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고, 유전자검사 끝에 극희귀난치병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백만 분의 일의 확률로 발생한다는 이 유전질환은 치료법이 없다고 했다. 불수의적인 증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아와 아이를 괴롭혔고 포동포동했던 아이의 볼 살은 점점 야위어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던 나는 아이가 잠든 매일 밤 유령처럼 집안 곳곳을 헤매고 다녔다. 어디서 몸을 내던져야 할까, 어디서 목을 매어야 할까. 그렇게 발이 닿지 않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를 일 년. 어느 날 아이가 잔뜩 주눅이 든 채 물었다. “엄마 많이 힘들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구보다도 힘들었을 아이가 엄마의 눈치까지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책장에서 소설책을 꺼낸 든 건 그날 밤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이 막막한 현실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천명관 작가의 [고래]. 무성 영화의 변사가 곁에서 읊어주는 듯 숨가쁘게 흘러가는 주인공의 삶을 좇다보니 어느새 이야기에 폭 빠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잠시였지만 분명 나는 잊고 있었다. 오랜 시간 무서운 기세로 나를 잠식하던 ‘아이가 아프다’는 현실에서 한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닥치는 대로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은.
특히 음울한 내용의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이들, 갑작스레 짓궂은 운명의 장난에 걸려 방황하는 이들, 빠져나오려 발버둥질할수록 불행의 늪에 빠져드는 이들, 삶의 권태와 허무로 시들어가는 이들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고 버티며 또다시 주어진 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를 닮은 이야기.
현실 세계 어딘가에도 엄존하고 있음이 분명한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리며 나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던 깊은 위로를 받았다. 차마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내밀한(그러나 솔직한) 욕망을 품은 그들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하소연한 뒤 반드시 밀려오던 외로움과 공허감을 그들로부터는 느낄 수 없었다.
“어떤 고통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일상의 잔인한 영속성을 미옥씨에게서 보았어요. (…) 산다는 건, 싸구려 픽션보다 더한 굴곡을 늘 감추고 있을 뿐이에요. 그것까지가 삶이에요”(정미경, [나의 피투성이 연인] p.286)
“어떤 고통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일상의 잔인한 영속성”. 나는 그것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보았다. 거울에 비친 나에게서,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에게서, 고생하는 딸을 위해 반찬을 만들어주는 친정엄마에게서,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입원실에서 아이를 간호하는 아이 엄마에게서, 햇빛 찬란한 5월 입원실 좁은 침대에 누워 있는 아픈 아이에게서...그리고 한 가지 진부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싸구려 픽션보다 더한 굴곡을 늘 이면에 감추고 있”는 삶 속에서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치열하게 소설을 읽으며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스스로 위로하고 다독이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나는 지독한 절망의 늪에서 서서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 년이 지난 현재, 아이의 병은 치료법이 없는 상태고 나는 꾸준히 소설을 읽고 있다. 아이를 보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절망과 희망을 오가는 것도 여전하다. 다만 지금은 알고 있다. 인생은 한 편의 소설이라는 것을, 아니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것이 인생이라는 것. 백만 분의 일이라는, 그 소설 같은 확률이 내 딸아이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인생’이라는 소설의 주인공인 우리는 소설을 통해 위안과 일상을 지속할 힘을 얻을 수 있다. 매섭게도 모질었던 절망의 시기 나를 붙잡아준 소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그나마 꿋꿋이 살고있다고 믿는다.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도, 과거의 나처럼 고통에 몸부림치며 어찌할 바 모르는 이들이 있음을 안다. 그들에게도 치유하는 소설을 알려주고 싶다. 가슴속에 얼룩처럼 배어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품고도, 그럼에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치유의 힘이, 소설에는 분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