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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프 Sep 16. 2021

1분 단편소설 'QR상조'

잔재주모음집04.

“안녕하세요, QR상조입니다."


“저희 아버지 영정QR을 잃어버려서 재발급 좀 받으려구요.”


“영정QR코드 스티커 재발급은 가족 확인을 위해 직접 방문해 주셔야지만 가능합니다.”


QR상조 직원은 으레 있는 일이라는 듯 기계적인 말솜씨를 뽐냈다.


“하…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찾아갈게요.”


전화를 끊었다. 내 몰골은 아버지 영정QR을 찾느라 집안을 다 헤집어 놓은 후라 엉망이었다. 대충 모자 하나를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QR상조센터’까지는 차로 약 10분 거리. 가까운 거리이지만 아버지의 생생한 모습이 담긴 영정QR코드를 받은 이후로는 굳이 찾아간 적이 없다. 이 영정QR코드 서비스는 참 신통방통하다. 살아 계실 적 아버지의 모습과 목소리, 생각까지 고스란히 반영해, 매년 기일이면 항상 건강한 모습의 아버지가 매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만 찍으면 매년 똑같은, 그러면서도 또 다른 아버지를 만나 뵐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중한 QR코드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바로 아버지 기일에, 당장 오늘 밤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말이다. 불효자식이라 욕해도 할 말 없다.



센터에 도착하니 널따란 건물 한가운데에 상조 직원이 혼자 앉아 있었다. 직원이 앉은자리 바로 옆에는 QR코드를 출력하는 데에 쓰이는 듯 보이는 컴퓨터와 인쇄기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영정QR코드 재발급받으려고 왔는데요, 김진섭 님…”


“가족 확인을 위해 본인 QR코드 제시해 주세요.”


상조 직원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코드 리더기를 내 코앞에 들이밀었다. 허겁지겁 스마트폰을 켜, 내 신상정보가 담겨 있는 QR코드를 리더기에 찍었다.


“삑-!”


“네, 확인되셨습니다. 바로 뽑아 드릴게요.”


상조 직원이 컴퓨터를 몇 번 두드리자 인쇄기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내 손가락 두 마디만한 QR코드가 출력되어 나왔다. 아버지, 내 아버지다. 잃어버렸던 아버지를 찾은 양 눈물이 돌았다. 상조 직원은 한 손으로 아버지의 영정QR스티커를 집어 들고는 내게 가볍게 건넸다. 나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조심히 아버지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왼쪽 가슴 주머니에 아버지를 고이 모셨다. 눈물을 살짝 훔치고, 뒤를 돌아 집에 가려던 차였다.


“저기요.”


상조 직원이 나를 불렀다.


“성묘는 안 하시나 봐요? 도통 관리가 안 되고 있는 것 같던데요.”


아, 성묘. 아버지 무덤을 잊고 있었다. 영정QR코드 서비스 덕에 집에서만 제사를 지냈더니, 영 까먹고 지냈다. 사실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QR코드가 있는데 무덤이 무엇이 중요하겠냐만, 그냥 성의 한 번 보인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선 상조 센터 뒤쪽에 자리 잡은 아버지의 무덤을 향해 발을 옮겼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7년 만에 찾은 아버지의 무덤은 가관이었다. 막연히 푸를 것이라 기대했던 아버지의 무덤은 온갖 잡풀과 넝쿨에 뒤덮여 그 둥근 모습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앞에 세워둔 묘비에도 담쟁이덩굴이 기어 올라 아버지 이름 석자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부리나케 넝쿨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자리 잡은 놈들이라 그런지 떼어내는 일도 쉽지가 않았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 잡초들을 뽑고, 자르고, 뜯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이제서야 무덤의 봉긋한 모양이 드러났다. 진이 다 빠져버린 나는 그대로 아버지 무덤 곁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버지 무덤을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옆 무덤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무덤들은 내 아버지의 무덤이 그랬던 것처럼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간혹, 열에 하나 정도는 아주 말끔했다. 묘비도 번쩍거리는 게 아주 빛이 났다.


‘저 무덤들은 누가 관리해 주는 걸까?’


나는 말끔한 무덤에 가까이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묘비 위쪽에 거뭇한 얼룩이 보였다. 그 검은 얼룩은 내가 무덤에 가까이 갈수록 선명해졌다. 네모 반듯한 모습의 얼룩은, 영정QR코드 스티커였다. 이 무덤만이 아니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무덤 묘비에는 하나같이 QR코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자신의 죽은 가족을 모시고 가는 게 아니라, 두고 간 것이었다.


그 깔끔한 무덤들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왼쪽 가슴 주머니에 고이 모셔 두었던 아버지, 그러니까 영정QR코드 스티커를 꺼냈다. 아버지 묘비 위쪽을 옷소매로 힘을 줘 닦고는, 아버지 QR 스티커를 붙였다. 떨어지지 않게 손으로 꾹 찍어 누르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QR코드를 찍었다. 스마트폰 화면 가득히 아버지의 얼굴이 들어찼다.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렸다.


“내 신경 쓰지 말고, 행복하게들 살아라! 이 애비는 잘 있으니께, 허허허. 항상 고맙고, 사랑헌다!”


화면 속 아버지의 모습은 제자리를 찾은 양 편안해 보였다. 목소리에도 힘이 넘치시는 것 같다. 그냥, 내가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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