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5일, 내 나이 25살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일, 여행, 교육 비자의 통합)를 받아 호주의 멜버른으로 입국했다.
내 주머니에는 전 재산 호주달러 800불(당시 1불은 1100원)이 들어있었다. 이 돈으로 머물 숙소도 구하고,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생활해야 했다. 호주에 온 후부터는 모든 걸 혼자 해결하고 살아남아야 했다. 호주에 온 목표 중 하나인 자전거 여행을 위해 돈도 모아야 했다.
입국 첫날 멜버른에서 제일 저렴한 백패커스(게스트하우스)를 잡았다. 체크인하고 방에 들어가서 어둠이 깔려있는 2층 침대 8개 사이로 널브러진 짐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내 침대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하.. 여기서는 오래 지내기 힘들 것 같다. 빨리 숙소를 구하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숙소 구하기 의지를 불태웠다.
영어가 능숙하지 못 한 나는 '호주 바다'라는 한인 커뮤니티를 폭풍 검색하여 보증금 400불에 주당 100불씩 내는 셰어하우스를 구했다. 멜버른 도서관 뒤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방 3개, 화장실 2개, 거실, 주방으로 된 오피스텔이었는데 방 1곳은 주인이, 다른 방 1곳은 여자 2명이, 큰방에는 남자 3명이 지냈다. 침대 3개를 놓으면 꽉 차는 큰방의 침대 1개가 나의 자리였다. 침대 1개와 화장실, 공유 주방을 사용하는데 주에 100불(11만 원)씩 내야한다는것이 부담이었다. 그러나 멜버른에서는 저렴한 시세였다.
셰어하우스로 짐을 옮기고 '호주 바다'에서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보증금 내고 1주일치 방값을 내니까 당장 돈이 없어 손가락 빨게 생겼다. 실제로 그런 불안감에 입국한 다음날 오렌지주스 2리터짜리를 2불 주고 사서 하루 종일 마시기도 하였다. 현지인 가게에서 일하면서 영어실력도 늘리고 현지인과 어울려 놀아야지라는 생각들은 나의 가난한 생존본능을 이기지 못했다.
호주 온 지 3일 만에 나는 한인 치킨가게 '가미'라는 곳에서 주방일을 시작했다. 시급 12불을 받았다. 당시 호주 최저시급이 18불이었다!! 대신 점심, 저녁을 해결할 수 있었고 주급으로 주었기 때문에 당장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가미'라는 곳은 한국인 친구 3명이 창업했는데 한국의 양념치킨을 호주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다. 장사가 너무 잘돼서 3호점까지 늘렸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한국 치킨을 좋아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밀려드는 손님들을 보며 몸소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한국 치킨에 열광하는 호주인들을 마냥 기쁘게 바라볼 수 없었다. 밀려오는 손님들과 비례하여 내가 씻어야 할 설거지거리가 설거지통으로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념치킨의 흔적이 접시 바닥에서 달콤한 휴식을 방해하지 말라며 찐득하게 붙어 있었다. 떨어트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정신없이 설거지를 하다 보면 퇴근길에는 바지가 흥건히 젖어있었다. 1주일에 40~50시간을 일해서 500불씩 받으며 호주 워홀이 시작되었다.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설거지에서도 벗어나고 치킨도 튀겨보고 다른 재료들도 준비하며 시급도 올라가고 어느 정도 적응도 잘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한 지 3달쯤 됐을 때, 나는 느꼈다. 이런 식으로 일하면 정말 살아만 가고 말 것이라는 것을.. 도저히 돈이 모아지질 않았다. 일 끝나고 같이 일하는 형들과 어울려 놀고, 방값 내고, 식비 쓰고 나면 돈이 거의 남지 않았다. 이렇게 살다가는 나의 목표인 멜버른에서 시드니까지 자전거 타고 가는 계획을 실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 구해질 때까지만 일하고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리고 좀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고기공장, 농장, 하우스키퍼, 가구공장 등 이력서를 내보았지만 전화로 하는 영어 인터뷰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모아놓은 돈도 다 써가서 매일매일 라면과 시리얼로 버텨야 했다.
그러던 중 재연이가 자기는 이제 한국에 들어가니까 자기가 했던 일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재연이는 고등학교 동창이고 제일 친한 여사친이었다. 함께 독서모임도 하였는데 거기서 재연이가 호주로 워홀을 간다길래 그때 처음 호주 워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연이가 일하고 있던 곳은 캔버라의 '스시베이'라는 스시가게였다. 이력서를 써서 한번 오라고 했고 멜버른에서 캔버라까지 9시간 버스를 타고 갔다.
캔버라에 처음 내렸는데 ‘여기가 정말 호주의 수도 맞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호주의 도시들과 너무 비교되고 한국의 지방 읍내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생각에는 높은 산을 지나야 되기 때문에 전쟁 시 방어에 적합하게 되어있어 정한 것 같다.
아무튼 캔버라에 도착해서 면접을 봤는데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하라고 하였다. 하는 일은 웨이터를 보면서 계산하고 식재료도 사 오고 홀에서 하는 전반적인 것을 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나의 돈 모으기 계획이 착실히 실행되었다. 우선 넓은 숙소를 회사에서 공짜로 제공해 주었다.
아침 9시 30분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끝나기 때문에 아침, 점심, 저녁을 다 스시집에서 해결했다. 시급도 호주에서 법적으로 줄 수 있는 주에 30시간은 18불을 받았고 나머지 시간은 현금으로 시급 14불씩 계산해서 받았다. 주 6일에 매일 10시간씩 일했으니 한 달 수입이 거의 4800불 가까이 되었다.
일주일에 하루만 쉬기도 하고, 돈을 쓰고 싶어도 돈 쓸 곳이 없는 시골 동네여서 돈은 자연스럽게 잘 모아갔다. 웨이터 업무도 회전초밥집이었기 때문에 영어보다는 친절한 웃음이 큰 몫을 했다. 계산은 정해진 문장만 말하면 되고 숫자만 잘 알면 되었다. 생각보다 할 만한 일이었다. 재연이 덕분에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
사람의 인연과 운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것 같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치킨집을 그만두었고, 고등학교 친구 덕분에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 내가 생각한 대로 돈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럴 때 보면 예전 '시크릿'이라는 책에서 나온 말처럼 ‘간절하게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스시집에서 5개월간 일하면서 1500만 원을 모을 수 있었다.
이제는 내가 돈을 모은 이유! 자전거 여행을 떠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