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세상이 '우리'를 열고 들어왔다 (2)
난생 처음 사보는, 해보는 임신테스트기는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누구도 알려준 적 없었고, 물론 내가 물은 적도 없었다. 그 과정이 소변 검사할 때처럼 그리 우아한 모습은 아니란 것도 임테기 사용 설명서를 뜯어 읽으며 그때 알았다.
게다가 그냥 아무때나 해도 되는 줄 알았더니(드라마에서는 시간대 없이 아무때나 확인해보니까) 아침 일어나 첫 소변이 가장 정확도가 높다고 했다.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이왕 할 거(?) 정확하게 해야 하니 일단 넣어뒀다.
그날은 금요일 저녁이었다. 퇴근 전부터 곱창이 너무 먹고 싶어서 배달의 민족으로 '곱창 2인분+막창160g 추가'를 해놓은 후였다. 임테기 설명서를 읽어보고 '아 그렇군.'하고 다시 케이스에 넣어두고 금요일 밤을 만끽할 준비를 했다.
이것저것 곱창님이 도착하기 전에 술과 사이드 메뉴를 세팅을 해놓으려는데... 뭐지? 술이 전혀 당기지 않았다. 곱창을 먹는데? 술을 마신 이후로, 곱창을 먹으며 소주를 마시지 않은 적이 없다. 아니, 소주를 맛있게 마시려고 곱창을 먹는 편에 더 가까웠다.
사실 술이 그닥 당기지 않는 현상은 몇 주 전부터 있었다.
엄청나게 아프지 않고서는 술을 마다하는 일이 없는 나였다. 맛잇는 음식을 먹으면 항상 술과 함께했다. 그런데 살짝, 뭐랄까... '굳이?'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몇 주전 크게 몸살을 앓았기 때문에 그 영향이겠거니 했다. 그러면서도 종종 약속이 있거나 할 때 잘 마시긴 했지만, '맛나게 마신다.'라는 느낌이 없어 이상했다. 퇴근을 해서도 맥주 캔을 따지 않는 날이 며칠 지속되자, 신랑마저 "어디 아파?"라고 물을 정도였다.
아니, '가끔 그럴 수도 있지 술 좀 안 당기는 게 뭐 그리 심각한 일이냐.'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나한테는 좀처럼 없는 일이기 때문에 '술 땡기지 않는 나날'이 좀 낯설고 이상했다. 사실 이상한 건 그뿐만은 아니었다.
아랫배에 생리통과는 조금 다른 뾰족한 통증이 간헐적으로 있었다. 누워 있다가 일어날 때라거나, 기지개를 필 때라든가, 멀쩡히 걷가가 갑자기 '뾱'하면서 날카롭고 짧게 통증이 왔다 갔다.
전에 없던 어지러움증도 있었다. 특히 앉았다 일어날 때 눈앞이 핑, 돌며 깜깜해졌다. 드라마 속 연약한 여자가 자주 하는 이마를 짚으며 휘청거리는 그런 모션이 저절로 나왔다. 요즘 성인 여성들에게 '기립성저혈압'이라는 게 흔하다더니 생전 없던 저혈압이 나에게도 왔나 싶었다.
이런 증상들이 한꺼번에 한 2주정도 지속됐기 때문에 나는 살짝 겁을 먹고 있었다.
'몸에 이상이 생긴 걸까?'
생리통을 달고 사는 나임에도, 이런 종류의 아랫배 통증은 너무도 생소해서 겁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주변 내 또래 여성들이 요즘들어 여성질환을 하나씩은 실토할 때라, '나에게도?' 하는 두려움이 확 몰아쳤다. 운동은 전혀 하지 않고, 식생활은 죄다 인스턴트 위주(더 정확히는 술안주 위주), 게다가 술도 (매우) 자주 마시는 나로서는 조용하던 몸이 어느 하루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를 짧게라도 주면 바로 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문제가 없는 게 이상해... 병원을 가봐야겠다.'
마음을 먹었고, 회사 지하에 산부인과가 있기 때문에 근무 중 언제라도 다녀올 수 있었지만 나는 곧바로 가지 않았다. 무서워서 차일피일 일 핑계로 미루고 있었다.
여느날처럼 저녁을 먹고 쇼파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데 또 눈앞이 핑 돌았다. 휘청거리니 신랑이 깜짝 놀랐다.
"나 정말 어디 문제가 있나봐."
"그러게. 병원에 같이 가보자... 아?... 근데 자기, 설마...?"
"?"
신랑이 의아한 물음표를 하나 띄웠을 때, 대번에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지만 "에이 무슨."으로 그 의심을 종결시켰다. 그럴 리가 없자나. 달력을 보았다. 마지막 생리일로부터 한달 반이 지나 있었다. 그러나 나의 생리일은 원래도 불규칙한 편이었기 때문에, 한달 반 정도 텀은 예삿일이었다. 오히려 나보다 신랑의 촉이 선 날이었나보다. 테스트기를 꼭 사보라고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일 꼭 테스트기 해보자."
(소주 없이!) 곱창과 함께한 금요일 밤이 지나고 토요일 아침. 간밤에 임테기에 엄청나게 굵은 2줄이 뜨는 꿈을 꾸고 일어나 늦잠을 실컷 잤는데도 피곤했다. 은근히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눈뜨자마자 임테기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설명지에 쓰인 과정을 충실히(?) 해낸 후, 무심하게 테스트기를 옆에 두고 양치질을 했다. 분명 설명지는에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고 쓰여 있던 것 같은데, 곁눈질로 살짝 시선을 돌렸을 때 나는 봤다.
소변에 젖어들어가는 테스트기 속 시험지에 너무나도 빨갛고 선명한 선이 빠르게 2줄 생기고 있는 것을. 첫번째 선이 빠르게 선명해지고 두번째 선 역시 그에 질세라 빠른 속도로 '짜잔'하고 나타나고 있었다.
"까꿍"
그 순간 내 귓가에 이런 효과음이 들렸다. 서둘러 양치질을 마치고 임테기를 든 채 화장실을 나왔다. 막 일어난 신랑이 천진난만하게 문앞에 서 있었다.
"자기야, 어떡해?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참 갈 곳 잃은 절망의 대사를 하면서 웬일인지 나는 웃었다. 신랑도 놀라서 "에이, 설마."하면서 웃었다. 내가 장난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순간,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는데 웃음은 나왔고 앞뒤없이 우리는 둘이 꼭 껴안고 계속 웃었다. 신랑은 "정말이야? 정말이야?"하고 있고, 나는 "이게 뭔일이지."하며 웃었다.
두 시간 뒤, 우리는 '아기집'이 찍힌 초음파 사진을 들고 있었다.
2021년 7월 17일 토요일. 내 평생 잊지 못할, 오래도록 생생하게 기억될 날의 오전 풍경이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당연히) 술은 입에도 못대고 있다. 술 없이는 어떤 음식도 '10점 만점에 10점'으로 맛있을 수 없을 거라고 믿던 나는 지금 술 없이 삼겹살도, 치킨도, 피자도, 해물찜도 잘만 먹는다. 눈앞에서 누가 술을 마셔도 전혀 마시고 싶지 않다. '정말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은데, 사실이다. '그냥 마시면 안 되니까 그런 거 아닐까?' 싶지만 (임신 전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니다. 정말로 '전혀' 마시고 싶지 않다. 인체의 신비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딸 술 못마셔서 어째?"
임신 소식 들은 우리 엄마가 폭풍 축하 후, 가장 먼저 한 걱정. 엄마의 걱정과는 다르게 입덧이 끝난 후에도 술을 못마셔서 힘들지는 않다. 지금은 임신 19주. 뱃속의 '까꿍이'와 나는 '한몸'으로 무탈하게 순항 중이다.
방실방실 아조씨 | 포차성애자. 소녀 감성과 아저씨 취향 그 사이 어디쯤에서 소맥을 말고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