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의 팔씨름>
이어령
한밤에 눈뜨고
죽음과 팔뚝씨름을 한다.
근육이 풀린 야윈 팔로
어둠의 손을 쥐고 힘을 준다.
식은땀이 밤이슬처럼
온몸에서 반짝인다.
팔목을 꺾고 넘어뜨리고
그 순간 또 하나의 어둠이
팔뚝을 걷어 올리고 덤빈다.
그 많은 밤의 팔뚝을 넘어뜨려야
겨우 아침 햇살이 이마에 꽂힌다.
심호흡을 하고 야윈 팔뚝에
알통을 만들기 위해
오늘 밤도 눈을 부릅뜨고
내가 넘어뜨려야 할
어둠의 팔뚝을 지켜본다.
병실 침대에 앉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펼쳤다. “어둠과의 팔씨름” 내가 이어령 선생님이 된 기분이다. 거센 파도처럼 밤새 몰려오는 고통은 한 호흡과 함께 밀려 나가고 또 다른 호흡과 함께 몰아쳤다. 아침이라는 밝음이 찾아와야 슬며시 발을 빼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매일 밤 겪는 진통이었다. 버티고 버티다 나는 완벽하게 지고 말았다.
입원하기 전날 밤 깊은 잠에 막 빠져들었을 때 위의 묵직함이 느껴졌다. 정신도 못 차린 채로 화장실로 뛰어갔다. 밤새 토하기를 반복하며 태아처럼 몸을 구부렸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파도에 어느새 다리에 힘이 빠지고 눈도 풀렸다. 어떻게든 버텨보려 양손 깍지를 껴 다리를 꽉 붙잡았다. 잠시 괜찮은가 싶다가도 다시 틀어지고 조여졌다. 누군가가 어두운 힘에 기댄 채로 내 위를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숨쉬기 힘든 고통은 내쉬는 호흡에 따라 나갔다가 들이쉬는 호흡과 함께 들어왔다.
위경련이겠지. 중2 때부터 위장병을 앓았다. 수시로 찾아오는 고통에 익숙한 나는 약으로 며칠을 버텼다. 그러다 2년 전 의사의 말이 귓가를 스쳤다.
“또 아프면 수술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또렷이 보이는 일상에 불편함만 쌓으며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한 과거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그때. 급한 마음을 잠시 멈추고 솟아오르는 말도 참고 운동도 서서히 멈추었다. 해고당한 뒤 내 생각에 접속해 사색을 즐기던 그때.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면서 살이 빠지고 고혈압과 고지혈이 호전되어 안심하던 찰나였다. 그때도 드문드문 찾아오는 묵직함을 위장병이라고 생각하며 위내시경을 했지만 아무 문제없었다. 위경련은 수시로 찾아와 괴롭혔다. 안도와 불안이 겹쳤다. 밤새 밀려오는 고통을 참아내다가 응급실을 향했을 때 ‘담석증’을 진단받았다. 일주일 입원 후 퇴원하던 날 의사는 괜찮을 수도 있지만, 재발할 수 있다고 얘기했는데 까맣게 잊고 살았다.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에 서둘렀다. 남편과 급하게 찾아온 응급실에 담석증을 알리고 찍은 CT 속 내 쓸개는 기다란 소시지 모양으로 늘어나 있었다. 바람 빠진 풍선 같기도 했다. 너무 참은 나에게 스스로 뱉은 한 마디 단어는 ‘미련하다’였다. 쓸개 제거 수술이 시급했다. 고통은 멈추지 않았고, 혈압은 계속 오르고 있었다. 팔뚝에 수액을 꽂은 뒤 급히 내시경부터 진행했다.
십이지장을 통해 돌멩이를 밀어낸 뒤 복강경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수술이었다. 2주면 충분하다는 말을 듣고 치료를 시작했다.
“저희는 수술할 수 없습니다. 내시경이 통과되지 않아서 대학 병원으로 가세요.”
“제가, 혼자서요?”
“네. 소견서 드릴 테니 대학 병원으로 가세요.”
나는 항상 일이 꼬인다. 십이지장궤양을 앓은 병력이 있어 통로가 좁아져서 내시경으로 밀어내기가 불가능했다. 수술한다고 코로나 검사도 하고 내시경도 하고 옆구리 구멍도 뚫고 나서 갑자기 퇴원하라니. 차도 없고 보호자도 없는데. 고집부릴 힘도 없어 마지못해 퇴원한 뒤 대학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대학 병원 응급실에서 코로나 검사를 다시 받고 15시간 만에 겨우 입원했다. 두 번째 내시경을 받으며 어떻게 되었든 고통만 없게 해 주길 바랐다. 링거를 맞고 있어도 이어지는 고통으로 말할 힘도 없었다.
“내시경으로 불가능해서 옆구리에 구멍을 뚫고 담즙 배출 주머니를 달아야 합니다.”
차가운 침대 위. 멀쩡한 정신으로 천장만 응시했다. 한기가 온몸을 감싸 으슬으슬 떨렸다. 떨리는 내 몸 위로 천을 덮어줬다. 얇은 천을 양손으로 꽉 붙잡고 몸과 마음을 의지했다.
“소독할게요.”
오른쪽 옆구리에 소독약이 넘쳐 밑으로 흘러내렸다.
“주사 놓습니다.”
여러 군데 따끔함이 느껴진 뒤 시술이 시작되었다.
“아파요.”
‘으드드득’ 뼈에 구멍을 뚫는 것 같은 느낌. 온몸의 세포가 일어서고 뒷골이 서늘해졌다. 도망치고 싶지만 움직이면 안 되는 몸뚱이를 지키기 위해 얇은 천을 붙잡은 두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고통에 정신이 집중되어 추위는 온데간데없고 열이 나는 듯했다. 한차례 쓰나미가 몰려간 뒤 ‘끝났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의사 말이 들리고 다른 곳이 뚫렸다.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힘들 때 나는 마무리된 상황만을 상상한다. ‘한 시간 뒤에는 병실에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버텼다. 생각에 잠겼을 때 반복되는 처치가 멈췄다. 호스가 살을 뚫고 쓸개 안으로 들어왔다.
“끝났습니다. 마무리할게요.”
여우꼬리도 아니고. 오른쪽 옆구리에 2미터가량 되는 호스가 달렸다. 기다란 호스만큼이나 참기 힘든 고통이 명치에서 오른쪽 옆구리로 옮겨졌다. 겨우 정신을 차린 다음 날 아침 간호사가 다가왔다.
“퇴원하세요.”
“네? 지금요?”
“병원에서 해 드릴 게 없어요. 퇴원하고 2주 뒤 오세요.”
“2주요?”
“네. 2주 뒤에 수술합니다.”
허리도 펴지 못한 몸으로 짐을 꾸려 택시를 탔다. 소독밖에 해줄 게 없다는 얘기와 다음 환자가 대기 중이라는 말에 내 고통을 더 고집할 수 없었다.
퇴원하고 돌아온 날 허무함이 느껴졌다. 집이 텅 비어서만은 아니었다. 나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했다.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빠뜨린 느낌인데 알 수 없었다. 스스로 위로하며 다짐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아무것도 하지 말자.’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또다시 시작된 멈춤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재입원해서 수술을 앞두고 읽는 “어둠과의 팔씨름”은 고통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짧은 멈춤 뒤 희망이 찾아왔다. 쓸개와 맹장은 없어도 무방하다는데. 내일이면 어둠과의 팔씨름도 끝이 나겠지. 쓸개를 내어주고 내 삶은 어떻게 변할까. 부작용을 검색했다. 소화가 잘되지 않고, 설사를 자주 한다. 가끔 쓸개가 다시 만들어지는 예도 있었다.
쓸개가 정말 만들어질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생의 신비를 저버리진 않는다. 봄이 오면 싹이 돋듯 쓸개가 내 안에 움틀 수도 있다는 가느다란 기대를 품었다. 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린 뒤 배웠다. 고통을 이겨내면 평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것만으로도 삶이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수술 후 2년이 지났다. 퇴원할 때의 기대처럼 부작용 없는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쓸개 제거 후 소화가 잘 되지 않으니 조금씩 자주 먹어야 한다고 했지만 한 번도 소화불량을 느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원하는 음식 마음대로 즐기면서 삶을 즐기고 있다.
생각은 현실이 된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그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희망을 얻을 수 있기를...