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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다미 May 09. 2024

광명동굴 데이트

남편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

쓸개 제거 한 그해 3월은 완전한 멈춤이었다. 병원과 집에서 꿈쩍 않고 버틴 뒤 4월을 맞이했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믿었다. 부작용도 없을 것 같았다. 내 생각은 새의 날개 위, 상공에서 춤을 추었다. 건강하게 재도약하는 미래를 꿈꾸며 자유로웠다. 퇴원하기 전까지는.     


퇴원 며칠 후 답답함이 일어날즈음 남편과 꽃구경을 나섰다. 자유로운 생각 너머로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들어 오고 있을 때 벚꽃 구경 가자는 제안이 반가웠다. 가벼운 옷을 걸치고 차에 탔다. 잘해주고 싶은 남편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보기로 했다. 아는 곳을 총동원하며 읊더니 안양천으로 향했다. 꽃이 흐드러진 풍경을 기대했는데 밋밋한 천만 이어졌다. “꽃이 없네” 내 한마디에 그는 아직 이르다며 동굴에 가자고 제안했다. 아무 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좋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없는 동안 많이 힘들었는지 평소보다 나에게 더 집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 남자는 내가 폐쇄 공포가 있었던 것을 모르나 보다. 말하지 않았다. 좁고 어두운 곳을 두려워했던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걸어온 길. 나도 극복되었는지 궁금했다.     


주차하고 오르는 언덕에서 옆구리가 허전했다. 귀찮았던 호스가 빠지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어쩌면 호스를 더 붙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앞길이 막막했다. 수술 전에는 분명 바쁘고 즐거웠는데 멈춘 한 달의 영향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막막했다. 생각하는 방법 코칭과 도덕경 수업, 독서모임. 벌여 놓은 일은 두려웠고 머리는 생각이 멈췄다. 무슨 배짱으로 시작했는지 모른다. ‘내 생각도 정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몰라 답답할 때 취직을 고민했다. 모두 포기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복잡한 생각 밀어놓고 오랜만에 하늘과 나무를 실컷 보며 걸었다. 느린 내 걸음에 맞춰 걷는 남편. 성큼성큼 걷던 사람의 발걸음에도 힘이 빠진 게 느껴졌다. 동굴 입구는 선선했다. 한겨울 온도를 느낄 것이라는 예상과 달라 조금 안정되었다.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어두운 곳에 들어가려니 몸이 먼저 긴장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호흡하며 몸을 안정시켰다.     


지하에는 거대한 용이 날카로운 눈빛을 뿜으며 꿈틀대고 있었고, 거기에 어울리게 에메랄드빛 호수가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과 호수의 깊이를 모두 탐하면 욕심일까. 어느새 공포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호수의 아름다운 색에 넋을 잃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동굴, 이 동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밖으로 나오는 길 역사를 알 수 있었다. 해설사들이 곳곳에서 광부들의 힘든 노동과 일제강점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몰랐던 역사에 감사와 숙연함을 느끼며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 생각보다 안 춥다는 말을 건네자 해설사는 핫팩을 보여주었다. 움직이는 관광객들과 다르게 가만히 서 있으면 춥다며 한 시간마다 교대한다는 이야기를 보탰다. 그제야 두꺼운 외투가 눈에 들어왔다. 해설사의 한마디에 내 머리는 바빠졌다.     


움직임과 멈춤의 차이를 느끼며 갑자기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물의 이동. 나무는 계절에 따라 물의 흐름이 달라진다. 날이 따뜻해지면 줄기로, 추워지면 뿌리로 이동한다. 겨울엔 땅속이 더 따뜻하기 때문이다. 아래로 내려간 물은 겨울에 무얼 할까. 고인 물은 썩을 테니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뿌리를 뻗기 위해 노력하겠지. 열심히 뻗은 노력은 봄에 새싹을 틔울 때 그리고 여름 장마와 태풍을 견딜 때 힘이 되어주겠지.     


자연을 볼 때마다 ‘때’를 생각하면 차분해졌다. 무엇이든 때가 맞아야 하는데, 자유로운 생각은 지금, 당장 이뤄지길 원해서 마음이 늘 조급해진다. 뿌리를 내리기 위한 노력은 받아들임이다. 내 현재를 인정하는 것, 상황을 상황으로 보고 감정은 개입시키지 않았다. 감정이 상황에 흡수되는 순간 내 마음은 널뛰기할 테니.     


내 삶의 계절은 성장이 보이지 않는 겨울이었다. 겨울에 줄기로 물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은 헛수고일 텐데. 뿌리가 얕으니 벌여 놓은 일들이 두려울밖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두렵다고 고백했다. 내 고백을 듣고도 함께하겠다고, 같이 걷겠다고 한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하는데 믿어주는 마음 덕분에 힘을 얻었다. 함께하는 분들과 뿌리를 같이 뻗겠다고 다짐했다. 땅 밑으로 내려온 물이 어둠을 향해 뻗어 나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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